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금융 당국에 적발된 횡령·배임 등 금융 사고는 총 26건이다. 2022년(22건)과 지난해(19건) 연간 건수를 8개월 만에 넘을 정도로 숫자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사고 유형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규모가 100억 원 이상인 ‘대형 사고’ 7건 가운데 6건이 허위 서류를 이용한 부당 대출이었으며 나머지 1건은 은행 직원이 아예 고객 대출금을 가로채기 위해 벌인 사기 사건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금융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은행의 내부 검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부당 대출 사건에는 대출 브로커, 그와 짬짜미한 은행 직원의 일탈이 공식처럼 등장한다. 은행 직원의 대출 서류 조작도 이 조직 범죄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다. 작정하고 허위 서류를 꾸며 벌이는 일을 막기 어렵다지만 그렇다면 내부통제 체계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사고가 반복되면서 은행 조직이 불법에 면역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부당 대출이 불쾌했던 이유는 또 있다. 올여름 유난했던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던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금융 당국과 은행은 대출을 옥죄고 있다. 은행들은 1주택자라도 결혼·상속·이혼 등은 실수요로 판단해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 대출을 내주고 있지만 청첩장이나 예식장 계약서는 물론 이혼 소송 관련 법원 서류 등 ‘증빙 서류’를 요구한다. 대출 총액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지만 자신들은 정작 직원의 서류 조작도 걸러내지 못하면서 소비자를 향해서는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대출을 내주겠다며 목에 힘을 주고 있는 격이다. 내부통제는 허술하지만 고객을 대상으로 한 ‘외부통제’는 차질 없이 이행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대출이 이렇게 까다로워진 책임에서 은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은행들이 알짜 수익원인 가계대출 실적을 연초 세운 목표치를 초과할 정도로 거두자 금융 당국의 경고가 나왔고 결국 실적이 좋은 은행을 중심으로 부랴부랴 대출을 죄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조치 강도가 높을수록 대출 현장이 받은 파급은 거칠었고 소비자가 받은 혼란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금융 사고가 터져도 각 은행에서 면직·정직 등 처분 또는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가 전체의 20%를 넘는다. 사고를 숨기기 급급하다 금융 당국이나 언론에 의해 공개가 되면 그제야 사과를 하는 것을 관례처럼 여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의혹도 금감원이 먼저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고객 신뢰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소비자에 사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특히 올해는 대출 시장을 혼란하게 한 점까지 얹어 2배로 사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