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창업 기업을 중심으로 벤처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못하는 가운데 지역 기반 펀드가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익성을 따지는 벤처캐피털(VC)의 빈자리를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지역 창업 생태계가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11일 투자 업계에 따르면 인천이 2021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지자체 주도형 모펀드인 ‘인천빅웨이브모펀드’의 조성 규모가 올해 1조 원까지 확대된다. 인천시와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난 2021년 개별 기업이 아니라 펀드에 출자하는 모펀드를 도입했다. 인천시는 현재까지 이 펀드에 6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며 운영사인 인천센터는 모펀드로부터 출자받은 자펀드의 총 규모를 기존 8000억 원에서 올해 1조 원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한섭 인천창경센터장은 “다른 지자체로부터 꾸준히 모펀드 운영에 대한 문의를 받고 있는 만큼 다른 지역에서도 모펀드를 본격적으로 조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라며 “지자체 투자는 주요 목적이 영리추구보다는 지역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집중돼 있어 초기 스타트업 성장의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해외 진출이 스타트업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지역 벤처의 기회가 오히려 넓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에서 서울에 본사를 두지 않아도 해외 진출하는 데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인천센터는 초기 창업 기업의 투자설명회(IR) 지원 사업인 빅웨이브를 확대 개편해 국내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케일업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이 센터장은 “4년차를 맞이한 빅웨이브는 국내 유망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진출을 통해 스케일업을 이룰 수 있도록 국내외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원을 펼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의 혁신 실험에 다른 지자체도 호응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이다. 올해 6월 모태펀드 250억 원, KDB산업은행 500억 원, BNK부산은행 100억 원, 부산시 50억 원 등 총 1000억 원 출자로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가 결성됐다. 지방 중심의 개방적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부산 북항 내 폐창고에는 글로벌 창업허브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밖에 전남도는 2026년까지 총 5000억 원 규모의 전남미래혁신산업펀드 조성을 추진한다.
지역 투자 활성화는 초기 스타트업 성장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초기 창업 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 와중에 지역 기반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달 발표한 상반기 벤처투자 동향에 따르면 창업한 지 3년 미만인 벤처·스타트업은 올 상반기 총 9846억 원을 투자 받았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9.6% 감소한 수치다. 이 센터장은 “스타트업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민간투자기관들은 안정 지향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창경센터는 초기 기업의 발굴 및 육성에 특화돼 있는 만큼 시리즈A 이하 초기 투자에 대한 투자심리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자금조달뿐만 아니라 지역 내 사업 확대도 기대된다. 창경센터를 중심으로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간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강화되는 추세다. 지난달 중기부 주도 아래 출범한 딥테크 밸류업 프로그램은 전국에 위치한 창경센터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을 매칭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통상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선정까지 하는 과정이 2~3개월 걸리지만 신규 프로그램을 통해 기간이 1개월 이내로 단축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