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어두운 골목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새하얀 구두가 가로등 밑에 나뒹군다. 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너 그거 건드리면 죽는다”고 경고하는 살인범의 목소리조차.
‘미드나이트’는 청각 장애가 있는 경미(진기주)가 피를 흘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정(김혜윤)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칼에 찔린 소정을 도와주려던 경미는 연쇄살인마 도식(위하준)의 새로운 타깃이 된다. 살고 싶다는 의지로 미친 듯이 도망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험난하다. 도식의 발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불리한 상황, 겨우 도식에게서 벗어난 경미는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소정의 오빠 종탁(박훈)을 만난다.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경미는 수어와 필담을 사용해 다급하게 목격한 것을 말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그녀의 낯선 언어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마스크와 모자, 안경까지 착용한 채 경미를 쫓던 도식은 멀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난다. 경미가 청각 장애인임을 인지한 그는 이 상황을 철저히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앞에서 친절한 듯 미소 짓지만, 그 뒤에는 오직 살인만이 목적인 연쇄 살인범의 모습이 숨어 있다. 도식의 살인에는 어떤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을 놀이로 여기는 그에게 감정 이입할만한 일말의 여지도 없다. 그저 잔혹한 순수 악에게 경미는 또다시 쫓기게 된다.
주인공의 청각 장애는 다른 스릴러 장르 영화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경미에게 소리는 가치 없는 정보다. 그녀가 연쇄살인범 도식의 접근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차에 부착된 소리 측정기, 소리가 들리면 점멸하는 경고등, 그리고 소리에 반응하는 심벌즈 원숭이다. 도식이 도끼를 바닥에 끌고, 경미의 뒤에서 혼잣말을 할 때 번쩍이는 불빛….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경미에게 이입하게 만드는 시각적 연출은 매 순간 관객을 얼어붙게 만든다.
눈으로 보고 나서야 도식의 추격을 알아채는 경미의 상황은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극대화된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숨 가쁘게 달리다 오토바이가 경적을 크게 울리며 시끄러운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모든 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도식과 달리, 경미의 세상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음소거 추격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은 음향 연출이 몰입도를 높인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속도감 있는 추격전도 영화의 볼거리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주차장, 귀갓길, 대로변, 심지어 번화가에서도 도식은 경미를 쫓는다. 도망 끝에 도착한 인파가 북적이는 밝은 공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도식은 장소 따윈 상관없다는 듯 경미를 쫓는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익숙한 공간조차 순식간에 위협적으로 변한다. 도식을 피하고자 전속력으로 달리는 경미의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배우들의 연골을 갈아 만들었다”는 권오승 감독의 말처럼, 달리고 또 달리는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의 매력이다. 길에서 뛰고, 미끄러지고, 구르고 창문에 매달린다. 실제로 목숨이 걸린 것처럼 달리는 주연들의 모습에선 느슨한 점을 찾아볼 수 없다. 2분에 가까운 시간을 쫓고 쫓기는데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청각 장애가 있는 경미를 연기한 진기주의 연기 열정도 돋보인다. 실제 청인·농인 선생님을 만나 수어 연습에 매진했다는 그녀는 농인이 소리 내는 방식까지 연구하며 역할에 몰입했다.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수어의 특징을 살려 이질감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위하준과 박훈은 액션신은 영화의 긴장감을 더했다. 연쇄살인범 도식을 연기한 위하준은 무거운 장도끼를 여러 차례 휘두르고, 경미를 죽이겠다는 각오로 달리고 구른다. 사랑하는 동생을 지키려는 오빠 종탁 역을 맡은 박훈은 액션신의 둔탁한 무게감을 위해 체중을 증량했다고 밝혔다. 두 배우의 노력 끝에 타격감 넘치는 액션신도 완성됐다.
한편 티빙과 극장 동시 개봉하는 영화 ‘미드나이트’는 30일 개봉한다.
/최수진 ssu012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