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한동훈 "민주화보상금 사양 장기표…정치개혁 옳은 길 확신"

"어떤 마음으로 정치 할지 다지고 또 다지겠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그리고 통일' 포럼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그리고 통일' 포럼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지만, 그 당연한 영예마저 사양한 장기표 선생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 빛나는 것은 사실”이라며 “어떤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지 다지고 또 다지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故)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의 생전 언행을 공유하며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대표는 “장 선생은 그야말로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헌신하셨음에도 ‘국민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서 할 일을 한 것일 뿐이고 대가를 바라고 민주화운동을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거액의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지 않으셨다”고 적었다.



이어 한 대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공적 마인드를 요구받는 공인도 아니였다”며 “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러기 정말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그럴 거 같은데, 막상 닥치면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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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한 대표는 “장기표 선생은 인생의 마지막 해인 올해 초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면책특권도 사라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정치개혁을 주장하셨다”며 “당시 총선을 지휘하면서 바로 똑같은 내용의 정치개혁을 주장한 저는 장기표 선생의 말씀에 ‘이게 옳은 길이구나’하는 안도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부산 금정 재보궐선거를 응원하러 부산에 가는 길, 어떤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지 다지고 또 다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 대표는 대학시절 장 선생과의 일화도 공개했다. 한 대표는 “1990년대 초 대학생 때 어느 날 지각해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옆자리에 지금 제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며 “장기표 선생이었다”고 적었다. 또 “‘졸업하러 왔어요’ 라고 하시더라구요. 이십여년 만에 우여곡절 끝에 복학하셨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은 지난 22일 별세했다. 향년 79세. 장 원장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1995년 졸업하기까지 꼬박 29년이 걸린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을 맡아 박정희 정부의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수배·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당시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인권운동가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1980년대 장 원장은 민주통일국민회의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창립에 앞장섰고, 1985년 청계천 피복노조 투쟁 사건, 1986년 인천 5·3 사태 등을 주도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감옥에서만 9년을 보내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한 장 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약 10억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가 노년에 국가에서 받은 돈은 국민연금과 베트남전 참전 수당을 합쳐 월 220만원이 전부였다. “농사짓는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특별히 보상금을 따로 받는 건 파렴치한 짓”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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