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경쟁 국가들의 연구개발(R&D) 물량 공세에 밀려 생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중국·대만 등 경쟁 국가들은 첨단 기술력 개발에 자원과 인재를 사실상 무제한 투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각종 시대착오적 규제에 발목이 잡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R&D 관련 근무시간에서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3일 반도체 업계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월평균 근무시간은 156.2시간으로 대만 근로자 월평균 근로시간인 180.3시간(2024년 8월 기준)보다 24시간 이상 적었다. 하루 8시간씩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사흘을 덜 일한 셈이다.
이 같은 근로시간 축소는 R&D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엔지니어들이 원하면 24시간 언제든지 사무실에 불을 밝히면서 성과에 매달리는 대만 TSMC나 미국 엔비디아와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지 않으면 불법이 되는 반도체업계가 정상적인 경쟁을 벌일 수 있겠냐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R&D에 역대 최대인 8조 8700억 원을 투입했지만 R&D 업무의 특성상 집중근무가 허용되지 않으면 투자 대비 효율성이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 R&D 효율 저하는 기술 개발 지연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제품 경쟁력 저하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위태로운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든 입지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전 세계에서 연구소에 불이 꺼지는 나라는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이나 일본처럼 생산직은 몰라도 R&D 관련 임직원은 노동시간 규제에 대한 예외 적용이 필요하고 기업은 연봉으로 보상을 실시하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