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훈풍에도 영세한 시행사들의 개발 사업은 여전히 돈줄이 마른 분위기다. 수 조 원 규모 대형 복합개발사업들이 잇따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조달에 성공하는 것과 온도차가 큰 모습이다. 보릿고개가 길어지면서 전국의 부동산 개발업체는 2년 새 10%(302곳)나 줄었다.
3일 개발업계에 따르면 KB부동산신탁은 최근 경기도 화성시 목동 496-8에 소재한 약 2057㎡ 규모 토지를 공매에 내놨다. 시행사 더좋은산업개발이 지난해 상가 등 근린생활시설 개발을 위해 매입했으나 금리가 오르고 공사비가 치솟아 사업 수익성이 떨어지자 본PF 전환이 어려워진 탓이다.
시행사 이케이홀딩스가 개발하는 강원도 원주 EK지식산업센터 사업도 건축허가가 취소되면서 좌초됐다. 통상적으로 건축허가를 받은 이후 최대 3년 내 착공에 들어가야 하지만 PF투자자를 구하지 못하고 브리지론 연장만 이어가다 결국 사업이 무산된 것이다.
최근 자금시장에서는 시행사의 자금력에 따라 돈이 모이는 분위기다. 특히 PF 위기가 불거졌던 2022년 하반기 이후 직격탄을 맞았던 영세 시행사들은 최근 금리 인하 분위기에도 자금을 조달하기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PF자금을 대는 투자자들은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시행사가 사업비의 30% 가량을 확보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토지를 사들여 건물을 올리면 거의 대부분 이익이 발생하던 과거와 달리 공사비가 늘어 사업비가 불어나거나 분양이 늦어져 자금 회수가 늦어지는 사례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시행사들이 땅값부터 공사비까지 90%가 넘는 사업비를 대출에 의존하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신용공여를 줄이고 있는 것도 시행업계에는 부담이다. 영세한 시행사들은 신용도가 높은 건설사들에 기대 PF자금을 확보해왔는데 책임준공·채무인수 확약 등으로 부담이 커진 건설사들이 잇따라 보수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최근 새로운 PF관리 체계를 구축했다고 공시했다. 연대보증과 책임준공을 포함한 신용공여, PFV와 같은 시행법인 지분투자 등에 대해 PF총액 한도를 도입키로 한 것이다. 상품과 지역별로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관리에도 나선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따라 분류하고 비교적 분양성이 좋은 아파트·주상복합과 미분양 가능성이 높은 지식산업센터·상가 등을 따로 관리하기로 했다.
현대건설이 선제적으로 PF 관리체계를 정비하고 나선 것은 국내 건설사 중 PF 대출 관련 보증 규모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건설의 PF 보증금액은 11조 4589억 원 수준이다. 책임준공 약정을 건 사업장도 총 145건, 약정금액만 29조 원이 넘는다. 정비사업을 제외한 기타사업도 26조 9977억 원(126건)이나 된다. 사업 시행사가 휘청이면 신용 보증을 선 현대건설이 채무를 인수해야 한다. 위험이 커지자 금융당국과 현대건설의 최대주주인 현대차그룹도 PF 한도 관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시장에서는 시행사가 자본력이 있거나 1군 건설사가 신용을 대지 않으면 자금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렇다보니 위험이 적은 대형 개발 사업 위주로 자금이 쏠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영세 시행사를 둘러싼 영업 환경 악화가 지속되면서 부동산개발업체도 줄어드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기준 등록된 부동산개발업체는 전국 2426곳으로 2년 전 대비 302곳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