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7개월째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가 서방을 겨냥한 핵 위협의 효과가 전쟁 초기보다 떨어져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핵 전쟁을 너무 자주 언급해 서방은 물론이고 러시아 내부 학계에서도 위협의 효과가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서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 시각) 러시아 크렘린궁 내부에서도 핵무기 사용 위협이 효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을 향한 경고를 쏟아내왔다. 특히 최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이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을 완화할 조짐을 보이며 경고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은 지난 19일 "서방 미사일이 러시아를 공격하면 핵무기를 동원한 세계대전이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전문가로 꼽히는 세르게이 카라가노프는 12일 한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대한 작은 전술핵을 사용하는 '제한적 핵공격'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러시아는 핵공격이나 국가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만 핵무기를 쓴다는 현행 핵교리를 수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아무리 핵 사용을 놓고 위협성 발언을 이어가도 서방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러시아 당국자는 "핵 경고가 넘쳐난다"면서 "이미 그런 발언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에 누구도 겁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교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익명의 러시아 학자도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 핵 옵션은 가능한 시나리오 중 "가장 실현 가능성이 작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의 핵 무기 사용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에 속하는 협력국의 공감을 얻지 못할 뿐더러 군사적 관점에서도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러시아 정치 관련 컨설팅 회사 R.폴리틱 설립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핵무기 사용이나 나토 회원국을 겨냥한 공격은 "푸틴은 '러시아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고 다른 출구가 없다'고 생각할 때만 고려할 방안"이라고 일축했다.
다만 일각에선 러시아의 핵위협이 미국의 차기 대선 결과에는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 위협을 대선 이슈로 쟁점화하며 핵전쟁을 막기 위해선 자신이 다시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