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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방울의 석유

에너지 전환기에 대비하라!

화석연료를 대체할 청정에너지 시대는 하루 아침에 다가오지 않는다. 어떤 획기적 대책 하나에 의해 이행되는 것도 아니다.

개선된 석유 채굴 기술, 더 안전한 원자력발전소, 음식폐기물 바이오가스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수행되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전환이 이뤄지게 된다.


석유는 환경 파괴자이자 국제정세의 불안 유발자다. 게다가 지금은 고갈 위기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지구촌은 아직도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35%를 석유에 의존한다.

이에 맞서 인류는 석유의 대체에너지를 개발, 친환경 경제시대로의 이행을 적극 추진 중이지만 앞으로도 최소 수십 년은 어쩔 수 없이 석유의 힘에 의지해야 할 판이다.

과연 충분치 않은 석유만으로 우리가 이 기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By Paul Roberts

우리는 물리적 한계가 없는 미래의 사이버 세상을 자주 논한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 경제가 돌아가려면 인력과 물자의 이동, 그것도 꽤 먼 거리의 이동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석유의 지속적 공급 없이 이러한 이동은 불가능하다. 승용차, 버스, 트럭, 선박, 항공기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교통수단의 95% 이상이 석유를 연료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없이는 출근은 물론 여행, 무역 등 모든 경제시스템이 마비된다.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도, 생산된 농산물을 가정까지 배송할 수도 없다. 적어도 현 인류에게 석유는 그 무엇보다 꼭 필요한 자원이다.

인류는 왜 이토록 석유에 의존하게 된 걸까. 석유업계의 정치적 파워? 아니다. 에너지원으로서 석유 자체가 지닌 가치에 기인한다. 석유는 일반적인 에너지 자원 중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또한 석유는 생산 과정이 크게 어렵지도 않다. 매장지가 지천에 널려 있는 중동의 경우 시추를 위해 석유 1배럴의 에너지를 투입하면 30배럴의 원유를 얻을 수 있다. 투입에너지 대비 산출에너지(EROEI)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일례로 옥수수 원료 에탄올의 경우 1배럴의 에너지 투입 시 2배럴을 조금 웃도는 에너지가 생산된다. 석유의 대체물질을 찾기 어려운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러한 석유의 놀라운 연료 효율성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인류는 쉽게 채굴할 수 있는 석유의 대다수를 소모한 상태다. 그만큼 날이 갈수록 어렵게 석유를 캐내고 있다. 셰일 오일, 중유, 오일샌드 등이 그 실례다. 이들은 보통의 원유에 비해 발견하기도, 채굴하기도, 정유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든다.

채굴에 따른 환경비용, 즉 환경적 피해 역시 커지고 있다. 석유가 연소할 때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석유 생산은 채굴지역의 생태계에 심대한 위해를 남긴다. 작년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가 그 방증이다.

어쨌든 석유 경제시대에서 청정에너지 경제시대 사이의 전환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언젠 가는 조류(藻類)로 만든 바이오연료, 바이오에탄올, 수소 등 차세대 에너지들의 지속가능성이 지금보다 대폭 향상되며 화석연료의 자리를 메울 것이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은 환경적 개념이자 경제적 개념이기도 하다. 환경성에 더해 경제성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비싼 에너지보다 저렴한 에너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청정에너지 시대의 주역이 누가 되든 최소한 지금의 석유보다 비싸서는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대체 에너지 시스템을 적용하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며 불확실성이 크다. 무수한 기술적 난제들을 극복하는 한편 내연기관을 전면에 내세운 석유에너지 시스템이라는 막강한 적을 상대로 더 나은 효율성과 매력을 갖춰야 한다.

설령 우리가 청정에너지의 대량생산 능력을 확보했다고 해도 상황은 곧바로 나아지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상상이지만 2020년이 아닌 지금 당장 바이오연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해보자. 이런 자동차를 연간 생산량이 약 7,000만대에 달하는 휘발유 자동차만큼 많이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이 차량들이 휘발유자동차를 완전히 대체하려면 15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석유 소비는 계속될 것이며 오히려 수요량이 증대될 수도 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석유 수요 증가분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본격화한 선진국들의 석유 수요 감소분을 앞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캠퍼스의 국제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데이비드 빅터 박사도 이런 이유로 적어도 향후 20년간은 석유 소비량 감소가 힘들다고 말한다.

