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임금과 복지가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금융권에서도 저출생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금융권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저출생 문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관건은 근로시간 감소뿐만 아니라 근로시간이 줄어든 데 따른 임금 수준을 놓고 노사가 어떤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느냐다.
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25일 노동시간 단축을 내건 총파업을 앞두고 공개한 자체 조사에 따르면 노조 42개 지부 중 7개 지부 노조원의 출생아 수는 2015년 2797명에서 작년 996명으로 8년 만에 64%나 급감했다. 7개 지부에는 시중은행이 포함됐다.
결과는 그동안 저출생 원인 중 하나로 주거, 교육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임금 수준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6월 근로자 1인당 월 평균 임금은 금융 및 보험업이 630만9000원으로 전기, 가스, 증기 및 공기조절 공급업(845만6000원)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금융 및 보험업 임금은 전체 평균치 373만7000원 보다 200만원 이상 높다. 금융권은 임금 이외에도 다양한 복지제도가 있다고 평가된다.
금융노조는 저출생 주요 원인이 임금 못지 않게 장시간 근로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금융노조가 6월 A지부 영업점의 오전 출근시간을 조사한 결과 85%는 오전 8시30분 이전에 출근했다. 김형선 노조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노조는 20년 전 주 5일제를 최초 도입한 산별노조”라며 “금융권조차 출산율이 대폭 감소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태희 노조 여성위원장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며 “은행원은 오전 9시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길게는 1시간 일찍 출근한다”고 말했다. 통상 은행은 근로계약 상 근로시작 시간이 오전 9시다. 출근 준비와 이동거리를 고려하면 오전 8시 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한 영업점 조합원은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기는 커녕 인사나눌 시간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노조는 진행 중인 산별교섭과 25일 총파업 요구조건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내걸었다. 구체안은 주 36시간 4.5일제다. 직전 대선 공약과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에서도 주 4~4.5일제가 등장했다.
관건은 근로시간이 주는만큼 임금이 덜 오르는 상황을 노조가 수용할 수 있는지다. 시간제 일자리의 경우 근로시간과 수당에 비례하기 때문에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일정시간 대면서비스를 하는 금융권의 경우 근로시간이 준다면, 이를 지원할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사측 입장에서는 추가 근로자 고용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만큼 노조에 임금 인상이 제한돼야 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금융노조와 교섭 대상인 은행연합회가 바라는 임금 인상안은 각각 5%선, 1%선으로 간극이 큰 상황이다. 김형선 노조위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사측이 근로시간 단축을 명확히 한다면, 사측 요구안 수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