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에너지의 종류가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경험이나 기억을 태워서 글을 쓰는 ‘화력 발전’이었다면 이제는 경험의 시차, 위치나 위상의 변화로 인한 낙차를 에너지 삼아 ‘수력 발전’으로 이야기를 만들게 됐어요.”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문단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선보이는 김애란 소설가가 13년 만의 장편 소설로 돌아왔다. 2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중 하나는 거짓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김애란은 “시작했던 연재를 중단한 적도 있고 장편 소설을 내놓기까지 버린 시간도 있었지만 낭비라기 보다는 치러야 했던 차비로 생각한다”며 ‘내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로 작품 세계를 넓히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른 시간으로 지난 공백의 의미를 밝혔다.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2011년)’ 외에도 단편집 ‘달려라, 아비(2005년)’, ‘침이 고인다(2007년)’, ‘비행운(2012년)’, ‘바깥은 여름(2017년)’으로 꾸준히 작품을 내던 작가에게는 긴 공백기였다.
생산력이 부족한 작가를 기다려줘서 거듭 감사하다는 작가는 작품 소개로 운을 뗐다. 그가 새롭게 선보이는 장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의 2개월 남짓 동안 세 아이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목의 모티프가 된 건 소설 속 학급의 자기 소개 게임인데 학생들이 스스로를 다섯 가지 문장으로 소개하되 그 중 하나는 거짓말을 섞어 서로 맞추게 하는 게임이다. 작가는 “누군가는 거짓말을 통해 무언가를 숨기기도 하고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며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보호해주고 싶은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장편은 전작인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장선상에 있다. 같은 성장 소설이지만 차이는 있다. 당시 갓 서른 살을 넘긴 작가가 바라 본 가족에 대한 생각은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그는 “우리 사회는 피로 연결된 끈끈한 점성의 힘이 강한 사회지만 때로는 그 점성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끔찍하게 작용할 때도 있다”며 “‘폭력이 일어나는 가족은 역시 반드시 지켜야 할 미덕이나 가치가 될 수 있는가’를 살피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상화됐던 4인 가족 모델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인데 반려동물과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어떤 아저씨 역시 유사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같은 소재를 다른 관점에서 변주하는 것은 작가가 깨닫게 된 자신의 작품 패턴이기도 하다. 그는 2008년 발표한 단편 ‘칼자국’에서 새끼를 먹이는 것의 지난함과 모성의 건강함을 다뤘다. 이후 십년 가까이 지나 단편 ‘가리는 손(2017)’에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신의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통해 ‘새끼를 먹이는 일의 끔찍함’을 담아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경험 또한 다르게 해석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어릴 적 그의 어머니는 비오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지 못했다. 손 칼국수를 파는 어머니가 점심 장사 때문에 바쁜 탓이었다. 그는 “어느 날 가게 앞에서 커다랗고 검은 개를 만나 놀라서 크게 울음을 터뜨렸는데 엄마가 허겁지겁 식칼을 들고 뛰어나온 게 강렬하게 남았다”며 “나이를 먹으니 가끔은 부모 앞의 검은 개를 쫓아내는 게 나라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검은 개가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젊은 거장’이라는 찬사가 아직은 큰 교복처럼 느껴진다는 그는 “앞으로 제가 쓸 소설들도 그렇게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