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혼선 커지자 긴급진화…"획일적 기준보다 은행 자율관리 중요"

[가계대출 규제 재확인]

◆ 정책일관성 강조한 금융위원장

이복현 발언 따라 은행 갈팡질팡

'상환능력 맞춰 대출' 거듭 강조

LTV 강화 등 총량조절 중점 검토

실수요자에 명확한 지침은 없어

갭투자 등 놓고 혼란 이어질 듯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6일 예정에 없던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변함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수차례 반복했다. 김 위원장은 당초 다음 주 중 현안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금융 당국의 대출 기조를 둘러싼 시장의 혼선이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터라 일정을 급히 앞당겨 수습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의 ‘실세’로 통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말 한마디에 은행들의 대출 정책이 오락가락해 소비자들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방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이날 전면에 나선 것은 이틀 전 이 원장이 주재한 ‘은행권 실수요자 간담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원장은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필요할 경우 대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동안 금융 당국은 가용할 수 있는 규제를 총동원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겠다고 공언했는데 돌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 원장의 발언 이후 은행권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이 냉·온탕을 오가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줄을 이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 원장의 간담회 발언이 금융위와 조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금융시장을 총괄해야 하는 금융위가 정권 실세인 이 원장에게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전했다.



이 원장이 은행권의 혼란을 부추긴 것은 이번뿐만 아니었다. 가계대출이 급등할 조짐이 보이던 7월 이 원장은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은행에 대출 관리를 주문했다. 이후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올리며 이 원장의 ‘구두 개입’을 이행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뒤 이 원장은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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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한 이 원장의 메시지에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자 결국 금융 당국 수장이 직접 제동을 건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은행권에서 자율적으로 다양한 대출 관리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정부의 입장이 과연 뭔지,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라는 건지에 대한 지적이 있어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가계대출 급등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체 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 축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 강화 등 대출 총량을 조정하는 대책이 주요 검토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모든 옵션을 다 올려놓되 기본적으로 DSR을 중심으로 상환 능력에 맞춰 대출받아야 한다는 기조를 확대하고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출이 상황에 따라서 집중적으로 늘어나는 부분이 있을 테니 거기에 맞춰 필요한 시기에 신속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투기적 목적의 대출은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매)나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은 과감하게 조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주택자의 대출 등은 은행권에서 차주가 실수요자인지를 자체적으로 판단해 처리할 문제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획일적인 기준을 정하면 국민 불편이 커질 수 있다”며 “고객을 가장 잘 아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출을 관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당국이 실수요자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준 게 아니라 시장의 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별로 전세대출이 가능한지 여부가 달라 당장 입주자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신규 분양주택에 대한 전세자금대출을 갭투자로 볼 것인지 여부를 놓고 은행별로 해석이 다르다”고 전했다.


김우보 기자·공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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