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농사는 겨울에 달려있다.’
춘추제(봄에 시즌 시작해 가을에 마무리)로 치러지는 스포츠 종목에서는 공식과도 같은 문장이다. 겨우내 담금질의 질과 양에 따라 다음 시즌 성패가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시즌 겨울 훈련을 진행할 장소다. 체계적인 훈련을 위해서는 좋은 인프라와 편안한 환경이 갖춰진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
올겨울 훈련에 돌입하는 K리그 구단들이 뽑은 ‘최애’ 지역은 동남아시아의 태국이다. 과거에는 태국보다 여건이 낫다고 알려진 유럽이나 중동을 선택했다. 하지만 태국프로축구 리그가 발전하고 그만큼 인프라도 갖춰지면서 태국을 겨울 훈련지로 선택하는 구단들이 크게 늘어났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K리그1과 K리그2(1·2부) 전체 25개 팀 중 무려 18개 팀이 태국으로 향한다. 창단 이래 첫 승격을 이룬 FC안양과 더불어 수원FC, 포항 스틸러스, 대전하나시티즌, 광주FC, 전북 현대, 대구FC까지 1부 7개 팀이 태국을 택했다. 2부에서는 강등 이후 재승격에 도전하는 인천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충남아산FC, 서울이랜드FC, 전남 드래곤즈, 부산 아이파크, 수원 삼성, 부천FC1995, 충북청주FC, 안산 그리너스, 경남FC, 성남FC까지 11개 구단이 태국에서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K리그 팀들이 태국에 몰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휼륭한 축구 인프라다. 최근 태국 축구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대표팀이 올 초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방콕 유나이티드, 부리람 유나이티드, 무앙통 유나이티드, 포트FC 등 클럽 팀들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전을 거듭했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 클럽 랭킹에 따르면 방콕 유나이티드는 185위로 이탈리아 제노아 바로 다음이다. 몇몇 K리그 팀들을 내려다보고 있기도 하다. 본선 참가국이 확대된 월드컵을 겨냥하는 것과 동시에 클럽 팀들의 약진까지 더해 대규모 투자가 힘을 받으면서 태국은 동남아에서도 축구 인프라가 가장 좋은 곳으로 손꼽히게 됐다.
태국은 프로리그 구단들이 잔디 구장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시설 협조에도 적극적이다. 일부 프로 팀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훈련 시설을 고스란히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K리그 구단들과 현지 연결을 돕고 있는 한 에이전트는 “토트넘이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유럽 클럽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훌륭한 프로 팀 시설을 그대로 빌려 쓸 수 있듯 태국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가능해 구단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태국 팀들의 기량이 높아져 현지 구단들과 수준 높은 연습 경기가 가능해진 데다 골프 여행객들을 위한 리조트가 워낙 발달돼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버스를 타고 훈련장과 숙소를 이동하는 대신 골프리조트 안에서 웨이트트레이닝·수영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태국의 높은 기온은 기본적으로 부상 위험을 줄여주는데 1월은 오전과 늦은 오후가 비교적 선선한 편이어서 실전 훈련을 치르기에 적합하다. 다음 달 5일부터 3주 가까이 태국 후아힌으로 겨울 훈련을 떠나는 포항 구단의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베트남 하노이에서 훈련을 진행했는데 이번에 태국으로 변경했다. 상대적으로 태국이 기온이 높아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유리한 편”이라고 했다. 한식당이 많고 급한 경우 한식 재료를 공수하기도 편하다.
터키, 스페인 등이 대세였던 시절에는 도착 후 하루 이틀은 시차 적응을 위해 훈련 스케줄을 비워야 했지만 태국 훈련에는 이런 일정 자체가 필요 없다. 여름에 시작되는 클럽 월드컵 영향 등으로 내년 정규 시즌 개막이 2월 중순으로 당겨진 것과 꺾일 줄 모르고 치솟는 환율도 구단들의 태국행을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