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 상표를 침해하는 세계 위조상품 무역 규모가 한 해 1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K뷰티·패션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요청 시 삭제(노티스 앤 테이크다운)’ 원칙 대응에도 동의했지만 사전 모니터링 의무화에 대해서는 상표권자와 플랫폼사의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민경환 LG생활건강(051900) 상무는 26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민관 협력 위조상품 대응강화 컨퍼런스 패널 토론에서 “화장품 브랜드 ‘후’의 용기를 굉장히 복잡하게 해놓은 것은 베끼기 난도를 높이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중국 등 해외에는 용기만 살짝 다르게 한 가품이 판을 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민 상무는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국내 대리인 지정제 시행에 대해 뜻을 같이하면서도 유명무실한 제도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리인 지정제는 우리나라에 주소지나 연락처가 없는 해외 사업자로 하여금 국내에 대리인을 둬 가품 또는 소비자 피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도록 하는 제도다. 일정 규모 이상의 해외 플랫폼은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지난 달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는 “플랫폼에 있는 중국 모조품 판매사에 실제 전화를 해보면 주소나 연락처 모두가 거짓”이라며 “자질이 없는 국내 대리인을 이름만 걸어두는 식으로 제도가 운영되면 가품 방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수 한국패션산업협회 상무도 “국내 플랫폼사가 해외 플랫폼사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해외 플랫폼사도 국내 대리인을 반드시 지정하도록 하고 국내 대리인이 (가품의 유통 등에 대해) 정기적인 조사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명진 한국온라인쇼핑업체 실장은 노티스 앤 테이크다운과 관련해 "위조상품 유통방지 협의회에서 노티스 앤 테이크다운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법제화가 된다면 권리자가 구체적인 증빙 서류와 위임장 등을 같이 제출해주면 좋겠다”며 “그래야 실질적인 조치가 빨리 이뤄질 수 있고 무분별한 신고도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사전 모니터링 의무화에 대해서는 다소 입장차를 보였다. 하 실장은 “중개 사업자는 직접적인 판매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상품이 위조품인지 진품인지 판단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며 “사전 모니터링을 의무화하면서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규제한다면 중개업자 입장에서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