스탠포드대학 산하 프리코드에너지효율센터(PEEC)의 제임스 스위니 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현실적 관점에서 세계 석유 소비량이 경제적·환경적으로 용인 가능한 일일 3,000만 배럴로 낮아지려면 최소 40년은 걸린다고 본다.

당연히 그때까지 인류는 엄청난 양의 석유를 쓸 것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석유가 더 필요할까. 빅터 박사는 현재 8,500만 배럴인 전 세계 일일 원유 수요량이 2030년대에 이르러 최대 1억 배럴에 이르며 정점을 찍을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이후에도 석유의 에너지 공급 비중이 크게 줄어들 때까지 1조 배럴의 원유가 추가 소비될 것으로 본다. 결국 청정 에너지 시대로 원활히 이행하려면 우리는 40년간 무려 2조 배럴 상당의 원유를 더 확보해야 한다.

2조 배럴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최초의 유전이 가동되면서 석유 시대가 열린 1859년 이래 지금껏 인류가 사용한 원유 1조 2,000억 배럴의 거의 두 배나 되는 양이다.

콜로라도광업대학의 호세인 카제미 석유공학과 교수에 의하면 다행스럽게도 약 1조 배럴은 이미 그 위치가 파악됐고 현 기술로도 경제적인 채굴이 가능한 '준비된 자원'이다.

문제는 나머지 1조 배럴이다. 몇몇 연구에서는 지구상에 아직도 최대 8조 배럴의 원유가 남아있다고 추산하지만 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채굴이 매우 난해하다. 수생식물 이 광물과 함께 퇴적해 석탄화 된 암석인 유혈암(油頁岩)에서 추출하는 셰일 오일(shale oil)이 가장 대표적으로, 이의 채굴 및 정제비용은 엄청나게 비싸다.

현재처럼 손쉽게(?) 채굴 가능한 원유가 더 있더라도 탐사비용이나 실질적인 채굴 이외에 투입되는 비용이 늘면서 경제성은 지금보다 떨어진다. 단적인 예로 내정이 불안한 국가에서 원유가 발견되면 정권붕괴가 초래될 수 있고 환경적으로 취약한 지역에서의 채굴은 그 지역의 토양이나 바다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이는 우리가 매우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어디에서 어떤 형태의 석유를 채굴할지에 더해 언제 채굴할지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선택 가능한 모든 시도를 동시에 수행하면 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은 특정자 원에만 투자하는 석유회사나 채굴 이외의 외부비용은 신경 쓰지 않는 정책결정자의 눈에나 현명해 보일 뿐이다.

물론 미래에는 지금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거나 환경피해가 막대한 곳에 매장된 원유를 저렴하고 안전하게 채굴 및 정제할 수 있는 신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다. 미국 정유사인 셰브런이 개발한 수증기 중질유 채굴법처럼 말이다.

지하로 고온의 수증기를 주입, 타르 형태의 중질원유를 액체로 녹여 채굴하는 이 방법의 개발로 과거에는 경제성에 막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수십억 배럴의 중질유 채굴이 가능해졌다.

즉 우리는 정치가나 기업인의 근시안적 안목이 아닌 석유 공학자의 장기적 안목을 통해 기술적·경제적·환경적으로 최적의 석유채굴법을 찾아 2조 배럴의 원유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어떤 원유를 먼저 채굴할지, 혹은 끝까지 남겨둘 지도 그런 안목에 기반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최후의 채굴 자원

셰일 원유
총매장량: 3조 석유환산배럴(BOE)

중동 산유국들의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원활한 석유 수급에 골치를 썩고 있는 정책결정자들은 가급적 자국에서 가장 가깝고 매장량이 풍부한 원유를 캐내고 싶어 한다. 미국의 경우 셰일 오일이 그런 원유다. 콜로라도, 유타, 와이오밍 등 3개주의 매장량만 최대 8,000억 배럴에 달한다.

