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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래콘밸리의 로봇자동차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우리의 애마가 더 빠르고, 똑똑하며, 완벽한 정보시스템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을 만나 미래 자동차의 모습을 예측해 보자.
By Josh Dean Illustration by Nick Kaloterakis

“핸들은 살짝 잡으세요. 조향감 정도만 느낀다는 생각으로 아주 살짝만요.” BMW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자동차 ‘트랙 트레이너 (Track Trainer)’의 운전석에 앉자 BMW의 엔지니어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주행 중에는 절대로 페달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제가 ‘정지!’라고 외치면 그때 핸들을 꽉 잡은 상태에서 힘껏 브레이크를 밟으세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출발 명령에 브레이크를 풀었다. 그러자 BMW 3시리즈 세단은 스스로 속도를 높이며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 카운티에 위치한 라구나 세카 서킷을 나아갔다. 직선 주로가 끝나면서 좌회전을 해야 할 때가 되자 핸들이 살짝 오른쪽으 로 돌아가는 듯하더니 이내 왼쪽으로 꺾이며 완벽한 선회를 했다. 지시 받은 대로 핸들을 살짝 잡고 있던 필자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핸들 때문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운전 실력이 뛰어난 투명인간이 무릎 위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트랙 트레이너가 라구나 세카 서킷의 최대 난코스인 일명 ‘코르크 따개(cork screw)’ 코스를 통과할 때는 이 차량의 자율주행 능력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우회전 직후 곧바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다 135m의 짧은 거리에서 고도가 5층 빌딩 높이만큼 낮아지는 무시무시한 코스였음에도 차량은 너무나도 가뿐히 통과했다.

주행을 마칠 때까지 필자는 아무런 불안감 없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몇 차례 움찔한 순간도 있었다. 선회를 앞두고 이때쯤이면 브레이크를 걸 것이라고 예상한 지점에서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은 탓이다. 트랙 트레이너의 제동은 평범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완벽한 지점에서 완벽한 타이밍으로 이뤄졌다. 종착점에 도착, 안전하게 하차한 뒤 필자는 방금 첨단 미래 자동차의 ‘맛배기’를 본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트랙 트레이너는 라구나 세카 서킷을 포함, 그 어떤 트랙도 프로그래밍을 통해 완벽히 자율주행할 수 있다. 게다가 최고속도를 안전한 수준으로 제한해 놓을 경우 동일 모델을 운전한 프로급 드라이버와 비교해 단 몇 초 차이로 목적지에 도착할 만큼 빠르고 정확하다.

현재 BMW는 이 차량을 운전자 교육용으로 사용 중이다. 필자가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트랙 트레이너를 통해 완벽한 운전이 어떤 것인지 체감하게 해주고는 잘못된 운전습관을 교정함으로써 교육효과를 높이고 있다.

트랙 트레이너의 자율주행 능력에는 BMW의 최신 ‘드라이버 어시스턴스 시스템(DAS)’도 한몫을 한다. DAS는 컴퓨터 제어식 조향장치, 제동장치, 동력장치와 실시간 연동되는 레이더 및 GPS 센서들로 이뤄져 있다. 이 덕분에 BMW 측이 ‘거의 완벽한 자율주행’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운전이 가능한 것이다.



콜택시? 콜 자가용!
닛산의 iV 콘셉트카처럼 자동차의 외관은 날로 날렵해지고 있다. 또한 그만큼 스마트해지고 있다. 이미 몇몇 자동차는 상업용 제트기보다도 많은 프로그램 코딩 작업이 필요할 정도다. 앞으로 조향, 가속, 제동 등의 시스템에 인공지능(AI) 기술의 적용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 엔지니어는 2030년이면 휴대폰으로 무인자율주행 차량을 호출, 목적지까지 타고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자동차가 전자화되면서 프로그램 코딩의 왕국인 실리콘밸리에 완성차메이커들이 몰려들고 있다.

메이드 인 실리콘밸리
자동차에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장착된 것은 1978년 캐딜락 세빌이 효시다. 세빌에는 주행거리 기록계에 하나의 칩을 사용했을 뿐이지만 이후 칩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 이제는 어떤 자동차든 50~200개의 프로세서가 들어있다. 프로세서와 각종 전자장치들을 위한 배선의 길이를 다 합치면 1.5 ㎞가 훌쩍 넘는다.

이런 추세는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GM의 플러그인 전기자동차 쉐보레 볼트는 프로그래밍 코드가 자그마치 1,000만 줄에 달한다. 보잉 787 항공기의 코드보다 200만 줄이나 많다.

유수의 완성차메이커들이 코딩의 왕국인 실리콘밸리에 몰려들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995년 메르세데스 벤츠를 시작으로 1998년 BMW와 폭스바겐, 2001년 도요타, 2007년 GM, 2010년 르노-닛산이 이곳에 기술센터를 열었다. 그리고 한때 구글, 애플,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혹은 꿈꿨던 무수한 디자이너와 개발자, 공학자들이 자동차의 지능화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쏟아 붓고 있다.

특히 테슬라모터스, 미션모터스, 구글 무인자동차 사업부 등이 이곳에서 이룬 결실들은 일견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들이 자동차의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무언가 혁신적인 수단을 동원해 개발한 신개념 컴퓨터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매우 빠르게 달리는 컴퓨터 말이다.

