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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 물량 3~4% 잡아라"…'이사회 장악' 치열한 수싸움[시그널]

[고려아연 '2차 가처분' 기각]

◆ 경영권 분쟁 내년까지 장기화

법적 리스크 해소에 주가 6% 반등

崔, 우호지분 확보 등 갈 길 멀어

MBK, 주총서 이사회 변화 꾀해

24일부터 장내 지분 매입 나설듯

국민연금 캐스팅보트 역할 커져

장형진(왼쪽)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 제공=영풍·고려아연장형진(왼쪽)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 제공=영풍·고려아연






법원 판결에 따라 고려아연(010130)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허용됐지만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영풍(000670)·MBK파트너스의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 장기전을 예고한다. 공개매수에 이어 지분 과반을 차지하기 위해 시중에 남아 있는 3~4%의 물량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MBK 측은 서둘러 임시 주총 개최를 요청해 정기 주총까지 두 차례의 기회에서 최대한 이사진을 늘릴 계획이다. 최 회장 측 역시 트라피구라 등 우호 세력을 최대한 결집하면서 지분 매입과 자사주를 활용한 의결권 확대를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6.43% 상승한 87만 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76만 1000원까지 하락했던 것이 법원의 기각 판결 이후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인 89만 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날이 공개매수에 청약할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공개매수가 성공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 지분이기 때문에 주총 표 대결에서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공개매수에 성공하더라도 베인캐피털의 2.5%만 더해지기 때문에 우호 지분을 모두 잡아둔다고 해도 37.06% 대 38.47%로 지분 대결에서 MBK 측에 밀린다. 의결권 확보를 위한 장내 지분 매수와 우호 세력 포섭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최 회장은 다음 달 방한하는 협력사 트라피구라 경영진에 지분 매입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고려아연이 기존에 보유한 2.41%의 자사주를 활용해 의결권을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려아연은 올 7월 1.4%의 자사주 매입을 마쳤고 8월에 4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신탁계약을 한국투자증권과 체결했다.



금융감독원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자사주 취득이 연속으로 이뤄질 경우 마지막 계약일 기준 6개월 후부터 처분이 가능하다. 즉 내년 2월 이후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넘길 수 있다. 다만 이때는 정기 주총을 위한 주주명부가 확정되는 올해 12월 31일이 지나버려 의결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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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 2에 따르면 △임직원에 대한 상여금으로 자기주식을 교부하는 경우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하는 경우 등 예외가 있어 고려아연이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있다. 단, 경영진이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종업원의 자사주 매입에 회사 자금을 지원한 경우 배임으로 본 대법원 판결도 있어 법적 공방이 발생할 리스크는 변수다.

MBK 역시 공개매수가 끝난 뒤 주가가 하락할 때 장내에서 추가로 지분을 확보하며 공세를 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해도 회사가 거부하면 법원 가처분 허용까지 가야 해 통상 2~3개월이 걸린다.

변수는 최대 20%가 자사주 공개매수에 응하고 나면 어느 정도의 물량이 남아 있을지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과 액티브 펀드 등이 일부 정리를 하면 약 3~4% 유통 물량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측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풍·MBK는 이사회를 장악해 최 회장을 해임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사 해임은 출석 주주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특별 결의 요건이라 당장은 불가능하다. 추가 이사 선임을 통해 현재 ‘1대12’로 절대적 열세인 이사회 구도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최 회장 측 이사진 12명 중 정기 주총이 열리는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들은 총 5명이다. 이들 숫자를 고려하면 영풍·MBK 연합은 내년 정기 주총까지 최소한 4명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과 동시에 최 회장 측 인사가 추가 선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반대로 최 회장 측은 기존 이사진의 임기 연장을 도모하거나 신규 이사 후보들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표 대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눈은 국민연금에 쏠려 있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지분을 뺀 지분율은 영풍·MBK와 최 회장 측이 각각 49% 대 46%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만큼 더 확실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는 평가다. 공개매수 전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지분은 7.83%였지만 시장에서는 운용사에 위탁해 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지분의 상당 부분을 처분해 현재 남은 지분율이 4~5% 내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 자금이 우호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아니라 적대적 M&A를 통한 경영권 쟁탈에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정 다툼도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MBK는 이날 판결 뒤 대규모 차입을 통한 자사주 공개매수를 결정한 고려아연 현 경영진에 대해 “자사주 공개매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업무상 배임 등 본안 소송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날 법원 결정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경영자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넓혀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가처분 결정이기는 하지만 경영권 방어를 해야 하는 대표 입장에서 회사 자금이나 신용을 활용해 차입 후 자사주 매입·소각이라는 방식을 선택할 합법적 길이 열렸다”며 “본안 소송이 예정돼 있더라도 최종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그 전까지는 이번 가처분 결과가 유사 사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시은 기자·황정원 기자·이충희 기자·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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