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일본도 살인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이 사건의 피고인 백 모(37)씨가 재판장에서 “전례 없는 기본권 말살 때문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김건희 재벌집 막내아들로 인해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 것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일본도’라는 잔혹한 범행 도구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도검류 구매와 관리 등에 대한 사각지대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건 이후로도 발견되고 있는 도검류 반입의 ‘맹점’과 관리당국의 ‘조치’를 서울경제신문이 정리해봤습니다.
버젓이 팔리는 ‘흉기’…어디서 오는가 했더니
해외직구의 인기에 힘입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도검류의 국내반입 시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9일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통관단계에서 적발된 무허가 도검류 반입 수량은 367건이었다. 이후 2021년 965건, 2022년 1464건, 2023년 2461건으로 대폭 늘었다.
도검류 해외 반입 시도의 증가세는 관세청이 사회안전 위해물품 중 ‘주요 테러물품’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는 총기류, 실탄류 등을 통틀어 가장 급격하게 이뤄졌다.
칼날의 길이가 15cm 이상으로 흉기로 사용될 위험이 높은 도검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입을 금하고 있다.
지난 7월 은평구 ‘일본도 살인 사건’에서 사용된 도검류는 엄격한 허가 절차에 따라 구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해외 직구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도검류 등 흉기로 사용될 소지가 있는 물건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 의원은 “해외직구의 증가로 국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흉기류 도검 반입 시도가 늘고 있다”면서 “일부 도검은 자칫 범죄에서 치명적인 흉기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통관 단계에서 엄격한 허가 여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늦었지만 전수점검…경찰, 도검류 16% ‘허가취소’
이 가운데 경찰은 소지가 허가된 도검류에 대한 전수 점검까지 강행하면서 관리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찰청은 올해 8~9월 2개월 동안 소지허가 도검 전수 점검을 실시했다고 이달 7일 밝혔다.
점검 실시 대상 도검 총 8만 2641정 중 분실 등 사유로 당장 점검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한 7만 3424정을 점검했으며 이 중 총 1만 3661정의 소지허가를 취소했다.
소지허가의 취소 사유로는 분실·도난이 47.2%로 가장 많았으며 소유권 포기(45.1%), 범죄경력(2.6%), 사망(1.7%), 정신질환(0.4%)이 뒤를 이었다.
특히 경찰은 직접 상담을 통해 도검류 허가 취소가 필요한 사례를 적극 발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남경찰청 진도경찰서는 도검류 소지 대상자를 만나 실물 확인 및 상담을 진행하던 중 위험성을 감지하고 대상자를 설득해 소지허가 취소와 도검 회수를 이끌어냈다.
당시 상담 대상자는 “아들을 훈육할 때마다 경찰이 출동해 나를 가해자 취급한다”, “나도 나를 못 믿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전수 점검을 통해 허가 취소된 도검류 중 6305정을 회수했다. 회수된 도검류는 무기 폐기 예산을 활용해 올해 말 일괄 폐기할 예정이다.
또한, 경찰은 소지허가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확인하지 못한 9217정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총포화약법 등 근거 규정에 따라 ‘도검 보관 명령’ 공시 송달을 거쳐 소지허가 취소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논란 지속되는 ‘일본도 살인사건’…유족 “신상공개 촉구”
일본도 살일 사건의 잔혹성이 연일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이달 4일 피해자 유족 측이 법원에 피고인 백 모(37)씨의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앞서 경찰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유족 측이 이 같은 요청을 한 바 있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정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서는 특정중대범죄에 대해서 수사 단계와 재판 단계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신상공개가 되기 위해서는 공소제기 전에는 특정중대범죄 사건이 아니었으나 재판 과정에서 공소사실이 변경된 사건이어야 한다.
유족 측은 “(특정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가해자의 신상이 피의자 단계에서 공개되지 못했다면 피고인 단계에서 이를 바로 잡아 공개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마련하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 단계에서 제대로 신상공개 논의가 안 됐다는 점에서 규정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이 백 씨의 신상공개를 강력히 촉구하는 것은 앞서 비슷한 강력 사건의 가해자들의 신상공개가 일찍이 이뤄진 탓이다. 신상공개 여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유족 측은 의견서를 통해 지난 8월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 흡연장에서 이웃 주민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된 최성우의 신상이 공개된 것을 언급하며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을 도모할 필요성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