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섭취한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반찬 한 접시가 모두 식탁에 오르기까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적잖이 배출했다는 얘기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먹었나.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케 했나.
박소란 기자 psr@sed.co.kr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여름이 되니 지구온난화가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범인은 누구일까. 공장과 화력발전소, 자동차 등 비난을 퍼부을 대상은 부지기수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
우리의 밥상도 여기에 한 몫 단단히 거들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오늘 저녁 식사로 쌀밥 한 공기 (220g)에 쇠고기무국 한 그릇(280g), 불고기 100g, 배추 김치 80g을 먹었다고 치자. 당신은 그저 한 끼를 때웠을 뿐 이지만 그 과정에서 5.592㎏의 이산화탄소(CO₂)가 배출됐다.
쌀밥의 배출량이 0.112㎏CO₂e이며 쇠고기 무국 1.92㎏ CO₂e, 불고기 3.48㎏CO₂e, 배추김치 0.08㎏CO₂e이다. 이는 놀랍게도 승용차로 29.6㎞를 주행했을 때 배출되는 CO₂량과 같다.
만일 이와 동일한 식단으로 1 년간 식사를 한다고 가정하면 당신에 의해(?) 배출되는 CO₂는 자그마치 6,124㎏CO₂e에 달한다. 20년생 소나무를 2,098그루나 심어야 흡수되는 엄청난 양이다.
음식의 탄소 발자국
이는 최근 오픈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스마트 그린 푸드(www.smartgreenfood.org)'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밥상 탄소발자국 계산기를 통해 계산한 결과다. 한 종류의 음식 이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크게 생산, 수송, 조리의 단계를 거치는데 밥상 탄소발자국은 이 3가지 단계에서 배출되는 CO₂의 양을 합산한 것이다.
일례로 쌀밥은 생산 단계에서 0.05㎏, 수송 0.01㎏, 조 리 0.05㎏의 CO₂e가 배출된다. 쇠고기 무국의 CO₂e는 생산 1.69㎏, 수송 0.01㎏, 조리 0.23㎏이다. 이 같은 수치는 음식의 탄소발자국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임송택 연구원의 자료에 따른 것이다.
임 연구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가정식 식단을 선정, 외국의 기본 데이터를 근거로 활용해 이번 자료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각 단계별 세부 수치는 어떻게 산출될 수 있을까.
식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쌀밥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쌀밥의 경우 재배 전 토양을 일구는 등의 생산 전(前) 단계, 쌀을 실제로 재배하는 생산 단계, 수확 후 정미(精米)하 여 자루에 포장하고 유통하는 수송 단계, 소비자가 쌀을 구매해 밥을 짓는 사용 단계, 남긴 밥과 쌀자루가 버려지는 폐기 단계로 구분된다.
이들 단계를 거치는 동안 여러 기재들 이 작용, CO₂가 배출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산 전 단계에서는 종자, 농약, 비료, 용수, 연료 등이 고려 사항이다. 생산 단계는 관행농인지 유기농 인지와 같은 농법이, 가공·유통 단계는 첨가물·포장·수송·저장 등이, 그리고 소비 단계는 냉장·냉동·저장·조리 등이 CO₂ 발생 기재다.
끝으로 폐기 단계에서는 사료화, 퇴비화, 메탄화, 소각, 매립 등이 계산 요인에 들어간다. 결국 특정 음식물의 정확한 탄소발자국 산출은 각각의 세부 단계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와 CO₂ 발생량을 일일이 파악해 합산해야 한다.
이를 음식물 전과정 평가(Life Cycle Analysis, LCA)라고 하며 이렇게 계산된 식품 탄소발자국 은 잠재적 환경 영향 평가의 중요 기본 자료가 된다.
LCA와 LCI
하지만 누구나 짐작하듯 LCA의 수행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임 연구원은 "LCA는 정확도가 높은 반면 방법론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방대하다"며 "데이터 구축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LCA를 수행하는 것 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사실 한 종류의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변수들이 있다.
쌀밥이라고 다 같은 쌀밥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혹은 전기밥솥으로 조리했는지 가스레인지로 조리 했는지에 따라 CO₂ 배출량은 전혀 달라진다.
반찬에 쓰이는 배추나 무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은 노지에서 생산됐고 어떤 것은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됐을 것이다. 혹은 노 지 70%, 비닐하우스 30%일지도 모른다. 또한 가정마다 음식 조리법이 달라 김치에 굴이나 젓갈을 넣을 수도 넣지 않을 수도 있다.
