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위키리크스와 인터넷 핵티비스트

최근 위키리크스라는 사이트가 전 세계적 화제다. 각국 정부와 기업의 극비 정보와 문서를 빼돌려 인터넷에 폭로하는 이 사이트는 인터넷 사회운동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자칫 해킹이라는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하는 핵티비즘(hacktivism)을 종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시각도 제기된다.
과연 인터넷 폭로, 더 나아가 핵티비즘은 세계인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부득이한 방법일까. 아니면 이를 빙자해 국익을 저해하는 행위에 불과할까.


지난 연말 위키리크스(wikileaks.org)라는 사이트와 이 사이트의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가 연일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지난 2006년 출범한 위키리크스는 국제적인 비영리 뉴 미디어 기구이자 폭로전문 사이트다. 익명의 정보원이나 누설된 자료를 통해 확보한 각국 정부와 기업의 비밀정보를 공개적으로 게시하여 고발하는 일이 주 업무다.


아시아, 구 소련, 사하라 사막 이 남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지역의 압제적인 규율·관습·제도 등의 폭로를 행동목표로 천명하고 있지만 국가와 기업들의 비밀문서 및 비윤리적 행동 역시 폭로 대상이다. 특히 이 같은 모토에 동참하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폭로)를 호소하고 있다.

비영리조직인 선샤인 프레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위키리크스는 출범한 지 불과 1년 만에 등록 문서가 무려 120만 건을 넘었다. 위키리크스 창립자들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미국·대만·유럽·호주·남아프리카 등지의 언론인, 수학자, 중소 기업 기술인력 등이다. 이들 중 신원이 노출된 사람은 어샌지가 유일하다.

현재 40세로 10대 시절부터 호주의 정부사이트를 해킹해 온 고참 해커인 그는 위키리크스의 주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실상의 대표로 알려져 있다.

위키 리크스의 폭로전

위키리크스는 창설 이후 다양한 활동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어왔다. 지난 2006년 12월 위키리크스에 올라온 첫 번째 문서부터 그랬다. 이는 한때 소말리아를 실효적으로 점령했던 이슬람법 정연합(UIC)의 지도자 셰이크 핫산 다 히르 아웨이스의 서명이 적시된 소말리아 정부요인 암살지령 문건이었다.



또한 지난 2007년 11월에는 2003 년 3월경의 '캠프 델타' 예규가 게시된 바 있다. 캠프 델타는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 내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3개 단지 중 하나로 이 문서에서는 일부 수감자들이 적십자와의 접촉을 차단 당하는 등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난 2008년 9월 미 대통령 선거전 때는 공화당 대권후보 존 매케인의 러닝메이트였던 사라 팔린 알래스카주지사의 야후 계정이 해킹당해 위키리크스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랬던 위키리크스의 명성이 명실공이 지구촌 전체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0년 4월이다.

지난 2007년 7월 12일 미군의 바그다드 공습 당시 미군 헬리콥터가 카메라를 든 로이터 통신사 직원 2명을 게릴라로 오인 사격해 사망케 한 극비 동영상을 유출시킨 것. 위키리크스는 이 동영상을 공개한지 1주일 만에 전 세계에서 최다 검색어가 됐다.

이 동영상은 미 육군의 정보 분석 관 브래들리 매닝 상병이 그라나이 공습 동영상 및 외교 전문 25여건과 함께 고의 유출시킨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를 계기로 위키리크스가 정부와 기업의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위키리크스는 매닝 상병에 의해 확보된 외교전문을 순차적으로 공개, 미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하며 세계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떠들썩한 사건으로 인해 이 사이트가 표방하고 있는 인터넷 액티비즘(Activism), 더 나아가서 핵티비즘(Hacktivism)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크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운동의 새바람, 인터넷 액티비즘

인터넷 액티비즘은 이메일, 웹, 포드캐스트 등 다양한 전자통신 기술을 활용한 사회운동의 하나다. IT기술 특유의 우월한 정보 확산성을 무기로 국지적인 정보나 소수의 주장까지 순식간에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 앞에 가져다 놓아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킨다.

또한 인터넷을 이용한 기금 마련, 조직 및 공동체 구성, 로비 활동 등 사회운동에 수반되는 각종 활동도 인터넷 액티비즘에 포함된다. 목표는 활동가들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다양하다.

