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형법에는 ‘친족간 재산범죄’의 ‘불처벌’ 특례라고 할 수 있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있다. 형법 제328조 제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제323조의 죄(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에 준용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위 형법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했다. 해당 조항이 지나치게 넓은 범위의 친족에 대해 재산범죄의 불법성의 경중을 묻지도 않고,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형면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해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형사재판을 담당할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가까운 친척인 경우 그 죄책의 경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아직도 법정에 선 20대 남성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피고인은 어리석게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조카를 차에 태워 아이스크림 가게로 이동하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말았다. 본인은 다친 데가 없는데도 불행히 조카는 세상을 떠나고만 사건이었다. 잘못에 대한 뉘우침도 사치인양 현실의 참담함을 부정하고픈 피고인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절실한 바람은 불가능했다. 죄값을 치르더라도 평생 짊어져야 할 업보를 생각하면 걱정되는 마음도 들었다. 피고인 부모의 마음은 어떨 것이며, 피고인의 형제이자 피해자 부모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사건이었다.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별한 관계는 끊임없는 고민거리를 낳았고, 도피처인지 모르지만 결국 피고인과 피해자가 남남인 사건과 다르지 않게 사건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재산범죄라는 이유로 가까운 친족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분명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한 세대 간 인식차는 젠더 이슈에 관한 남녀간 입장 차 못지않게 클 것이다. 가족의 형태와 개념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친족 간 유대나 신뢰는 그 시대의 생활 양식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간 친족상도례 규정이 구시대적 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족·친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한동안은 지속돼 주길 바라는 마음도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