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안국·라온저축은행에 적기 시정 조치를 내린 것은 저축은행 업계 전반에 대한 경고장으로 볼 수 있다. 자산 건전성에 빨간 불이 들어왔는데도 자정 노력을 보이지 않던 저축은행에 “이대로라면 강제 수술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기 때문이다. 당국은 증자를 통한 체질 개선을 주문하는 동시에 자금 여력이 없는 저축은행은 인수합병(M&A) 시장을 통해 정리하는 ‘투 트랙’ 전략을 통해 저축은행의 부실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향후 적기 시정 조치를 받는 저축은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은 매 분기 경영 실태 평가를 통해 부실 자산이 많은 저축은행을 추리고 있는데 이 중 ‘취약 등급(4등급)’을 받은 저축은행이 현재까지 10여 곳에 달한다. 취약 등급을 받은 저축은행은 자동으로 적기 시정 조치 검토 대상에 오른다. 전체 저축은행 79곳 중 10% 이상이 당국의 사정권에 걸려 대대적인 수술이 예고돼 있는 것이다.
적기 시정 조치가 경영 개선을 위한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는 만큼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 개선 권고를 받은 저축은행은 6개월 내 부실 채권을 처분해 감독 기준을 맞춰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자칫 영업 라이선스까지 박탈당할 수 있는 만큼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재무 개선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당국의 지침을 맞추려면 저축은행은 대규모 증자에 나서야 한다. 부실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면서 생긴 재무 손실을 신규 자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취약 등급을 받은 저축은행 대주주와 개별적으로 접촉해 증자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당국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자금을 확충하기 어려운 곳도 제법 된다”고 전했다.
증자 여력이 부족한 저축은행은 M&A 시장을 통해 퇴로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 M&A 시장에서는 매수자와 매도자 간 거래 가격을 두고 시각차가 큰 탓에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기 시정 조치에 따라 당국이 제시한 시점까지 재무 개선을 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영업권 자체를 박탈당할 수 있는 만큼 매도하려는 쪽에서 가격을 지금보다 더 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국의 실태 평가에서 취약 등급을 받은 상상인저축은행은 OK저축은행과 매각 논의에 최근 착수했다.
당국이 저축은행에 대한 경영 개선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은 저축은행의 재무난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업계는 그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급격히 늘려왔지만 부실이 대거 드러나면서 중소 저축은행의 자본 건전성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저축은행의 17%에 해당하는 비우량 저축은행의 경우 자기자본비율이 2022년 4분기 13.2%에서 올해 3분기 12.4%까지 하락했다. 이들 비우량 저축은행은 당국의 감독 기준을 충족했지만 우량 저축은행보다 높은 부동산PF 대출 비중으로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 악화 정도가 상대적으로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특히 저축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과 현재 최고 금리(20%)를 감안할 때 본업인 신용대출을 과감하게 늘려 손실을 만회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틈바구니에 껴 마땅한 먹거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수익을 충분히 내기 어려워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역시 저축은행 업계가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뤄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준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축은행의 M&A나 영업 구역 확대를 통한 대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수위가 높아지면서 시장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위기감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지난해 실적이 악화되기 전까지 수년간 흑자를 내며 돈을 벌어들인 터라 대다수 저축은행의 충격 흡수 능력은 충분하다”면서도 “은행의 건전성과 별개로 ‘저축은행에 또다시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면 전혀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