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재즈 연주자 키스 자렛의 선율에 빠지다

[CEO, 예술을 만나다] 최영익 넥서스 대표변호사 - 황덕호 재즈칼럼니스트 대담


재즈 애호가는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만나면 더욱 반갑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이 6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키스 자렛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흥행을 보장받는 재즈 뮤지션이다. 재즈 애호가인 최영익 넥서스 대표변호사와 황덕호 재즈칼럼니스트가 만나 재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황덕호(이하 황): 키스 자렛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재즈 연주자예요. 지난 해 내한 공연했기 때문에 6개월도 되지 않아 다시 올 줄 몰랐어요. 국내 팬들이 열성적으로 환호해주니까 내한이 다시 성사된 것 같습니다.

최영익(이하 최): 관중들의 환호가 대단했어요. 한 달 전 다녀간 기타 연 주자 팻 메스니 공연 때보다 관객이 더 많았지요. 특히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혼자 온 사람부터 만삭의 임신부까지 참 많이들 왔더라구요.

황: 키스 자렛 음악으로 태교를 했나 보네요.

최: 서정적인 멜로디라 아기에게도 좋았겠죠?

황: 키스 자렛에겐 다른 재즈 피아니스트에게서 느낄 수 없는 서정성이 있 어요. 재즈뮤지션들은 대개 습관처럼 테크니컬한 연주기법을 끼워넣는데, 키스 자렛은 그런 걸 배제하고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죠. 다만 연 주 첫인상은 조금 피곤해 보였습니다.

최: 만성피로증후군을 겪었다고 하대요. 예전에 비해 즉흥곡의 길이도 짧아졌습니다. 길어야 10여 분? 전처럼 30 분 넘게 연주하는 건 힘들어 보였어요.

황: 2000년대 들어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합니다. 트리오 공연을 모두 취 소하고 집에서 쉬다가 피아노 즉흥연주를 혼자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최: 키스 자렛하면 즉흥연주를 떠올릴 만큼 이젠 그의 대명사가 됐죠?

황: 재즈가 대개 즉흥연주로 이뤄진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1970년대 넘어서면서부터는 다른 음악과 뒤섞이는 퓨전현상이 벌어졌어요. 손꼽히 는 트럼펫 연주자인 마일스 데이비스도 퓨전으로 옮겨갔습니다. 즉흥연 주보다는 스타일 자체가 더 우선시되는 상황이 됐죠. 그런데 갑자기 키스 자렛이 변신을 꾀했어요. 스탠더드 곡도 아닌 곡을 피아노 솔로로 레퍼토 리도 없이 즉흥적으로 몇 십 분 넘게 연주하는 전무후무한 일을 했습니 다. 당시 잡지를 보면 키스 자렛은 컬트 팬을 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 묘사됐지요. 정통 재즈에 관심 없던 사람마저 자기편으로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최: 저도 193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사이에 나온 정통 재즈음악을 주 로 듣고 좋아합니다. 키스 자렛처럼 서정적이고 클래식하고, 또 조금은 뉴 에이지 같은 음악은 정통 재즈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황: 키스 자렛은 재즈 주류에선 조금 벗어나 있어요. 현재 재즈의 주류를 잇는 건 신정통주의자인 윈턴 마살리스가 대표적이죠. 키스 자렛은 트럼 펫 연주자인 윈턴 마살리스와 자주 설전을 벌였어요. 윈턴 마살리스는 스 윙감과 블루스를 매우 중시합니다. 2000년 미국 PBS 방송국 프로듀서 켄 번스가 만든 '재즈' 라는 10부작 다큐멘터리에서 윈턴 마살리스가 자 문위원을 맡았는데,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보면 윈턴 마살리스의 생각을 알 수 있어요. 재즈 기원에서 1960년대까지의 연주 형태는 9회에 걸쳐 다 루고 1960년 대 이후는 단 1회분에 몰아넣은 거죠. 동시대 연주자는 거의 다루지 않은 셈이지요. 이를 본 후 키스 자렛은 뉴욕타임스에 '잃어버린 40년' 이란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지 않은 최근 40년 이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죠. 그는 퓨전 이후의 시대를 재즈가 가지를 쳐서 다양하게 발전한 시기라고 했지만, 윈턴 마 살리스는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도 키스 자렛은 윈턴 마살리스에 대해 "연주는 잘 하지만, 잘 훈련받은 고등학생 같다"고 평가절하했지요. 창의성이 없다는 공격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죠. 윈턴 마살 리스는 자발성이 부족하다고. 재즈의 문을 닫는 뮤지션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맞는 말 같아 요. 옛날 것을 공부해서 되살려내는 정도론 요즘 젊은 사람에게 어필하기 힘들죠. 재즈 발전에 얼 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고요.

