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의 2대주주(지분율 6.2%)인 국민연금이 SK E&S와의 합병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히면서 SK그룹의 리밸런싱 작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양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찬성을 권고하면서 합병 무산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이번 국민연금의 결정에 일반주주들이 동요할 경우 주식매수청구권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22일 제10차 위원회를 개최하고 SK이노베이션 합병안에 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했다. 그 결과 합병계약 체결 승인의 건에 대해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반대 결정을 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은 1대 1.1917417이다.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은 기준시가, 비상장사인 SK E&S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 평균한 값을 합병가액으로 했다. 자본시장법을 따르고 있어 비율 산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합병 계획 발표 후 일각에서 “합병 비율이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사회 결의일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6으로 역사적 저점에 있고 동종업계 PBR을 크게 밑도는 수준에서 합병가액이 산정돼 회사의 주식가치를 적절히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합병 통과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 결의로 진행되는 합병은 주주총회 참석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수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의 지분 구조는 SK(주) 36.2%, 개인 24.9%, 외국인 20.9%, 기관 14.3% 등이다. 기관 지분 가운데 국민연금 비중은 6.2%다. 업계에선 외국인·기관 등 전체 주주는 합병에 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합병에 대해 찬성 의견을 밝혔고 미국의 '큰 손'들도 찬성표를 던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날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은 각각 홈페이지를 통해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SK E&S와의 합병에 찬성하는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공시했다. 특히 이들의 찬성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지침)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연기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3월 삼성물산 주주총회 당시 배당 확대를 골자로 하는 행동주의펀드 연합의 제안에 찬성표를 던진 곳도 두 연기금이었다. 결국 표대결 끝에 패배로 끝났지만 외국인을 중심으로 주주제안이 23%의 지지를 받으며 결집력을 과시했다.
다만 합병에 반대한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SK이노베이션의 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번 합병 관련 주식매수청구권 규모는 전체 지분의 7% 정도로 6%대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모두 청구하고 소액주주까지 가세한다면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14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을 추진할 당시 1조 3600억 원의 자금을 준비했지만 국민연금을 포함한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1조 6299억 원에 달하면서 합병이 불발된 바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 현재 주가가 매수 당시보다 현저히 낮은 만큼 국민연금과 일반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모두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합병 후 SK E&S 실적이 반영되는 내년부터 SK이노베이션 주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가 상승 동력이 없는 현재보단 합병 후 시너지를 선택하는 주주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7일 SK E&S와 합병 승인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연다. 이번 합병 승인이 이뤄지면 11월 1일 자산 100조 원, 매출 88조 원 규모의 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한다. 합병 후 통합 시너지 효과로 2030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2조 2000억 원 이상을 창출해 전체 EBITDA 2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합병 시너지에 대한 설명을 통해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