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경기 지역의 한 학교 도서관에서 청소년 성교육 유해 도서로 분류, 폐기한 데 대해 국회 교육위원회 야당 의원들이 22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의 경기도교육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백승아 민주당 의원은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의 노벨문학상 첫 수상자가 됐는데 채식주의자 읽어봤나. 유해한 성교육 도서 같나”라고 물으며 포문을 열었다.
백 의원은 이어 “도 교육청이 성교육 유해도서 선정 공문을 내려보면서 관련 기사를 붙임자료로 보냈는데, 이건 보수 기독교 단체와 국민의힘에서 유해도서라고 주장하는 책들 찍어내기 하라는 그런 이야기 아닌가”라고 했다.
이에 임 교육감은 “채식주의자를 읽어봤는데 아주 깊은 사고가 담긴 작품”이라면서도 “다만 책에 담긴 일부 내용이 학생들이 보기엔 저도 민망할 정도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교육적으로 학부모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이해 간다. 내 아이라면 고등학교 졸업 후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같은 당 정을호 의원은 도 교육청이 공문에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점을 지적했다. 정 의원은 “청소년 보호법의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은 학교 도서관에서 임의로 가져다 쓸 심의 기준이 아니다”라며 “도서관운영위원회 매뉴얼에도 없는 심의 기준을 들이댄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과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도 교육청이 3차례 발송한 공문에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 목록 제출’ ‘심각한 경우 폐기 가능’ 등의 문구가 담긴 것을 문제 삼으며 공문 발송은 검열 또는 강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임 교육감은 “학교 현장에서 딥페이크를 비롯한 성과 관련된 사고와 학교폭력 등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데 이런 문제가 독서에서 생길 수 있지 않냐는 문제 제기가 학부모, 종교 단체에서 나왔다”면서 “공문 발송에 따라 각 학교의 도서관운영위원회에서 자율적으로 문제 되는 도서를 선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문제의 공문에 언론사 기사가 붙임자료로 포함된 데 대해서는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백 의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보고 성희롱을 연관시켰다”며 비판했다.
앞서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청소년 유해도서를 분리·제거해달라’는 내용의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 민원을 접수하고, 같은 해 9∼11월 교육지원청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공문을 두 차례 보낸 바 있다. 공문에는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의 주장을 담은 보도가 함께 담겼다.
그 결과 약 2490개교가 도 교육청 공문에 따라 총 2517권을 성교육 유해도서로 판단해 폐기했다. 가장 많은 학교가 폐기하거나 열람을 제한한 책은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라는 성교육 책이었는데, 이는 지난 2020년 호주출판산업 어워즈에서 ‘올해의 청소년 책’으로 선정된 책이다.
한편 한강 작가는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