하지만 셰일 오일은 최후의 순간까지 손대지 말아야 할 자원으로 꼽힌다. 셰일 원유가 담긴 암석인 유혈암은 유모(油母, kerogen) 라는 유기물이 암반에 퇴적되면서 만들어진다. 유모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전구물질이지만 원유가 될 정도로 강한 열을 받지 못해 유혈암 속에 갇혀있다.

석유공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 유모로 석유를 만들 기술의 개발을 완료했다. 유모가 기화될 때까지 가열한 뒤 기화된 유모를 증류하면 합성원유가 추출되며 이를 정제해 휘발유나 여타 연료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 유모는 채굴 후 지상에서 가열하거나 전기 히터를 활용, 지하에서 가열하기도 하는데 어떤 방식을 쓰던 생산비용이 배럴당 최대 90달러나 된다. 이 정도면 사실상 경제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다른 원유들의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한다면, 그리고 소형 파일럿플랜트 수준인 채굴설비가 상용 플랜트로 업그레이드돼 대량생산이 이뤄진다면 셰일 원유도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셰일 원유는 외부비용마저 매우 높다. 일례로 셰 일 원유는 에너지밀도가 높지 않아 1톤의 유혈암에서 얻을 수 있는 유모가 0.7배럴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업들은 수백 헥타르(㏊)의 땅에서 수백만 톤의 물질을 빼내야 한다. 이때 위험량의 중금속이 수계(水系)에 유입될 수 있다. 또한 지하의 유모를 가열하고 기화된 유모를 지상으로 끌어올릴 때도 지하수 오염의 위험이 있다. 셸을 비롯한 석유기업들은 땅을 얼려 이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셰일 원유 채굴과정에는 다른 자원들도 다량 소모된다. 합성원유 1배럴당 물 3배럴이 필요하며 지하의 유모를 기화시켜 채굴하기 위해서는 지하 온도를 약 370℃로 2년 이상 유지해야 한다.

이런 탓에 EROEI는 최고 10대 1(1배럴의 에너지로 10배럴의 에너지 생산), 최저 3:1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점을 종합해보면 셰일 원유는 여타 석유 대체자원이 고갈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채굴을 본격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석탄
총매장량: 1조5,000억 BOE

석탄으로도 합성원유를 만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석유가 모자랐던 독일군이 이에 성공한 적이 있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석탄에 고온 스팀을 가해 기체 원료를 얻은 뒤 '피셔-트롭스크(Fischer-Tropsch)'라는 공정을 거치면 휘발유 등으로 쓸 수 있는 합성원유가 나온다.

현재 다수의 에너지기업들은 이 같은 석탄액화기술(CTL)을 석유 대체재 확보 기술로 홍보한다. 미국 등 석탄이 풍부한 국가일수록 홍보에 더욱 열을 올린다.

CTL의 매력은 명확하다. 석탄 1톤당 약 2배럴의 합성원유가 나오므로 현존하는 전 세계 석탄 매장량 8,470억톤을 모두 CTL 공정에 투입할 경우 이론적으로 약 1조5,000억 배럴의 합성 원유를 얻게 된다.

이는 에너지 전환기에 필요한 2조 배럴 중 '준비된 자원'을 제외한 1조 배럴을 혼자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 하지만 CTL도 중대한 단점을 안고 있다. 우선 EROEI가 1:6~1:3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석탄은 석유보다 탄소 함량이 20%나 많고, 액화를 하면 그 비중은 더 높아진다.

때문에 액화석탄 1배럴이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총량, 즉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은 748㎏이나 된다. 이는 기존 석유의 430㎏과 비교해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카네기멜론대학 환경공학과 에드워드 루빈 교수는 설령 에너지 기업들이 거금을 투자, 대형 이산화탄소 포집시스템을 마련하여 CTL 공정 중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전량 제거한다고 해도 액화석탄의 탄소발자국은 여전히 석유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석탄의 채굴 자체에 막대한 에너지 투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석탄의 석유 변환은 환경친화적 에너지시스템 구현과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미국 민간연구소인 랜드연구소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용되는 일일 운송용 연료의 10%만 액화 석탄으로 대체하려 해도 매년 4억톤의 석탄이 필요하다. 이 만한 양을 공급하려면 그렇지 않아도 환경 위해성이 큰 미국 석탄업계의 몸집을 40%나 불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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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놓고 루빈은 이렇게 단언했다. "몇몇 저개발국이라면 몰라도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후순위 채굴 자원

