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역사속 하루] 1884년 10월 11일 평화운동가 엘리너 루스벨트 출생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정치 지도자들 중에는 본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배우자들이 간혹 있다. 그 중 하나가 엘리너 루스벨트다. 그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로서 12년간(1933~1945년) 대통령직을 수행한 남편과 사별한 후에도 세상과 적극 소통했다. 그 결과 그는 지금까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부인으로 남아 있다. 무엇이 비결이었을까.



그의 관심은 언제나 소외된 약자들을 향했다. 엘리너는 자신의 일기와도 같은 칼럼 ‘나의 나날’을 통해 27년 동안 세상과 적극 소통했다. 그 중 한 소녀가 남긴 일기에 대한 소감을 담은 1952년 4월 22일의 기록은 미국 사회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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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 벌어진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 우리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일들을 다시 겪지 않도록 상기하자는 것이지요. (중략) 이 일기는 틀림없이 억압과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를 예방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입니다.”

7주 후 미국에서 ‘안네의 일기’ 초판이 출판됐다. 추천사에서 엘리너는 이렇게 말했다. “‘안네의 일기’는 놀라운 책입니다. 진실을 말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 소녀가 쓴 이 책은 전쟁에 관해 쓴 글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감동적입니다. 이 책은 내가 읽은 그 어떤 것보다 인류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안네의 일기’는 인권교과서로 널리 읽혔다. 이 책 덕분에 그때까지 미국 사회에 뿌리 깊었던 반유대주의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유대인 희생에 대한 공감은 이후 미국의 시민권 확대와 세계의 인권 운동에도 영향을 줬다.

그의 활발한 행보는 진정성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적십자 봉사에서 시작된 엘리너의 참여 활동은 유엔인권이사회가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남편의 업적이 망각되더라도 그의 이름은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세평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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