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파트너스가 14일 주당 83만 원의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5.34%(110만 5163주)를 확보하게 됐지만 장 종료 2시간 전만 해도 향방은 알 수 없었다. 이날 오전 주가가 80만 원을 오르내릴 때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장을 더 봐야 한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특히 오후 1시 12분 주가가 82만 원을 찍는 순간 MBK 측은 ‘공개매수가 힘들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주가가 다시 80만 원 아래로 내려오면서 그때까지 미동이 없던 기관들이 MBK 쪽으로 몰려들었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지분은 이미 시장에서 정리했고 헤지펀드들이 물량을 쥐고 있었는데 주가가 83만 원을 넘어섰다면 시장에서 팔았겠지만 다시 주가가 하락하면서 공개매수에 응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고려아연(010130) 주가는 전날 대비 0.13% 하락한 79만 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82만 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장 막판에 물량이 쏟아지면서 80만 원 아래로 마감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주당 83만 원의 자사주 취득 공개매수를 시작하고 MBK 측이 공개매수가를 75만 원에서 83만 원에서 높인 4일 이후 종가 기준 83만 원을 넘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11일 장중 80만 1000원, 이날 82만 원을 터치한 게 최고점이다.
특히 최 회장이 지난 11일 공개매수가를 89만 원으로 상향하고 매수 물량도 최대 414만 657주(20.0%)로 높인 특단의 조치에도 공개매수 마지막 날 주가는 크게 오르지 못했다. MBK가 약 7%로 잡았던 최소 매수 물량을 없앤 점도 이번 성공의 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약 33%의 지분율인 영풍·MBK 측이 최대 목표 물량인 302만 4881주(14.61%)를 채우지 못했음에도 5.34%를 확보만 만큼 절반 이상의 성공으로 보고 있다. 의결권이 근 5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공개매수 마지막 날 장중 최고가조차 83만 원 아래에서 형성되자 시세차익을 노리는 아비트라지 펀드 일부가 MBK의 공개매수에 청약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MBK 공개매수에 청약한 뒤 청약 결과를 보고 장내 매도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응모하는 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에 청약이 몰렸을 때 안분비례에 대한 불안감이 투자자 사이에서 형성된 측면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이슈가 법적·사회적·정치적 이슈로 번지고 있어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증권사 프롭(자기자본 운용) 부서나 헤지펀드들이 매매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의 불확실성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영풍·MBK가 제기한 자사주 취득 공개매수 금지 가처분 신청의 심문 기일은 18일이며 그 결과는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 종료되는 23일 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의 공개매수 종료 후 유통 물량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나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펀드 물량도 공개매수 청약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반 주주가 소유한 주식 수가 전체 유통 주식 수의 5% 미만이면 거래소로부터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고 유통 주식 수가 총 발행 주식 대비 1% 미만이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이제부터 23일까지는 고려아연의 시간이다. 다만 자사주는 6개월간 처분할 수 없고 의결권도 없어 공개매수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최 회장 측에 마냥 호재는 아니다. 많은 물량이 청약할 수록 차입금을 대다수 소진해야 하는 부담감도 크다.
MBK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 영풍정밀(036560) 주가는 5.31% 상승한 3만 750원에 마감해 최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해냈다. 영풍·MBK의 영풍정밀 공개매수에는 단 830주(2490만원)만이 청약에 응했다. 최 회장이 공개매수가를 3만5000원으로 높이고, 매수 물량을 최대 35%(551만2500주)로 확대한 영향이다. 다만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최 회장 측에 몰리게 돼 안분비례에 따라 일부 투자자 손실이 우려된다.
고려아연 의결권 1.85%를 쥔 영풍정밀은 장형진 고문을 비롯한 장 씨 일가가 지분 21.25%를, 최 회장 측이 지분 35.45%를 보유하고 있다. MBK는 아예 영풍정밀은 포기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을 들이지 않게 되는 결과물인 셈이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영풍정밀을 사수했지만 약 2000억 원의 개인 자금이 묶이는 부담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