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대출 공부


“대출 받으려고 알람 맞춰두고 오픈런을 하는 것도 기가 막혔는데 이제는 공부도 해야 한다니까요.”

최근 아파트 갈아타기를 하려던 A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A 씨는 최근 정부와 금융권의 대출 조이기 여파를 직접적으로 맞았다. 정부가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시행하면서 대출 한도가 줄어든 가운데 A 씨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던 은행이 갑자기 1주택자에 대한 대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난감해진 A 씨는 연차를 쓰고 은행 지점 수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온라인으로 대출을 받는 것도 시도했지만 오픈런이라는 장벽에 막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올봄부터 시작된 부동산 상승세를 억누르겠다며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고 한도나 대상을 제한하는 등의 규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대출을 조여 매수세를 약화시키고 상승세를 막겠다는 이 발상은 과거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영끌’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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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시장의 움직임을 완전히 잘못 판단한 것이다. 현재 매수의 주축은 ‘영끌러’가 아닌 ‘실수요자’다. 신고가 행렬도 서울 강남권 등 일명 상급지로 분류되는 곳에서 한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 그 외 지역은 여전히 한파에 떨고 있다. 특히 수십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신고가에 사들이며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정작 이번 대출 규제의 한파를 피해가고 있다. 최근 신고가를 기록한 아파트들의 상당수가 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거래됐기 때문이다. 집값을 끌어올린 주범은 따로 있는데 애꿎은 실수요자를 때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뒤늦게 실수요자 대상 대출을 챙기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일부 은행들도 기존의 갈아타기용 대출 금지 조치를 번복하거나 예외 조항을 만들고 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방침에 또다시 혼란스러워진 A 씨는 여전히 은행의 문을 두들기며 ‘대출 공부’를 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이 어떤 피해를 야기하는지 정부와 금융권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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