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여성의 왕위 계승을 허용하라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의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4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각료들은 위원회의 '왕위 계승 남녀 평등 실현' 권고에 강한 불쾌감을 표명했다. 이와야 다케시 외무장관은 지난 1일 "(위원회가) 국가의 기본과 관련된 사안을 권고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밝혔으며,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인권과는 관련 없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앞서 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소에서 일본의 여성 정책을 심사한 후 “남성에게만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는 '황실전범'이 여성차별철폐조약 이념과 배치된다”며 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표단은 즉각 "차별철폐위가 왕실전범을 다루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해당 부분 삭제를 요구했다.
현행 일본 황실전범은 제1조에서 "남계 남자가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계 남자’는 왕실 남성이 낳은 남자를 뜻한다. 왕족 여성은 왕족 이외 사람과 혼인하면 왕족 신분을 잃는다고 명시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만을 뒀기 때문에 현재 왕위 계승 1순위는 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제다. 2순위는 후미히토의 아들 히사히토다.
그러나 후미히토 왕세제 일가는 장녀 마코 전 공주 결혼 소동 사건 등으로 일본 내부에서 평판이 좋지 않다. 반면 아이코 공주는 특유의 겸손한 태도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지난 4월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90%가 여성 일왕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찬성 이유로는 '일왕 역할에는 남녀가 관계없다'는 응답이 50%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강경한 입장으로 왕실전범 개정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아이코 공주의 왕위 계승 가능성도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취임 전에는 여성 왕위 계승 논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취임 후에는 자민당 내 반대파 압박으로 말을 아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