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사회에 맞서 노화방지 및 생명연장을 위한 의학계의 노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닌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이 꿈을 이루기 위한 21세기 불로초 탐사대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에 본다.
글_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노화 방지나 생명연장 같은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십중팔구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을 것이다. 바로 중국의 진시황이다. 그는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 했고 제주도에까지 수색 대 임무를 맡은 사신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진시황도 한편으로는 즉위 직후부터 자신이 누울 무덤을 초호화판으로 건설했고, 결국 기원전 210년 세상을 떠났다. 이는 언젠가 죽을 유한한 존재임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영생을 추구하는 사람의 원초적 심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의학계도 이런 사고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노화를 생물의 자연스러운 생멸과정으로 여기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연구를 하고 있다.
노화에 대한 치열한 논쟁
불가에서 말하는 생로병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이다. 이중 하나인 노화 현상은 아직까지 100% 명확한 근본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학설들이 있고, 그중에서 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몇몇 학설들이 있지만 '노화의 원인은 이것 때문'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일례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생물종마다 노화 속도에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것이 상당부분 유전적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한다. 특정 유전자를 변화시키면 생물의 수명을 적잖이 연장시킬 수 있다는 실험 결과들도 있다. 유전자 변화에 의한 수명 연장 효과는 하등동물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고 알려진다.
반면 인간이 속한 포유류의 노화 과정은 의외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포유류 중 가장 작은 쥐조차 수명이 최소 2~3년이나 되고 그 기간 동안 무수한 변수들이 작용할 수 있는 탓에 특정 요인에 의한 생명연장 효과를 명확히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 학설로는 진화 이론과 텔로미어 이론을 들 수 있다.
전자는 생명체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보다 잦은 유성 생식을 통해 많은 후손을 남긴 뒤 사멸하는 것이 유전자적 진화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노화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텔로미어 이론의 경우 DNA 염색체 끝 부분에 위치한 텔로미어(telomere)라는 염색소립(chromomere)을 노화의 주범으로 본다.
텔로미어는 세포분열시마다 조금씩 짧아지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길이가 너무 짧아지면 세포분열이 중단되며 세포는 사멸의 길에 접어든다고 설명한다. 학설 중에는 생식세포 주기이론도 있다. 이는 노화가 생식 호르몬에 의해 제어된다는 이론이다.
생식 호르몬이 세포의 생애 전반에는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지만 후반에는 세포 분열을 계속 유지하려는 헛된 노력을 통해 역기능과 노쇠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노화를 질병으로 보기도 한다. 바이러스성 노화이론, 자가면역 노화이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외에 DNA, 세포, 조직의 누적된 손상을 노화의 원인으로 보는 이론, 노화는 태생적으로 인체에 프로그래밍된 작용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노화방지 물질과 건강보조제
이러한 노화의 지연 혹은 방지를 위해 현재는 주로 식이요법이나 건강보조제 들이 사용된다. 노화 관련 연구들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 많다. 하지만 노화의 원인이 불명확한 만큼 체감 가능하거나 계량화할 수 있 는 수준의 수명연장 효과가 입증된 것은 사실상 전무하다.
의약품이 아니어서 경험적인 사실 또는 기껏해야 쥐 실험으로 효용성이 일부 확인되면 인체 유해 성 정도만 체크하고 제품이 출시된다. 식이요법으로는 일명 구석기시대 요법과 열량조절 요법이 있다.
구석기시대 요법은 250만 년 전부터 농업혁명이 일어나던 1만 년 전 사이의 식단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주로 방목한 가축의 고기, 생선, 과일, 뿌리식물, 견과류 등을 식재료로 쓰며 쌀이나 밀, 콩, 유제품, 정제당, 가공유지 등은 배재시킨다. 또한 열량조절 식이요법은 칼로리 섭취를 필요 최소한으로 감소시킴으로써 노화를 지연하고 노환을 막는다는 발상이다.
또한 자유라디칼이 주변 세포들에 피해를 일으켜 노화가 촉진된다는 자유라디칼 이론에 의거해 비타민 C와 E, Q10, 리포산, 카르노신, N 아세틸시스테인 등의 항산화물질이 든 건강보조제들이 다수출시돼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 옥시토신, 레스베라트롤, 셀레늄, 인슐린, 인간 융모막 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h CG), 에리스로포이에틴(EPO) 등도 수명연장을 도와 줄 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한편 노화방지에는 호르몬 요법 역시 자주 활용되고 있지만 이 방식은 잠재적 위험요소가 너무 많고, 검증된 효과가 적다는 비판이 일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미국 의학회 (AMA)는 일부 노화방지 호르몬 요법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장 호르몬을 사용한 노화방지 요법은 초기 연구에 의해 쥐의 기대수명 증가 효과가 나타났지만 후속실험 결과, 성장 호르몬 투여가 오 히려 최대수명을 단축하는 역효과를 불러오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식이요법, 건강보조제, 호르몬 등을 사용한 노화방지에 반기를 드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런 학자들은 노화를 질병으로 여기는 시각 자체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1961년 인체 세포의 분열 한계를 처음 밝혀낸 레너드 헤이플릭 박사도 노화는 엔트로피 증가에 의 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여러 생물유전학자들은 이른바 노화방지 기업들이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제로 부당이득을 챙기고 있다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무수한 도전, 그리고 가능성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21세기 들어 노화방지 연구는 상당히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2002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브루스 에임스 교수팀이 가장 대표적. 에임스 교수팀은 늙은 쥐에게 아세틸-L-카르니틴과 알파 리포산을 섭취시켜 회춘 효과를 얻었다. 현재 이 요법의 특허를 내고 주베논이라는 기업을 설립, 상품화에 나선 상태다.