중질 원유
총매장량: 1~2조 BOE

여러 문제를 안고 있던 석유 대체자원이라도 채굴기술의 발달로 경제성이 높아질 수 있다. 중질 원유가 바로 그렇다. 중질 원유에는 베네수엘라의 사암(砂巖) 원유부터 캐나다 앨버타의 오일샌드까지 모두 포함된다.

석유 거래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중질 원유가 경질 원유 보다 저급품이라고 믿었다. 경질 원유는 채굴이 쉽고, 원자가 사슬 모양으로 결합한 일명 '사슬 분자'의 크기가 작아 정제도 용이한 반면 중질 원유는 사슬 분자가 커서 정제를 거쳐도 선박용 연료, 아스팔트 등 수익성이 낮은 제품들이 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셰브런의 수증기 주입식 중질유 채굴법 등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중질 원유 채굴이 한층 용이해졌으며 중질 원유에서 휘발유의 생산도 가능해졌다.

오일샌드 생산기술도 마찬가지다. 석유회사들은 앨버타의 모래와 진흙에서 역청(瀝靑)을 분리·가공하여 합성 원유로 변환하고 있다.



변환율은 오일샌드 2톤당 원유 1배럴 정도로서 앨버타의 오일샌드에서만 최대 3,150억 배럴의 원유를 뽑아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또 정제비용이 인하된다면 이곳에서 하루 1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할 수 있으며 2035년에 이르러 생산량이 하루 63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셰일 오일의 유모처럼 역청 또한 지하나 노천에서 가공해야 하는데 원유 생산량 1배럴당 4.5배럴의 물이 소비된다. EROEI도 7:1로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탄소발자국의 경우 기존 원유보다 최대 20% 많다. 석탄보다는 낮지만 친환경 자원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오일샌드의 탄소발자국 저감은 생산공정 중 탄소포집장치를 가동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다. 그렇지만 오일샌드 개발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탄소포집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30년은 돼야 약 40%의 포집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다만 셰일 원유나 액화 석탄보다는 탄소발자국이 적은 만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포집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면 중질 원유는 우리가 필요한 2조 배럴의 원유 중 상당 부분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적 관점에서 볼 때 상당량의 중질 원유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들에 매장돼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초심해 원유
총매장량: 1,000~7,000억 BOE

원유 채굴에 있어 심해라는 단어는 대개 시추선으로 원유를 끌어올릴 수 있는 깊이, 다시 말해 수심 1,500m 이내의 해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해저면에서 원유가 위치한 곳까지의 거리다.



육상이라면 2009년 멕시코만에서 지하 11㎞의 원유 채굴에 성공했을 만큼 지하 3㎞ 이상의 깊이에서도 비교적 채굴이 순탄하지만 해저에서는 1.5~3㎞의 깊이만 돼도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의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 시울프급의 압궤 심도가 약 700m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난제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평 드릴링 기술, 심해 탐사 로봇, 그리고 원유 매장지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4차원 지진학 등에 힘입어 초심해에서의 원유 생산량이 급격히 늘고 있다.

아직은 전 세계 초심해 해역 중 탐사가 제대로 완료된 곳이 50%도 되지 않지만 초심해 원유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3배나 늘어 일일 500만 배럴에 달한다. 또한 이는 2015년경 두 배로 뛸 전망이다.

문제는 지난해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태에서도 확인되듯 초심해 원유 개발이 큰 위험과 부가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초심해 유전의 수압은 해수면의 2,000배에 이르며 원유의 온도는 최대 200℃로 극히 뜨겁다. 더욱이 원유 속에는 철도 녹일 수 있는 황화수소를 포함해 부식성 화합물들이 잔뜩 들어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저 원유 파이프가 매우 길고 무겁기 때문에 이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시추선의 몸집이 엄청나게 커야 한다.

