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밀주방서 유쾌한 소동극…내로남불 사회를 꼬집다

◆서울예술단 가무극 '금란방'

조선시대 마당극에 관객도 참여

쉴틈 없는 이벤트로 지루함 없어

28일 국립극장서 '마지막 무대'

금란방 공연 사진. 사진제공=서울예술단금란방 공연 사진. 사진제공=서울예술단




“금녀의 짝은 누가 되어야 할지, 여러분이 한 번 정해주시죠!”



한복인지 드레스인지 알 수 없는 정체 불명의 차림을 한 여성이 무대에서 부채를 들고 크게 외친다. 소쿠리를 든 배우들은 일사분란하게 관객들에게 투표를 받는다. 이날 관객들이 정한 금녀의 짝은 대감댁 첫째 딸 금강. 또 다른 후보였던 대감댁 머슴 불괴가 땅을 치고 통곡하는 가운데 대감은 ‘아녀자끼리 무엇하는 짓이냐’며 노발대발한다. 관객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며 대감에게 ‘우~’하고 야유를 보낸다.

금란방 공연 모습. 사진제공= 서울예술단금란방 공연 모습. 사진제공= 서울예술단




28일 폐막을 앞둔 서울예술단 대표 레퍼토리 창작 가무국 ‘금란방’이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금란방’은 금주령이 내려진 18세기 조선 영조 시대에 있을 법한 밀주방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유쾌한 소동극으로 전통 한국 음악 요소에 클럽 디제잉과 라이브 밴드를 결합해 만든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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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방’의 배경은 조선의 21대 왕 영조 시대. 백성들에게 통속 소설을 금지하고 자신만 몰래 문란한 소설 듣기를 즐기는 왕과 사대부로 태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압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신하 김윤신 등 고위급들의 행태를 통해 타인에게 엄격한 한국 사회의 ‘내로남불’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사실과 사료에 집착하는 다른 시대극과 달리 권력에 대항하는 백성들, 동성애적 요소 등을 포함해 전통 예술을 현대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시즌 ‘금란방’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무대다. 공연은 원형 돔 형태의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진행되는데, 공연장 중앙에 사각형의 무대를 설치하고 앞·뒤·좌·우에 관객석을 배치했다. 공연 중간에 이야기를 이어가는 배우들이 추임새를 넣으면 관객석에 미리 준비된 와인컵에 불이 들어온다. 그러면 관객들은 관객들은 와인컵을 들고 추임새를 따라한다. 마치 조선시대 마당극이 현대에 부활한듯 관객과 배우들의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진다. 배우들은 틈나는 대로 관객석 곳곳으로 뛰어와 춤을 추고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데 이 역시 사극 드라마 속에서 보던 마당 놀이의 한 장면을 연상 시킨다.

관객들의 다채로운 참여도 ‘금란방’ 만의 흥미로운 즐길 거리다. 관객들은 극 중 매화의 장옷을 둘러메거나 머리 위로 쓰는 등 자유롭게 공연에 참여하며 감상자가 아닌 작품을 구성하는 스탭 혹은 배우의 일부가 되어 120분의 러닝타임을 즐긴다. 휴식시간은 없지만 배우들이 틈나는 대로 관객들에게 이벤트를 제공하다보니,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금란방 공연 모습. 사진제공= 서울예술단금란방 공연 모습. 사진제공= 서울예술단


기획뿐 아니라 대본도 꼼꼼하다. 뜨거운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진 왕, 금란방에 잠입한 김윤신, 금란방에서 매일 이자상을 훔쳐 보는 김윤신의 딸, 이야기꾼 이자상이 늘어놓는 이야기 속 주인공 금녀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120분간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통상 연극이나 뮤지컬 등 무대 작품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평면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과 달리 ‘금란방’은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다소 어려운 형식을 적용했지만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조금도 막힘이 없다. 공연은 9월 28일까지.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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