굴을 넣었다면 그 굴이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채취돼 어떻게 주부의 손에 들어왔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당최 끝이 없다. 배추김치 하나 만으로도 체크리스트가 수백~수천 개에 달한다. 어쩌면 수만 개가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한 끼 밥상의 LCA 추정은 사실상 불가능 에 가깝다.
이에 대응해 만들어진 것이 전과정 목록(Life Cycle Inventory, LCI)이라는 분석 툴이다. LCA의 거시적 기반으로서 음식의 전 과정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산출한 평균 데이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임 연구원은 이와 관련 "식재료 1㎏당 투입되는 에너지 비용은 각 가정과 지역 등에 따라 다르다"며 "LCI 데이터로 국가별 평균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구축된 LCI 데이터의 수준이 LCA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LCI 데이터가 얼마나 정확하고 다양한지가 LCA 수행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환경부를 중심으로 소재·부품 산업에 대한 LCI 데이터를 구축해 가고 있다.
하지만 농식품에 대한 LCI 데이터 구축 작업은 이제야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2009년에 이르러 농촌진흥청이 감자, 고구마 등에 대한 데이터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세한 수치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다르다.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 LCI 데이터 구축 작업에 들어가 이미 약 600여 개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인터넷 등 다양한 경로로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상태다.
채소보다 육류의 CO₂ 배출량 많아
해외 각국의 LCI를 인용한 임 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주요 식재료 1㎏당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CO₂e 양은 채소류의 경우 오이 4.34㎏, 토마토 3.43㎏, 콩 0.596㎏, 양파 0.379㎏ 등이다.
오이와 토마토의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시설 채소가 노지 채소보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탓이다. 육류는 이들 채소류보다 수치가 훨씬 더 높다. 쇠고기 44.71㎏CO₂e, 돼지고기(삼겹살) 3.26㎏CO₂e, 닭고기 3.10 ㎏CO₂e 등이다.
육류 중에서도 쇠고기의 수치가 월등한 것은 다른 가축에 비해 사육기간이 길고, 풀과 사료를 많이 섭취하는 소의 특성상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는 되새김질을 통해 장내 박테리아로 음식물을 분해·발효시키는데 이때 CO₂보다 지구온난화 유발 효과가 20배나 강한 메탄가스(CH₄)가 생성돼 트림이나 방귀로 배출된다.
덴마크의 LCI 자료에 근거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밀은 1㎏당 생산단계의 CO₂e가 0.847㎏이다.
먼저 밀 1㎏의 생산을 위해서는 0.0352㎏의 질소비료, 0.0032㎏의 인산비료, 0.0094㎏의 칼륨 비료, 0.0021ℓ의 윤활유, 0.0038㎾의 전기에너지, 0.7500메가줄(MJ)의 농기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 생산 전 단계의 요소들이 배출하는 CO₂e는 각각 0.330㎏, 0.009㎏, 0.008㎏, 0.001㎏, 0.02㎏, 0.013㎏으로서 총합이 0.363㎏ 정도다. 직접적인 밀 수확 단계에 이르면 농기계 등 연료의 연소에 의해 0.068㎏CO₂e가 추가되고 CO₂ 대비 온난화 강도가 300 배가 넘는 아산화질소(N₂O)도 0.001341㎏ 방출된다.
N₂O는 대개 질소비료의 분해 과정에서 배출된 것으로 0.001341㎏을 CO₂의 양으로 환산하면 0.410㎏CO₂e가 된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는 덴마크의 LCI다. 우리나라는 아직 관련 데이터가 없다.
임 연구원은 "LCI 데이터를 마련할 때는 국가 차원에서 식재료의 생산 방식, 수입 비율 등을 꼼꼼히 따져 평균값을 낸다"며 "이를 기반으로 식탁에 오른 김치가 몇 퍼센트의 국내산 배추와 수입산 배추로 이뤄졌는지를 파악, 얼마나 많은 CO₂를 배출하는지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탄소성적표지 제도
이런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는 궁극적 목표는 소비자들에게 각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비교할 객관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선택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오늘날 각국에서는 LCA에 근거한 탄소라벨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농식품을 비롯한 모든 제품의 탄소발자국, 즉 생산·수송·유통·사용·폐기 등 전 과정에서 나온 CO₂ 총량을 판매제품에 표기하는 제도다.
2007년 영국 등 선진국들이 잇따라 시행한 데 이어 우리나라도 2009년 탄소성적표지 제도라는 명칭으로 이를 도입했다.