황: 요즘 미국에서도 그런 우려를 해요. 재즈 뮤지 션에게 클래식 연주자처럼 옛 것만 공부시켜서 되 겠냐는 거죠. 키스 자렛은 옛 것도 잘하지만 훨씬 열려 있고 다양한 뮤지션입니다. 재즈는 계속 변 해가는 음악이라고 키스 자렛은 말해요. 그래서 그에겐 젊은 팬들이 많죠. 젊은이들은 전통에 별로 개의치 않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최: 한국팬들이 키스 자렛을 좋아하는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죠? 국내에 재즈가 정착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황: 우리나라에선 1930년대 스윙재즈 이후 한동안 재즈가 단절됐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음반수입 자율화 시대가 열리며 재즈가 다시 들 어왔지요. 이미 미국과 일본에선 비밥, 하드밥, 쿨 퓨전, 아방가르드 등 다 양한 재즈가 분화되고 발전했습니다. 국내에선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음 악을 차근차근 소화할 여유가 없었고요. 그렇다 보니 당시 기호에 맞았던 키스 자렛과 팻 메스니가 먼저 자리를 잡았죠. 한국사람에게 최초로 각인 된 재즈 뮤지션이 아닌가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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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요즘도 일본에선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의 사망기념일이 되면 관 광객들이 미국 생가를 방문해 성지순례를 한다고 합니다. 1960년대 존 콜 트레인 방일 연주를 잊지 못한 사람들이겠죠. 아마 키스 자렛이 죽으면 한국에서도 그런 상황 올 것 같아요.

황: 이후론 국내에서도 다른 재즈 음악이 차츰 저변을 넓혀갔죠. 드라마 에서 차인표가 색소폰을 멋지게 연주한 것도 단단히 한몫했을 겁니다.

최: 저도 80년대 대학시절 재즈를 처음 접했어요. 친구의 권유로 들었는데 당시엔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1990년 김앤장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들어봤는데, 그때 비로소 괜찮다고 느꼈어요.

황: 안타까운 건 당시 재즈를 듣던 사람이 계속 남지 않고 이탈했다는 거 예요. PC동호회도 다 없어지거나 와인동호회로 바뀌었어요.

최: 아니면 클래식 음악으로 넘어갔겠죠. 제 주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앤 장에서 10년간 일할 땐 재즈를 좋아하던 선배랑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요즘은 그런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이유가 뭘까요?

황: 당시 재즈팬은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랑 비슷한 스타일이었을 겁니다. 올드 패션 재즈를 좋아했죠. 1950~1960년대 명반을 모두 들었으니 더 이 상 들을 게 없다고 생각들 했겠죠. 정통재즈를 추구하는 현대의 신전통주 의 연주자들은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했어요. 윈턴 마살리스나 조슈아 레 드먼도 그랬죠. 재즈업계 종사자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즈 매체가 꾸준히 새로운 뮤지션에 대해 알려주면 관심이 연장될 수 있 는데, 들려오는 소식이 없으니 취미를 바꾸는 것 같습니다.

최: 맞아요. 재즈는 외로워요. 별로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연 감상 을 나누기도 힘들죠. 재즈 애호가들은 정보나 지식, 토론에 항상 목말라 있어요. 그래도 재즈를 듣는 이유는 역시 음악이 좋아서겠죠. 재즈는 들 을수록 다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곡도 수많은 연주자가 다 다르 게 연주하죠. 클래식보다 더 다양합니다. 다양성이 재즈에 대한 끈을 놓 지 않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해요. 듣다가 그만둔 사람들을 보면 안 타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황: 클래식 음악은 보통 18세기에 시작해서 20세기 전반에 거의 끝난 음 악이에요. 재즈는 그후에 생겨서 지금도 진화가 진행 중이죠. 이전 예술 향유층과 다른 문화권에서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해 지금도 창작되고 있 어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재즈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 황 선생님도 처음엔 클래식으로 시작하셨죠?

황: 대학졸업 후 1990년 소니뮤직에서 클래식 마케팅을 시작했어요. 이후 잡지사 레코드포럼에서 편집 일도 했고요. 당시 재즈를 처음 들었는데 신 기하고 좋았어요. 회사에 재즈 담당자가 따로 없어 제가 관여했죠. 객석이 나 음악동아 같은 클래식 잡지에 재즈 칼럼을 쓰던 게 현재의 칼럼니스트 일로 이어졌습니다.

최: 재즈를 다시 듣거나, 시작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황: 올드재즈로 시작하든 키스 자렛이나 팻 메스니로 시작하든 상관없어 요. 자신에게 맞는 음악의 단초를 잡는 게 중요해요. 라디오를 들으면 손 쉽게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 KBS와 CBS, EBS 에 재즈 프로그램이 있어요. 라디오는 선곡을 다양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 다시듣기도 가능합니다. 재즈에 관한 각종 정보도 전해주지요. 자신에게 맞는 좋은 음악을 듣다가 서서히 가지치기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최: 전 강의를 듣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몇 년 전 황 선생님의 예술 의 전당 강연을 들었는데, 매주 두 시간씩 6개월 동안 좋은 스피커로 음악 과 배경설명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황: 요즘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이번 여름에는 재즈보 컬리스트를 주제로 잡았죠. '나는 가수다' 덕분에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기획자가 특강이름을 '나 는 재즈가수다' 로 했는데, 수강생이 평소보다 2배 이상 몰렸습니다.

최: 클래식과 재즈를 한마디로 비교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황: 클래식은 그 시대 엘리트 계급이 향유하던 문화여서 풍부한 물적 배 경 아래 최고의 꽃을 피웠습니다. 재즈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뮤지션 스스로가 만들어냈죠. 클래식이 아름다운 화초라면 재즈는 야생 화입니다.

최영익은...
최영익 변호사는 법무법인 넥서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김앤장에서 10년 재직한 후 우일과 리인터내셔널 등에서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M&A와 투자 같은 기업 관련 법무를 주로 맡고 있다.

황덕호는...
황덕호는 유명 재즈 칼럼니스트로, 1999년부터 KBS라디오에서 '재즈수첩' 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재즈 전문 음반매장 애프터 아워스 After Hours 운영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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