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이론상 구분한 오미와 실제의 맛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그동안 한의학계에서는 한약의 맛과 효능의 상관관계에 대해 오랜 논쟁이 있어왔다.
한약재 고유의 미각패턴
이 같은 한약의 맛과 효능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는 기본적으로 약물의 실제 맛을 객관화·표준화하는 작업 의 선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한의학연구원 창의연구실 이미영 박사 연구팀이 나섰다.
이 박사팀이 지난해 말부터 한약의 맛을 표준화하는 연구에 착수한 것. 음양오행에 기초한 오미의 정의를 현 시대에 맞춰 계량화된 기준으로 재 정의하는 것 이 목표다. 이를 위해 연구팀이 활용 중인 도구는 미각센서. 기존의 관능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적 입맛에 의해 결과에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각센 서는 동일 성분의 물질에 항상 동일한 결과를 내놓는다. 다루기 쉽고, 분석기간이 짧으며, 사람이 맛볼 수 없는 독성 한약재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식품, 음료, 주류, 제약 분야에서 미각센서를 사용 중 에 있으며 일본의 경우 식품의 품질관리를 위해, 독일은 약의 쓴맛 제거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가장 먼저 한약재의 미각 패턴을 측정했다. 각 각 쓴맛과 신맛을 대표하는 청열약(淸熱藥), 수삽약(收澁藥)을 대상으로 약물의 이론적 작용기전과 맛의 상관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 박사는 "미각센서가 한약의 맛을 분석하는 원리는 비 교적 간단하다"며 "맛 물질들이 센서 내의 인공 지질막을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전위차를 비교해 특정 한약의 미각패턴을 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를 통해 모든 한약재가 고유한 미각패턴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냈다.
특히 동일한 한약이라도 원산지 에 따라 약효가 다르다는 사실 도 증명했다. 국산 당귀와 중국산 당귀의 맛에 나타나는 분명한 차이 를 발견하고 이의 수치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한약 연구에 일반적으로 이용됐던 성분 분석이나 유전자 분석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부 분이다.
한약의 쓴맛 경감
이 박사는 "이 결과를 응용하면 한약재의 원산지·채취시 기·보관방법·등급·유통기한 등의 기준에 따라 맛과 약효 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다"며 "한약의 품질기준 객관화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정 한약이 얼마만큼 쓴지, 담백한 맛은 어떤 성분들의 조합으로 이뤄 진 것인지와 같이 맛의 객관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궁극 적으로 한약 제조법의 표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박사는 "사고의 폭을 넓힐 경우 이번 성과는 한약의 최대 취약점으로 꼽히는 쓴맛을 경감하는 연구 등으로 확 장될 수 있다"며 "연구 결과의 신뢰도 향상을 위해 더 다양 한 한약재를 대상으로 추가적인 데이터베이스 축적에 힘을 모을 계획"이라고 향후 연구방향에 대해 언급 했다.
그는 또 "이 연구가 수입 한약 재가 시중에 유통되면서 원산지 판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 는 만큼 '한약은 표준화된 제 조방법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박사팀은 이외 에도 최근 노화 연구에 새 롭게 뛰어들었다.
올해부터 본격 적으로 시작하게 될 이 연구는 노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보편적 현상임에도 개인마다 노화의 진행양상 이 다르다는 사실에 착안해 시작됐다. 이 박사에 의하면 노화의 진행 속도는 유전적 요인, 생활 패턴, 질병 양상에 따라 개인마다 차이가 생긴다.
그리고 이는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점에서 한의학은 노화의 생리적 현상이나 노화 지연, 무병 장수법 등 노화 관리에 대해 다양한 임상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학문이다.
특히 한약은 오랜 기간 동안 유효성이 입증된 전통 의학으로서 양약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서양의 선진 국대비 차별화된 연구기반을 갖췄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 박사팀은 향후 에너지 대사 기능의 정상화를 위한 한·양방 융합 노화관리기술 개발을 최종 목표로 연구를 수 행할 계획이다. 노화의 분자 기전이나 노화세포 기능을 분석하고 노인성 질환 제어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초 발생기전 연구에서 벗어나 노화질환의 근본적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는 방침이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아프지 않고 천천히 늙고자 하는 인 간의 소망에 한 발짝 다가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 고 있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