2007년에는 미국 솔크 생물학연구소의 앤드류 딜린 교수팀은 선충에서 소식(小食)과 장수를 실현시키는 pha-4라는 유전자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 유전자는 선충의 칼로리 소비를 조절, 생명연장에 기여한다.
같은 해 스탠포드 의대의 하워드 창 박사도 2년생 쥐에서 세포 내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NF -카파B유전자의 활성화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쥐의 피부를 갓 태어난 듯한 상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2008년에는 또 스페인 국립암연구 센터가 유전자 조작을 거쳐 새로운 텔 로미어 DNA를 생산, 짧아진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려주는 텔로머라아제 (telomerase) 효소가 정상치의 10배나 되는 쥐를 만들었다. 연구 결과, 이 쥐는 평범한 쥐보다 수명이 26%나 길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9년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토양 미생물이 생산하는 라파마이신(rapamycin)이 생후 20개월 쥐의 기대수명을 최대 38% 늘려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그해 영국 영양학 저널에는 늙은 쥐에게 호두를 먹이면 뇌 기능과 운동능력이 향상된다는 미국 터프츠대학 연구팀의 논문 이 게재됐다.
당시 쥐들이 하루에 섭취했던 호두는 인간으로 치면 약 7~9개에 해당되는 양이었다. 그리고 작년 11월 하버드대학 다나 파버 암연구소의 로널드 데피노 박사팀은 텔로머라아제 생산을 인위적으로 중단시켰다가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쥐의 장기를 회춘시키는 데 성공했다. 네이처에도 실린 이 연구논문에 의하면 쥐는 생식능력이 회복됐으며 비장, 간, 창자, 두뇌 등이 다시 젊어졌다.
미래형 노화 방지 전략
지금까지 제시된 연구들이 현재진행형이라면 미래형의 콘셉트들도 있다. 이 분야에서는 가장 먼저 나노기술을 꼽을 수 있다. 나노의학을 통해 노화를 일으키는 인체의 많은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대체해 노화 방지를 꾀하는 방법이다.
세계적 미래학자인 레이몬드 커즈와일은 2030년경 최첨단 의학용 나노로봇이 노화의 원인을 발본색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키도 했다. 인공장기와 맞물려 인체 장기 및 조직의 복제나 교체 역시 주목받는 미래 노화방지 기술이다.
복제 기술과 줄기세포 연구가 발전을 거듭해 언젠가는 인체 세포와 신체의 일부, 더 나아가 신체 전체를 복제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의 일환으로 최근 미 국방부가 쥐의 몸에서 인체의 일부를 배양할 수 있는지를 타진하는 연구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 관절, 사지 등 복잡한 생체 구조물의 복제에 성공한 적은 없다. 20세기 중반 개와 영장류의 뇌를 다른 개체에 이식하는 실험이 있었지만 거부반응과 신경연결 회복 불능으로 인해 모두 실패했다. 그래도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인체 복제나 줄기세포 기술이 그 어떤 미래의 노화방지 기술보다 먼저 실용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만 인간 줄기세포, 특히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기술은 매우 큰 윤리적 및 종교적 논란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또 다른 미래형 생명연장 방식으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냉동보존 술이다. 이는 불치병 등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냉동시킨 뒤 치료법이 개발된 미래에 소생시켜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미국 알코르생명연장재단 등 몇몇 업체들이 현재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포유동물을 냉동보존한 후 성공리에 소생시킨 사례가 없고, 설령 소생이 가능하더라도 환자의 질병을 낫게 해줄 의료기술의 개발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부분에서 인체 냉동보존술을 진정한 의미의 생명연장 기술로 보지 않기도 한다.
옥스퍼드대학 석좌 교수이자 유명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노화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체 또는 억제하는 기존의 유전자 요법에 더해 이들 유전자를 속이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간의 유전자 중에는 젊었을 때 발현되는 것도 있고 늙었을 때 발현되는 것도 있는데 늙어서 발현되는 유전자는 결국 사람을 노화와 죽음으로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게 도킨스의 설명이다.
따라서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는 체내의 화학적 환경을 파악, 젊은이의 그것을 나이든 사람의 인체에서 구현해 유전자를 속인다면 생명연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화의 메커니즘이 일부라도 밝혀진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노화를 당연시 여겼다. 그리고 생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곧 생명 연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번식본능 이상으로 현재 자신의 몸을 오랫동안 온전히 유지하고픈 욕망은 인간의 또 다른 본능이다.
굳이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면 대개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캠브리지대학의 오브리 디그레이 박사는 기술발전에 힘입어 인류가 1,000살까지 살 수 있게 된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근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생명공학기술을 보면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