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연이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내놓으면서 서학개미들도 엔비디아·테슬라·애플 등을 팔아 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위기론’으로 뚜렷한 주도주가 실종된 상황에서 서학개미들은 개별 종목보다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해 리스크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 하락에 베팅한 대신 고배당주와 대형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대거 사들였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0.33% 하락한 6만 1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개장 직후에는 5만 9900원까지 밀리며 52주 최저가를 또다시 경신했다. 장중 주가가 6만 원을 밑돈 것은 지난해 3월 16일 이후 약 1년 7개월 만이다. 모건스탠리에 이어 맥쿼리가 지난달 말 삼성전자의 목표가를 12만 5000원에서 6만 4000원으로 절반가량 낮춘 여파였다. 외국인은 이날도 삼성전자를 1127억 원어치 팔아 치우며 지난달 3일 이후 18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반도체 위기론에 대한 공포로 서학개미들도 글로벌 거대 기술기업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모건스탠리가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가를 절반 이상 낮춘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엔비디아를 1억 7076만 달러(약 2252억 원), 테슬라를 2억 4206만 달러(약 3194억 원), 애플을 1억 7508만 달러(약 2310억 원) 각각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디렉시온 세미컨덕터 베어 3배 ETF’가 5830만 달러(약 769억 원)로 1위를 차지했다. 이 ETF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반도체 30개 회사를 묶은 반도체지수(ICESEMIT)의 일일 수익률을 3배 역으로 추종하는 지수다.
개인들은 대신 경기방어주로 분류되는 ETF에 투자해 위험을 회피했다. 같은 기간 대표적인 고배당주인 ‘슈와브 미국 배당주 ETF’는 순매수액 4712만 달러(약 621억 원)로 2위를 차지했다. 이 ETF는 10년 연속 배당에 더해, 매년 배당금을 늘리는 100개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개인들은 동 기간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채 3배 ETF’도 3050만 달러(약 403억 원)어치 사들이며 순매수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기간 미국 주식 시장에서 총 5억 8712만 달러어치를 팔아 치운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해당 상품은 20년 이상 장기 미국채를 3배로 추종하는 ETF로 금리가 낮아질수록 이익을 얻는 구조다.
순매수 3위와 5위에는 ‘뱅가드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ETF’와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숏 QQQ ETF’ 가 나란히 자리를 꿰찼다. 이들은 각각 S&P500지수를 정방향으로, 나스닥100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3배 역방향으로 추종하는 상품이다. 지난달 18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을 단행한 이후 S&P500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자 추가 상승 여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전망이 엇갈린 것으로 보인다.
투자 전문가들은 11월 미국 대선,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당분간 변동성 장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P500이 지난달 기록한 사상 최고치가 단단한 상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수와 여전히 남아 있는 경기 불확실성이 위험자산에 대한 베팅을 제한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 부통령 후보 토론회와 사전투표가 주식시장에 변동성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