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빈 그릇  

조동례





담장 위에



빈 그릇 두었더니

비가 와서 채웁니다

그 물을



새가 와서 먹고 세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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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와서 먹고 목욕하고

그래도 남아서

고양이가 얌전히 먹는 걸 봅니다

그릇을 비워두니

오는 대로 주인입니다

쯔쯧- 오는 대로 주인이라니. 담장 위에 빈 그릇을 누가 놓았는가? 탈선한 청소년처럼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쏟아지던 빗물이 누구 때문에 고였는가? 그 귀한 빗물을 새가 와서 세수하고, 벌이 와서 목욕하도록 두었단 말인가. 겨우 남은 빗물을 고양이가 먹도록 놔두었단 말인가. 얌전히도 먹는다고 좋아한단 말인가. 새한테 까마중 열매라도 한 알, 벌한테 쓰디쓴 가짜 꿀이라도 한 모금, 고양이한테 금 간 유리구슬이라도 한 알씩 물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대를 몰라도 너무 모르지 않는가. 생명주의 아닌 자본주의 시대인 것을!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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