국제 군비 축소 운동에서 특정 상품의 불매 운동, 정치적·종교적 선전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모든 사회운동의 목표가 곧 인터넷 액티비즘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인터넷 액티비즘의 가장 큰 자산은 단연 인터넷이다. 인터넷이야말로 활동가들의 작은 목소리를 넓은 세상에 퍼뜨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버마넷 등 다양한 리스트 서버들이 특정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해외소식들을 해당국가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창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실례다. 또한 인터넷은 자금력과 시간이 부 족한 액티비스트들에게 값싸고 신속하게 세상에 자신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원 규합이나 저항운동, 심지어 로비활동도 쉽게 펼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껏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던 사회활동을 온전히 온라인에서 수행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최근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인터 넷 액티비즘의 주요 도구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액티비즘이 처음 대두된 것은 약 20년 전부터다.

지난 1990년 4월 로터스 소프트웨어라는 회사가 '로터스 마켓 플레이스'라는 상품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제품은 미국인 1억 2,000만 명의 이름과 주소, 소비습관 등의 정보가 담긴 CD였다. 기업들의 마케팅 자료로 개인정보를 팔고자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한 대중들이 인터넷을 매개체 삼아 이의 부당함을 호소했고 이런 글들이 인터넷 게시판과 이메일로 마구 퍼져나간 끝에 3만여 명의 사람들이 로터스에 연락해 DB에서 자신의 정보 삭제를 요청했다. 결국 로터스는 대중의 압력에 굴복, 제품 출시계획을 철회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멕시코의 반정부 조직 EZLN이 휴대폰 등 비중앙집중 형 통신수단을 사용해 선진국 활동가들과 연계, 반세계화 조직인 지구적 민중행동(PGA)을 결성하고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에 저항한 일을 들 수 있다. 캐나다의 미디어운동가 도로시키드는 지난 2001년 한 인터뷰에서 반WTO 운동에서 인터넷의 역할을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은 인터넷 액티비즘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마침 딱 맞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저항에 필요한 적절한 시기와 공간, 플랫폼을 얻었습니다. 멀티미디어 플랫폼이 있기에 우리는 이제 언론매체를 통하지 않고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액티비즘의 과격 모델


핵티비즘은 이러한 인터넷 액티비즘이 과격하게 진화한 모델이다. 해커(hacker)와 행동주의(acto vism)의 합성어로 이를 추종하는 핵티비스트들은 웹과 인터넷을 단순한 의사전달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넘어 해킹, 즉 투쟁 대상자의 웹사이트·이메일·서버 등을 직접 공격하여 목표를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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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놓고 보면 핵티비즘은 '정치·사회적 목표 달성을 위한 디지털 도구의 합법적 또는 불법적 사용'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핵티비즘 활동 역시 극히 다양한 정치적 이념과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현재 온라인에는 핵티비즘 운동단체를 자처하는 다양한 단체가 활동하고 있 으며 이중 한 곳인 '프리넷'은 정치적 사고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권 확보를 주장한다.

국제적 해커그룹 '컬트 오브 데드 카우(cDc)'의 분파인 '핵티비스모'의 경우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권리가 기본 인권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프로그래머, 예술가, 급진 성 향 운동가들의 연대인 '1984 네트워크 자유연맹'은 감시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인들의 사생활과 자유로운 발언권 수호를 중점 모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티비즘 활동은 6가지 구성요소가 포함된다. 정치적 동기, 디지털 형태의 유머, 가벼운 탈법, 정책의 급속한 변화 요구, 비폭력성, 1인 독자 실행력, 익명성 및 초국가적 활동력 등이 그것이다.

핵티비스트들은 인터넷에서 즉각 입수할 수 있는 다양한 컴퓨터 도구들을 사용해 자신들의 운동을 실행한다. 핵 티비즘 활동은 웹페이지 무단 변경, 가 상 연좌시위, 이메일 공격 등이 대표적이며 다른 사이트로 연결시키기, 서비스 거부 공격(DDoS), 정보 탈취, 소프트웨어 공격 등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자신이 직접 해킹을 시도하지는 않지만 해커들이 빼낸 정보를 포함,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확보한 정부와 기업의 내부 비밀문서를 인터넷에 게시하는 위키리크스의 행위는 고전적 인터넷 액티비즘과 핵티비즘의 접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엇갈리는 평가와 위키리크스의 앞날

그렇다면 위키리크스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는 어떨까.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존재 가치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측은 국가도 국민을 속일 권리는 없으며 국민은 반드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논지를 펼친다.

