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 vs 30.06%’
혁신 기업이 주로 상장돼 있는 한국 코스닥과 미국 나스닥의 연초 대비 수익률이다.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한 나라의 경제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두 시장의 수익률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은 외부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과 경제의 성장성과 수익, 역동성이 미국보다 크게 떨어진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미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9조 1677억 달러로 한국(1조 8699억 달러)의 15배를 웃돈다. 몸집이 훨씬 큰 미국 경제가 한국보다 역동적인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증시와 성장률, 고용 등의 측면에서 한국 경제가 미국에 밀리는 현상이 더 고착화하고 있다. 한때 반도체와 자동차 등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이 대부분의 지표에서 뒤지고 있다.
13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12일까지 미국 우량 기업을 담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6.42% 올랐고 나스닥은 30.06% 급등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로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트럼프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주식 시장은 반대다. 코스피는 연초 대비 7% 하락했고 코스닥은 20% 가까이 빠졌다. 8월 5일 ‘블랙 먼데이’ 이후 한국 증시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충격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가장 느리다.
경제성장률도 역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5%로 미국(2.8%)보다 0.3%포인트 낮다. 특히 잠재 성장률은 미국에 역전됐다. 한국의 경우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관세 인상을 반영하면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경제가 미국보다 나은 것은 재정 건전성 외에는 없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IMF에 따르면 올해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52.9%로 미국(121.0%)보다 크게 낮다.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15배 이상 경제 규모가 큰 미국이 경제의 역동성을 살려낸 배경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정부 시절부터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기업에 쥐여 주며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자국에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했다. 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니 테슬라·엔비디아·오픈AI처럼 혁신적인 기업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내년 1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법인세 인하와 각종 규제 완화 같은 친기업 정책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경제의 역동성이 높아진 것은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신기술의 투자를 유도하며 산업 성장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라며 “노동 유연성이 높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에 산업 경쟁력까지 받쳐주니 고용도 늘고 경기가 호황을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현실은 정반대다. 기업들의 법인세 인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상법 개정으로 기업 옥죄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공장 유치를 위해 수백조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미국 정부와 달리 한국은 이제야 인프라 시설 같은 일부에 한해 직접 보조금을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의 진입 장벽 완화 같은 구조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자화자찬’식의 경제 성과 홍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구조 개혁의 시급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유주의 시장 국가인 미국도 기업들의 생존을 위해 전폭적으로 반도체에 보조금을 주고 어떻게든 산업을 키우려 하는데 우리 정부는 산업을 육성하기는커녕 손을 놓고 있다”며 “국회는 표를 의식해 기업을 옥죄는 규제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도 “신산업에 대한 명확한 정책 목표를 세우고 인재를 중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비교해 처우가 좋은 정규직들만 보호하는 현 노동시장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