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에 이어 국내 전기차 판매량 1위 업체인 테슬라 차량에도 불이 나면서 ‘전기차 포비아’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일시적 수요 둔화)을 돌파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던 완성차 업체들의 향후 행보도 대폭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경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7시 40분쯤 경기 용인시 기흥구 고갈동 도로에 세워져 있던 테슬라 모델X에 배터리 열폭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은 당시 충전 중이 아닌 노상에 주차하고 있던 상태였다. 통상 충전 중에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 뿐 아니라 충전기, 완성차 업체 등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 당국은 소방대원 50여 명과 펌프차 등 장비 20여 대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신고 접수 3시간 10여분 만인 오후 10시 57분께 큰 불길을 잡았으며 오후 11시 53분께 완전 진화에 성공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사고 차량은 전소됐다.
테슬라가 국내에서 판매했거나 판매 중인 차량에는 CATL·LG에너지솔루션·파나소닉에서 만든 배터리가 탑재된다. 보급형인 모델3과 모델Y에는 3사 배터리가 모두 쓰이며 상위 차량인 모델X와 모델S는 파나소닉 배터리가 장착된다. 테슬라는 올해 7월까지 국내에서 2만 60대를 판매했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은 수입차 3위다. 전기차로만 한정하면 현대차(1만 4843대)와 기아(1만 8758대)보다도 판매량이 많다.
테슬라에도 열폭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면서 전기차주들은 불안함을 드러내고 있다. 테슬라 전기차주인 A 씨는 “매일 타고 다니는 전기차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며 “구매 이전에 폭발 가능성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만큼 선택을 되돌리고 싶다”고 토로했다.
불안에 휩싸인 것은 화재가 발생한 브랜드의 차주만이 아니다. 현대차 전기차를 소유하고 있는 B 씨는 “이번 화재의 원인이 ‘중국산’인지, ‘배터리’인지는 불명확해 보인다”며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불안함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차 포비아가 심화하면서 각 완성차업체들의 향후 계획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캐즘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를 ‘예정된 미래’로 인식하고 투자를 이어온 바 있다. 실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부진에 대해 “큰 틀에서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며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비용 절감이나 여러 방법도 있지만 큰 틀에서 어차피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운용의 묘를 살려서 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가 미래에 대세로 자리 잡는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 지가 중요한 문제”라며 “투자 체력이 단단한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많은 완성차 업체가 예측에 실패하면 업계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