최근 수십 년간 발견된 최대 초심해 유전인 브라질 프리-솔트 플레이 유전의 경우 2.4㎞나 되는 소금층이 유전을 뒤덮고 있어 화학물질을 이용해 이를 제거하고 있다. 소금층은 주변 열을 흡수하고 유전의 붕괴를 막아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원유를 젤리처럼 굳히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초심해 원유 채굴비용이 다른 원유와 비교해 최고 수준이라는 게 전혀 놀랍지 않다. 시추선 한 척의 가격만 6억 달러나 된다. 10등급 폭풍과 유빙의 충돌에 견뎌야 하는 북극 해역의 시추선이라면 이보다 더 비싸다. 그리고 초심해 유정을 하나 뚫는데 다시 1억 달러가 간단히 깨진다.

그럼에도 EROEI는 15:1~3:1로 대단찮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석유기업들은 초심해 원유 채굴의 안전성 향상 연구를 할 때조차 비용과 에너지의 절감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국적 석유화학기업 엑슨 모빌이 러시아 사할린섬 인근의 유전에서 사용한 '방향전환 가능 원격조종 드릴 헤드'가 좋은 예다.



이 헤드는 하나의 시추선에서 여러 개의 시추공을 뚫을 수 있도록 해줘 비용절감과 해저 환경 파괴 방지에 도움이 된다. 특히 원유층을 따라 수평 채굴도 가능해 채굴량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엑슨 모빌은 무려 11㎞의 수평 시추공을 뚫었다.

덧붙여 시추 비용 절감을 위해 기업들은 한층 강력한 드릴 모터와 고강도 드릴 날(drill bit) 등을 개발, 시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아르곤국립연구소의 경우 아예 드릴 날이 없는 시추 공정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출력 레이저를 활용, 암석을 녹이거나 부서뜨리는 것으로서 드릴 날 방식보다 시추 속도가 빠르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앞으로 초심해 원유의 시추 비용은 더 낮아질 전망이다. 최대 100만개의 지진파 신호를 조합, 정확성이 배가된 다중 채널 지진파 탐사기술 덕분이다. 이 기술로 인해 아무것도 없는 바위를 뚫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석유가 들어갈 구멍이나 투수성을 지닌 저류암의 존재를 더 정확히 탐지할 수 있도록 고온·고압 환경에 강한 하향공(downhole) 센서도 개발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 (NASA)의 로켓엔진 검사장비와 유사한 이 센서는 광섬유를 통해 탐사선의 컴퓨터와 연결된다.

이처럼 수집되는 데이터의 양이 많아지면서 이를 분석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들의 개발도 한창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만족스런 분석도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100만 개의 지진파 데이터 채널을 가동하려면 데이터 처리를 위해 페타플롭(1초 당 1,000조번의 연산속도)급 컴퓨터가 필요한데 그런 컴퓨터는 현재 전 세계에 단 3대 뿐이다.

석유기업들이 현재 인텔, IBM 등 하드웨어 기업들과 공동연구를 추진 중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셸의 수석과학자 브루스 레벨의 말이다.

"미래의 석유산업은 고성능 컴퓨팅에 의해 주도될 것입 니다."

최우선 채굴 자원

천연가스
총매장량: 1조 BOE

천연가스는 운송용 연료 부문에서 오랜 기간 석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최대 강점은 단연 친환경성. 석유보다 유해물질 배출량이 적으며 동일한 에너지를 산출할 때 발생하는 탄소의 양도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 운송용 연료에서 압축천연가스(CNG)로 대변되는 천연가스의 비중은 3% 이하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신기술에 의해 공급량이 증대되면서 그 비중이 높아질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고압의 액체로 해저 암반을 부수며 시추하는 수압 파쇄식 드릴잉 기법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손대기 어려웠던 셰일 암석 속의 천연가스도 이제는 경제성 있게 채굴할 수 있다. 업계전문가들은 전 세계의 셰일 천연가스 매장량이 188조 6,000억N㎥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이를 에너지량으로 환산하면 석유 8,270억 배럴과 맞먹는 막대한 에너지 자원이다. 게다가 이 수치는 유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탐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천연가스의 존재가 거의 확실한 해저분지의 매장량은 제외한 수치다. 그만큼 천연가스는 풍부하며 가격도 석유의 25%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천연가스는 석유를 대체할 미래의 연료로 쓰기에는 여전히 외부비용이 높다. 먼저 수압 파쇄 기법에 이용되는 액체는 유독성분이 함유된 것이 많아 지하수 오염 등인 인근지역 환경에 극히 해로울 수 있다. 물론 천연가스 매장지는 일반적으로 지하수의 위치보다 훨씬 깊은 지하 수백 m에 존재하므로 시추공 주변을 철저히 밀봉하는 형태로 이 문제를 최소화시킬 수 있지만 말이다.

