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란에 으레 ‘독서’라고 적어내던 때가 있었다. 놀거리가 마땅히 없어 누구나 독서를 취미로 적어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후 일을 하면서는 보고서를 읽는 것이 독서의 전부였다. 그렇게 독서는 한참 동안 요식행위였다.
그럼에도 길을 잃을 때마다 나를 다시 길 위로 올려주는 것은 역시 책이었다. 책 속 문장은 종종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다. 미국 고등교육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던 교육학자이자 작가 파커 J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 나오는 문장도 그랬다.
“정치는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가장 취약한 이들부터 고통받는다.” 읽을 때는 너무 거창한 제목과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정가로서 난관에 봉착할 때,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이 문장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주어의 자리에 ‘정책’을 넣어봤다.
정책은 사람의 모든 생애 과정에 개입한다. 사실 모든 정책은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받게 될 고통을 덜기 위해 마련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결혼과 출산을 위한 정책은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지금’ ‘여기’밖에 없는 듯 살아가는 청년들의 마음에서 시작한다. 아이 낳길 포기하게 하는 양육 환경에서 시작하는 일·가정 양립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고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 하는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육상선수가 제대로 된 러닝화도 없이 평탄하지 못한 출발선에 선 것과 비슷하다. 이들이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원하는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출산과 양육에 꼭 필요한 주거 안정과 양육 부담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또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정책을 보완하고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도록 돕는 방식을 넘어 시차출퇴근제와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워크 등 일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는 단순히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모두의 미래를 위해 ‘없으면 안 되는’ 영역이다.
더 나은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고령화 정책도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얼마 전 한 노인 요양원을 다녀온 후 한참 동안 마음이 4인실 침실 위에 머물렀다. 그나마 환경이 좋다고 하는 4인실이지만 직접 살펴보니 인권을 보장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걸 실감했다. 대다수 요양시설들이 공간 부족으로 인해 다인실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생각했던 노후는 몸 하나 겨우 누일 작은 침대칸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정책이 시작돼야 한다. 원하는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취약한 이들이 느끼는 일상의 고통이 출발점이다. 국가는 누구에게나 ‘기댈 언덕’이 돼야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시작된 정책은 모든 사회 주체의 도움을 받을 때 더욱 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