현재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마이크 퍼너 회장,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텍사스주 공화당 하원의원론 폴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위키리크스에 지지를 천명했다.

심지어 브라질, 에콰도르, 러시아, 베네주엘라 등은 정부 차원의 공개적 지지를 표명했고 국제연합(UN)도 이에 동참했다. 특히 호주의 고참 언론 전문가들이 자국의 수상 줄리아 길러드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의 발언 중에서도 의미심장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편지에서 "정부가 숨기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위키리크스는 바로 기성 언론들이 그동안 해왔던 활동과 완벽히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위키리크스를 폐쇄하거나 정보제공자에게 기소 위협을 가하고, 위키리크스와의 연계사업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는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언론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하지만 이토록 넘쳐나는 찬사만큼 비난 여론도 맹렬하다. 어쩌면 찬사의 목소리보다 더욱더 큰 비난이 위키리크스에 쏟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위키리크스에 의해 정보가 '털 린' 각국 정부나 기업의 볼멘소리는 차치하더라도 러시아의 탐사취재 전문기자 안드레이 솔다토프를 위시해 위키리크스에 실린 정보의 진실성 자체를 의문시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솔다토프는 위키리크스가 사실검증 과정, 맥락에 대한 고려, 적절한 분석 없이 기밀문서를 마구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위키리크스의 인기 원인은 최근 언론계에서 탐사 보도가 힘을 잃고, 선정적 보도만이 인기를 끄는 현실과 다를 바 없다고 폄하했다.

각 언론사들이 탐사 보도에 힘을 실어 주지 않자 이에 분개한 언론인들이 위키리크스에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첩보를 넘겨주고 있는데 이것이 비밀문서로 둔갑되어 발표된다는 것이다.

또한 위키리크스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아무리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해도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보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미국 마리스트 대학의 여론연구소에서 18세 이상의 미국인 1,0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압도적 다수가 위키리크스의 활동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전체 응답자의 70%가 위키리크스의 정보 공개는 적들에게 미국의 대외 정책을 노출시켜 국익에 위험하다고 답한 반면 위키리크스의 활동이 미국에 실보다 득을 더 많이 안겨줄 것이라고 말한 경우는 22%에 불과했다. 또한 위키리크스의 활동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 헌법 1조에 합치된다고 주장한 사람은 31%에 머물렀지만 무려 59%의 응답자는 위키리크스 관련자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국민 여론이 위키리크스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두고 위키리크스가 실제로는 인터넷 액티비즘 사이트가 아닌 심리전을 위해 역정보를 퍼뜨리는 정부기관의 하수인일지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위키리크스의 활약 때문에 오히려 각국, 특히 위키리크스와 가장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여론이 정보 공개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는다.



또한 이란 등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에게 위키리크스에 대한 정보 누출혐의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사전 포석 이라고 주장한다. 부정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현재는 위키리크스를 타깃으로 삼은 사이버 공격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핵티비즘 활동에 기반을 둔 위키리크스가 도리어 핵티비즘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많은 논란과 의혹을 양산하고 있고 무수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위키리크스는 누구나 참가해 내용을 고칠 수 있는 현재의 위키피디아(wikipedia) 체제가 아닌, 일부 편집진 만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닫힌 사이트로 변화해 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위키리크스 모델을 모방한 다른 비밀폭로 사이트인 오픈리크스, 브뤼셀스 리크스, 트레이드 리크스, 발칸 리크스, 인도 리크스 등도 무더기로 생겨났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남겼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노벨위원회 토르뵤른 야글란 위원장의 말 역시 명심해야 할 사실이다. 근대국가의 가장 막강한 세력인 정부와 기업의 힘을 담은 비밀문서가 인터넷으로 유출되고 있다.

현대 문명의 총아인 인터넷이 가장 강력한 힘과 그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을 드디어 대중의 손에 쥐어준 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 손에 쥐어진 이 힘과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 핵티비즘 6대 구성요소

항상 정치적 동기가 있다.
유머를 중시해 디지털 형식의 우스갯짓을 자주 벌인다.
심각하지 않은 탈법을 지향한다.
정부 정책의 급속한 변화를 강력히 요구한다.
비폭력적이며 제3자를 위협에 노출시키지 않는다.
1인의 독자적 실행이 가능해야 한다.
대부분 익명으로 실행된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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