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대거 이탈 사태로 각 병원 응급실들이 운영난에 시달리면서 생후 28개월 아기가 ‘응급실 뺑뺑이’ 여파로 한 달째 의식불명에 빠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처럼 응급실 운영 차질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는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는 추석 연휴부터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은 경증·비응급환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90%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3일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오후 8시 40분께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열경련으로 28개월 된 여아 A 양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내용의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소방 당국은 수도권 지역 병원 응급실 11곳에 이송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모두 이송을 거부 당했다. 일산 소재 병원 3곳을 비롯해 김포 2곳, 부천 1곳, 의정부 1곳, 서울 4곳 등 병원이 모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송을 거부했다.
A 양은 부모가 119에 신고한 지 1시간이 넘어서야 인천 인하대병원 응급실로 갈 수 있었다. A 양은 신고 당시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송이 지연되면서 의식불명에 빠져 한 달이 지난 이날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현재 A 양은 서울 소재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의료 역량 한계 속에 사고가 자꾸 빈발하는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상황을 확인 중”이라며 “적절하게 응급 이송이 안 된 건지, 질병 특성상 불가피했는지, 초기 대응에서 개선할 점은 없었는지 세밀히 살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의사 인력 부족, 의료 전달 체계 등 의료 개혁 목표로 삼는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응급실 진료 차질은 수도권에서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경기남부 대표적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아주대병원은 매주 목요일마다 16세 이상 성인 환자의 경우 심폐소생술(CPR)을 필요로 하는 등의 초중증 환자만 받는다.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도 매주 수요일 야간 응급진료를 제한하고 신규 환자를 받지 않기로 했다. 강원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은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고 건국대충주병원도 야간·휴일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다.
정부는 이 같은 응급실 운영 차질의 주원인이 의사 수 부족이며 이는 2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실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4분기 1418명에서 지난달 21일 1484명으로, 타과 전문의는 같은 기간 112명에서 161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레지던트는 591명에서 54명으로, 일반의·인턴은 243명에서 35명으로 급감했다. 이에 4일 아주대병원과 이대목동병원에 각 3명, 충북대병원과 세종 충남대병원에 각 2명, 강원대병원에 5명의 군의관을 파견한다. 건국대충주병원 운영 제한에 대비해 충주의료원에도 공중보건의를 배치한다.
한편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이날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추석 연휴 경증·비응급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면 본인부담금을 90%로 인상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관련 입법 예고를 한 상태로 연휴 기간부터 시행하기 위해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경증 환자로 판정돼 병원을 옮기게 되는 경우 전원 비용을 별도로 지원하지 않고 환자 본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아울러 정부는 연휴 기간 경증 환자는 응급실 대신 문을 연 당직 병의원으로 가달라는 내용으로 캠페인도 진행하기로 했다. 정 정책관은 “연휴 기간이 응급실 유지에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며 “발열 호흡기 환자는 발열 클리닉을 방문하고 진료 가능한 4000개 당직 병의원을 확인하고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