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검은 머리 외국인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글 김방희

참역설적이다. 해외 비자금이 라는 한국 경제의 뇌관을 건드린 주역이 스위스라는 사실이.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고객 비밀 보호주의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나라의 국세청이 지금 한국에서 해외 비자금을 밝 히고 과세하라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 해외 비자금의 존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탈세와 로비 등 부정한 용도로 쓰기 위해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규모를 비롯해, 해외 비자금의 존 재가 속 시원하게 드러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조세당국이 역외 탈세 자금 에 대한 조사를 강화해왔지만 별 소득이 없던 터였다. 해외 비자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스위스의 비밀주의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해외 비자금은 스위스 은행계 좌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 돈은 조세피난처를 거쳐, 심지어 한국에까지 흘러들어오고 있다.


발단은 올해 초 스위스가 한국 국세청에 58억 원을 환급하면서였다. 이 돈은 한국에 투자 한 기업으로부터 받은 배당소득의 일부였다. 스위스 국세청은 양국의 배당소득에 대한 세율 차이를 감안해 차액을 환급했다. 이 경우 투자자금의 규모도 역산해볼 수 있다. 5%의 세율차 로 58억 원을 환급받았다면, 자금 규모는 1조 원을 넘어선다. 물론 스위스 국세청은 납세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제 3의 국적’이란 사실만 밝혔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조세피 난처 등 한국 국적이 아닌 자본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인이 조성한 해외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 다고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 엄청난 규모로 투자해 배당까지 받을 정도라면 그 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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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로 가장한 한국인,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에 대한 말이 많았다. 이들은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크다 는 점을 악용해왔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어떤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김없이 엄청난 매수세가 형성되곤 했다. 한국 내의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투자할 경우 외국인 매매로 집계되는 점도 상당히 유리한 환경이었다. 검은 머리 외국인들은 이 점 을 노리고 한국 증시에 대규모로 투자해왔다. 게다가 세금이나 자금출처 노출이란 위험도 거 의 없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자국 시장만큼 수익을 올리기 쉬운 곳도 없었다. 이들 가운데는 더욱 노골적으로 편법 인수합병 M&A이나 불법 시세 조종에 개입하는 경우마저 생겼다. 외환 은행을 인수한 사모펀드 론스타에 검은 머리 외국인 자본이 있느냐는 논란도 아직까지 끊이 지 않는다. 론스타 측은 일관되게 부인하지만, 일부 언론은 조세피난처와 홍콩 등지의 외국 계 은행을 통해 실질적인 한국 자본이 참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교역을 가장한 해외 비자금 조성 해외 금융거래가 크게 늘고 있는 점도, 한국에서 해외 비자금 조성이 쉬운 환경이다. 재계와 금융계에 서 전통적인 해외 비자금 조성 방법으로 꼽는 것은 수입과 해외 건설투자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당장 해 외에서의 실제 상품 수입액과 수입 대금 지불액 간에 는 차이가 크다. 현재 해외 비자금 규모를 30조 원 안 팎으로 추정하는 것도 바로 이런 조성 방법을 전제 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해외 건설사업 투자를 명분으 로 자금이 흘러나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그렇다. 이 금융회사의 부실 은 폐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캄보디아 건설사업에 투 자하기로 한 돈 가운데 3분의 2가 사라진 정황을 발 견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해외 비자금으로 둔갑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스위스 국세청이 건드린 뇌관이 결국 폭발할지 여 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 사안을 포함해 해외 비자 금의 실질적 소유주를 밝히는 일이 워낙 어렵기 때문 이다. 당장 스위스 정부나 은행들의 협조를 기대하기 가 어렵다. 조만간 발효될 한국과 스위스의 조세 협정 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위스 가 자발적으로 상대국의 계좌 정보 요청에 협조한 경 우란 거의 없다. 미국도 엄청난 국제적 압력을 가하고 서야 스위스로부터 탈세 혐의자 정보를 얻어낼 수 있 었다. 독일은 아예 스위스 은행 관계자로부터 계좌 정 보를 사들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국이 그럴 수 있 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대기업과 금융 산업, 그 리고 정치권에 대파란을 일으킬 판도라의 상자를 누 가 열려고 할지, 그게 의심스럽다.

김방희(생활경제연구소장.. KBS 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자)


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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