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10월 모의고사를 ‘자살 방지’ 모의고사라고 불러요. 너무 어려워서 등급이 낮게 나오면 학생들이 수능 직전에 ‘멘탈 붕괴’ 상태에 빠질 수 있으니까 일부러 난이도를 쉽게 조정한다는 뜻이에요.”
삼수 끝에 대학 입시에 성공한 변 모(21) 씨는 수험 생활 내내 정신건강과 관련된 자학적 표현을 들어왔다. 변 씨는 “친구들끼리 ‘시험 못 보면 자살 각’ ‘오늘 한강 물 몇 도냐’ ‘정병(정신병) 걸릴 것 같다’는 말을 습관처럼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10대 우울증·불안장애 환자가 최근 5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월별 환자 수를 살펴보면 매년 11월마다 최대를 기록해 수능을 앞두고 수험생의 정신적 압박이 극도로 치닫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10대 우울증·불안장애 환자 수는 2019년 5만 7979명(월별 중복 환자 수 제외)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 9만 662명을 기록했다. 5년 전과 비교해 약 56.4% 뛴 셈이다.
특히 매년 수능이 치러지는 11월에 우울증·불안장애 환자 수가 가장 많았다. 2019년 11월 10대 환자 수는 2만 2093명으로 연평균(1만 7887명)보다 약 23% 많았고 지난해 11월 환자 수도 3만 6078명으로 연평균(3만 572명)보다 18% 이상 많았다. 수능 직전·직후인 10월과 12월 역시 매년 번갈아가며 환자 수 2·3위를 기록했다.
집계 대상을 전체 연령대로 넓혔을 때도 11월에 환자 수가 가장 많았지만 평균보다 고작 2% 높은 수준임을 고려하면 10대 집단에서만 유독 급격한 증가 폭이 나타나는 모양새다. 30~40대 등 수능과 무관한 연령대의 경우 11월이 아닌 다른 시기에 최다 환자 수를 기록했다.
결국 시험 한 번에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극단적 입시 환경이 10대의 정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해석이 나온다. 변 씨 역시 “수능이 다가올수록 예민해지고 다투거나 종일 우울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면서 “성적 스트레스로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거나 자해를 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10대 이하의 우울증 관련 약 처방량이 급격히 늘어난 추세도 포착된다.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연령대별 마약류 및 향정신성의약품 처방 현황’에 따르면 10대 이하의 1인당 처방량은 2014년 46.5개에서 2023년 98.3개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약사 A(28) 씨는 “대치동 등 유명 학군에서는 수험생들이 불안·두근거림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 정신과 약을 오프라벨(허가받은 질환 이외 용도)로 처방받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매년 수능철마다 수험생이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등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신건강 관련 대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역시 정신건강 관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전 국민 마음 건강 투자·상담’ 프로그램 등 예방 정책을 도입하고 관련 예산도 늘리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성인보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상담 치료를 넘어 근본적인 스트레스 요인 제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배승민 가천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열한 입시 경쟁 등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상담·치료에도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