또한 천연가스를 운송용 연료로 과다하게 사용하면 부정적 결과와 맞닥뜨릴 수 있다. 수요증대가 가격인상을 초래해 천연가스의 최대 이점 중 하나가 사라질 수 있으며 발전 분야에서 수급불안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중 발전용 천연가스의 부족은 석탄 사용을 늘리는 부작용까지 우려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운송수단 전체가 아닌 트럭, 버스 등 특정 교통수단에 한정해 천연가스를 연료로 쓴다면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저감과 석유 수요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석유회수증진기술
총매장량: 5,000억 BOE

과거의 유전에서는 대개 매장된 원유의 3분의 1 정도만 채굴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뒀다. 그 이상 채굴하면 원유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압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추비용이 상승, 경제성을 갖출 수 없었다.

미국 내의 폐 유전에만 이런 원유가 4,000억 배럴이나 있으며 전 세계로 따지면 수 조 배럴 규모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잔존 원유를 온전히 뽑아낼 수 있다면 어떨까. 추가적인 탐사 없이도 막대한 석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미 이를 실현할 기술이 있다. 유전의 원유를 더 많이 채굴하기 위해 개발된 석유회수증진(EOR) 기술이 그것이다.

EOR의 등장으로 현재 유전에서는 매장된 원유의 최대 70%를 채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폐 유전에 적용하면 5,000억 배럴의 추가 원유 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EOR은 환경적 이점도 크다. 가장 대표적인 EOR 기법으로 유정(油井)에 이산화탄소를 주입, 원유에 용해시킴으로써 원유의 점도를 낮추고 부피를 늘려 채굴을 쉽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원유 채굴 후 이산화탄소를 분리, 비어있는 유정 속에 영원히 가둘 수 있다.

화력발전소, 제철소 등에서 포집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이 공정에 투입할 경우 유용한 원유는 캐내고 온실가스는 저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미국만 놓고 봐도 이렇게 하루 360만 배럴의 원유를 추가 생산하면서 약 10억톤의 이산화탄소 대기 방출 저감을 꾀할 수 있다.

특히 EOR은 그 기술에 따라 EROEI가 최대 20:1에 달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EOR 기술 하나로 에너지 전환기에 필요한 석유를 전량 확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용과 친환경성, 효율성을 감안하면 천연가스의 생산 증대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시도해야 할 방법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채굴이 쉽고 환경피해도 적은 자원부터 순차적으로 먼저 사용하는 것이 에너지 전환기를 가장 슬기롭게 대처하는 비책일 것이다. 미래에 어떤 좋은 기술이 개발될지도 모르면서 굳이 지금부터 셰일 원유처럼 채굴이 가장 어렵고, 환경 유해성도 큰 자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완벽히 합리적이고 이상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석유기업들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생산비가 저렴해 최대의 수익창출이 가능한 예전 방식을 고수할 것이며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어떤 원유를 어떻게 생산했는지는 관심 없이 무조건 저렴한 에너지만을 구입할 것이다.

이때는 탄소배출세 등 기후관련 규제를 통해 실질적인 석유 생산비용과 소비자 가격과의 격차를 메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장기적 관점의 에너지 정책을 펼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청정에너지 시대로의 이행이 완벽히 깨끗하게 전개될 확률은 매우 낮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거래와 타협 및 절충,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혹시라도 우리가 석유와의 결별을 망설인다면 그 시간 동안 거래와 타협에 드는 비용은 나날이 높아질 것이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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