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슈를 한데 묶어 처리하는 ‘메가 샌드박스’식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저출생만 해도 부동산과 교육, 일·가정 양립 등 여러 사안이 복잡하기 뒤섞여 있는 만큼 개별 사안을 하나씩 풀려고 해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인공지능(AI) 산업을 위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정부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7일 상의와 한국은행이 공동 개최한 ‘제3회 한은·상의 세미나’에서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상당히 많은 사회적 문제를 지니고 있는데 이게 쉽게 풀 수 없고 얽히고설킨 문제가 되고 있다”며 “규제와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하고 미래의 계획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생각해서 접근할 수 있는 메가 샌드박스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저출생 문제를 예로 들었다. 저출생의 경우 아이를 더 많이 낳는 데 예산을 쏟아붓는데 실제로는 부동산과 교육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한 가지 사안을 해결해도 다른 것을 풀지 못하면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모든 문제를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은 “대한상의는 이런 고민하에 메가 샌드박스 도입을 연구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AI 산업에 얼마나 지원을 할 것이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지금 빅테크들이 엄청난 돈을 AI에 붓고 있지만 실제로 수익이 그만큼 되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AI를 안 하게 되면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잃게 되니 실제로는 어느 정도까지는 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정부는 첨단 사업을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고 금융권의 문제도 있다”며 “산업계는 AI 투자를 얼마나 할 것이냐와 공급망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에 대한 컨센서스(합의)를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미나 발표를 맡은 민경희 대한상의 SGI 연구위원도 “국내 AI 환경은 선도국에 비해 자금·인프라·인재 등이 미흡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정부 및 기업 대응이 필요한데 국내 AI 관련 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벤처 투자 환경을 활성화해 대규모 자금 소요를 지원하고 장기적인 투자 유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리처드 볼드윈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수는 “앞으로 글로벌 교역은 지정학적 환경 변화에 따른 제조업 공급망 변화와 AI 등 기술 발전에 힘입은 신흥국의 서비스 공급망 참여에 모두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둘 중에서는) 후자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국이 주요국보다 공급망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선영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은 “경제 내 제조업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중국과 비슷하지만 내수 비중이 낮아 세계 공급망 교란에 중국보다 더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한국 제조업의 직간접 수출률은 50%에 육박하는데 전쟁과 팬데믹 등 교역이 전면 중단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제조업 생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품이 판매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