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화재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며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데이터센터용으로 개발된 액침 냉각 기술을 전기차에 도입하는 방안이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정유 업계가 관련 연구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 완성차 업체에서도 고급 차량을 중심으로 상용화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기차 열 폭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배터리열관리시스템(BTMS)의 한 방안으로 액침 냉각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액침 냉각은 고온의 기기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액체(플루이드)에 담가 열을 식히는 기술이다. 공기나 물로 열을 식히는 공·수랭식보다 냉각 효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데이터센터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열관리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전문가들은 배터리팩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술 도입에 가장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곳은 정유 업계다. 액침 냉각에 쓰이는 특수 액체는 고급 윤활유를 활용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유 업계가 기술력에서 앞선 상황이다.
2022년 국내 최초로 냉각 플루이드 개발 사업에 뛰어든 SK엔무브는 현재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 가능한 냉각 플루이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SK엔무브 관계자는 “특수 액체의 성분을 데이터센터가 아닌 배터리 특성에 맞게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액침 냉각 전용 윤활유를 출시하며 시장에 진입한 GS칼텍스는 완성차 및 2차전지 기업과 함께 액침 냉각 기술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배터리에 액침 냉각 기술을 적용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완성차 업계에서도 움직임이 관측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산업 리포트를 통해 “영국의 럭셔리 슈퍼카 제조사 맥라렌, 스웨덴의 하이퍼카 제조사 코닉세그, 미국 스타트업 패러데이퓨처스 등이 액침 냉각 기술을 배터리에 적용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향후 중저가 차량에서도 침투율 확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전기차 스타트업 싱모빌리티는 이미 지난해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전시회에서 액침 냉각 특허 기술이 적용된 배터리팩을 공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