지금까지 300여 개의 제품이 탄소라벨을 부착했으며 콜라, 우유, 소주, 즉석밥, 두부, 초코파이 등 품목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중 농산물은 아직 단 하나도 포함돼 있지 않다. 농산물의 LCI 구축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지난해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쌀, 콩, 고구마, 오이, 상추, 배추를 대상으로 탄소라벨링 도입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다행스럽다.
현재는 생산 단계에서 비료, 농약, 전기에너지 등에 의해 촉발되는 CO₂ 배출량을 작목별로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탄소라벨을 부착한 제품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얼마 만큼의 호응을 얻고 있을까.
한국환경산업 기술원(KEITI)의 탄소성적표지 인증심사원으로도 활동 중인 임 연구원은 "초기 단계인 만큼 아직까지 그 영향을 알 수 있는 사례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라며 "현 단계에서 탄소라벨링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더 많이 받는다는 계량화된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임 연구원은 "향후 생산자가 저탄소 식품을 부각하는 공격적 마케팅을 구사한다면 지금보다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농식품부는 탄소성적표지 제도의 일환으로 내년부터 '저탄소상품 인증'도 도입할 계획임을 천명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된 농축산물 제품을 정부가 인증해소비자들의 친환경 농식품 선택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현재는 이를 위해 인증 절차 등 세부적인 운영 방안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임 연구원은 "저탄소 제품이 소비자의 적극적 구매로 이어졌을 때 비로소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며 "저탄소 시장의 확산은 자연스레 저탄소 경제의 완성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지구를 생각하는 웰빙
그렇다면 지금 당장 녹색 식생활을 위해 가장 시급한 사안 은 무엇일까.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국가 차원의 정확한 LCI 데이터 구축이다. 그리고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는 우리 식단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시민 개개인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예로, 임 연구원은 외식 식단과 가정식 식단의 평균 CO₂ 배출량 비교 결과를 설명했다. 외식 식단으로는 프라이드치킨, 햄버거 세트, 쇠고기 등을 표본으로 삼았는데 이들은 1인분을 기준으로 각 각 2.11㎏CO₂e, 3.74㎏CO₂e, 7.72㎏CO₂e를 배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표본으로 삼은 일반 가정식 식단의 평균값인 1.19㎏CO₂e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임 연구원은 "외식의 음식물쓰레기 등에서 발생하는 CO₂ 양이 가정식보다 월등히 높다"며 "소비자의 의식은 물론이고 음식물쓰레기를 적게 배출하는 식당을 지정하는 등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외에 일반인이 생활 속에서 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는 유용한 팁도 있다. 여기서는 우선 식재료의 생산 단계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이 다른 단계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농산물의 재배 과정에 투입되는 비료, 농약과 그에 따른 배출물들로 인한 것이다.
이는 탄소량을 결정짓는 데 있어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가 조리 방법 등의 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임을 알려준다. 임 연구원은 "적정 섭취량에 맞게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되, 식재료의 단위 열량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따져 가급적 채소 위주로 섭취하는 게 좋다"며 "육류의 경우 쇠고기 보다는 닭고기나 돼지고기의 CO₂ 발생량이 적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 다"고 말했다.
채소류라 하더라도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한 시설 채소는 CO₂ 배출량이 높다. 앞서 언급한 오이, 토마토, 상추, 고추 등이 이에 속한다. 친환경농산물도 마찬가지다.
기계농으로 일궜다면 친환경농산물이라도 지구 환경에 적잖은 위해를 가할 수 있다. 화학비료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건강에는 이롭겠지만 말이다. 아울러 스마트 그린 푸드 사이트를 총괄하고 있는 농업 기술실용화재단 인증사업회가 제안한 실천 방법도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국내산 식품을 구매해 수입품의 운송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줄이기, 적당량의 음식물을 조리해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등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이것이 지구를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라거나 육류, 특히 쇠고기를 먹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품질이 좋지 않거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가정 경제에 타격이 올지라도 반드시 집 근처에서 파는 국산품만 구입하라는 것도 아니다. 전 국민의 식생활을 일일이 간섭하느니 대형 공장이나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CO₂를 포집해 제거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경우 우리가 먹는 모든 식품들의 생산, 유통, 조리 단계에서 적지 않은 CO₂가 배출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이의 개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각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CO₂를 줄일 국가적·사회적 노력들이 이어질 것이고 그와 관련한 신기술도 개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제 건강만 챙기는 웰빙 시대는 지났다. 자신의 건강과 더불어 지구 건강까지 생각하는 사회적 웰빙이 이 시대의 진짜 웰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