실리콘밸리는 생각보다 거대한 장소다. 차를 타고 한번 돌아보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필자가 렌트카를 빌려 여러 연구소를 방문하는 동안, 연구소들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가 조금씩 느껴졌다. 일례로 폭스바겐 전자연구소 (ERL)의 엔지니어들이 근무하는 건물은 데이터 관리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오라클의 본사와 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데이터 관리 분야는 자동차 회사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ERL의 부소장인 이추희 박사는 그렇지 않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 박사가 회의실에서 보여준 파워포인트 프레젠 테이션은 독일 뮌헨의 본사 중역들에게 ERL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일 때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데이터 통합이야말로 새로운 설계에 핵심적 작업이라는 게 여실히 확인됐다.

사실 오랫동안 자동차공학자들은 내비게이션, 스마트폰 어댑터, 차선탐지카메라 등의 데이터 기기들에 대해 섬세한 기능을 가진 ‘독립적’ 전자장치로만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각 기기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한편 차량 내의 온갖 센서와 프로세서에서 측정한 데이터들 통합하기 시작했다.

오라클의 엔지니어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데이터 통합이 가져다 줄 무한한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BMW가 그동안 이 같은 데이터 통합을 통해 트랙 트레이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로봇 자율주행 차량들을 설계, 다수의 로봇자동차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2005년의 경우 스탠포드대학 인공지능연구소와 공동으로 투아렉 SUV 모델을 자율주행차량으로 개조, 모하비 사막 227㎞ 구간을 무인주행하는 ‘그랜드챌린지’에 출전시켜 입상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 (DARPA)이 주최하는 그랜드챌린지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된 로봇자동차들의 각축장으로 꼽힌다. 또한 2007년에는 파사트 모델을 개조한 ERL 차량이 그랜드챌린지의 2회 대회 격으로 도심 장애물 코스를 주행하는 ‘어번 챌린지’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작년 10월 ERL에서 개조한 아우디 TTS 자율 주행 차량이 로키산맥의 한 부분인 파이크스산의 도로 20 ㎞를 최대시속 72㎞로 27분만에 완주했다. 급커브 구간이 156개나 있는 이 도로에서는 인간 운전자도 이 시간에 완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프로페셔널 운전자가 수립한 역대 최고 기록이 17분에 불과하다.



인터넷 접속 자동차
BMW의 엔지니어들은 휴대폰 네트워크를 통해 자동차를 스마트폰은 물론 클라우드 서비스의 데이터들과도 연결시키려 한다. 아우디의 아이다(AIDA) 시스템[아래 사진]은 자동차의 주변상황 정보를 웹에서 얻는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사용해 정보들을 정리한 뒤 운전자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골라 알려준다.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했던 자동차를 인터넷에 연결한다면 어떨까요. 발전 가능성이 무한해질 겁니다.”

도우미에서 자율 운전자로
설명을 듣던 필자는 이 박사에게 이들 자율주행자동차에 설치된 스마트 기기들의 정보가 일반 운전자에게 어떤 방식을 거쳐 전달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짧은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ERL 엔지니어들이 ‘아이다(AIDA, Affective Intelligent Driving Assistant)’라고 불리는 주행보조시스템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우리말로 ‘감성 지능형 주행 도우미’ 정도로 해석되는 아이다는 MIT 연구팀과 공동 개발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차량의 다양한 센서들이 보낸 정보가 중앙 인공지능 (AI)에 전달되는데 인공지능은 평상시 운전자의 주행습관과 행동양식을 관찰해 차량의 성능을 그에 맞춰준다. 운전자가 즐겨 다니는 도로와 자주 들르는 장소의 학습이 가능하며 중요한 일을 기억해 놓았다가 알려주기도 한다.

특히 기본적 인지가 끝나면 인공지능은 자신의 주인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학습한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신선한 과일을 사기 위해 언제쯤 어느 과일가게를 찾는지도 알게 된다.

이를 보면 인공지능의 발전이 자동차를 개인비서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해도 허언은 아닌 셈이다. 덧붙여 센서와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향상되고 관련기술이 혁신을 이룬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자동차의 운전을 인공지능 비서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박사는 이렇게 예상했다.

“이 아이디어는 인간과 기계 간의 상호관계를 바꿔놓을 거예요. 2030년경의 자동차는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휴대폰으로 ‘공항으로 와서 우리를 픽업해 가라’고 내린 명령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해질 겁니다.” 꿈같은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엔지니어들은 이미 이런 세상을 실현할 물리적 장벽의 대부분을 극복해냈다. 현재 대다수 하이엔드급 양산형 차량들에는 컴퓨터 프로세서가 주행 안정성 제어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조향, 제동, 가속 등의 제어에 관여하며 급커브나 빗길 운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들을 예방한다. 이들은 카메라, 레이더, 레이저, 적외선, 초음파 등 프로세서에 정보를 전달하는 센서들의 숫자를 시시각각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몇 년 내에는 도로 곳곳에 설치된 지상기지국을 활용해 위성신호의 부정확성을 교정, 차량의 위치가 불과 수 ㎝ 오차범위 내로 파악되는 ‘DGPS(Differential GPS)’도 등장할 것이다.

언젠가 자동차가 자신의 정확한 위치와 목적지가 어디인지 아는 것을 넘어 혼자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도 터득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현 기술발전 속도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완벽한 자율주행성능을 가진 트랙 트레이너들이 모든 가정의 차고에 주차돼 있을지 모른다.

물론 현재 도로를 주행 중인 자동차들의 학습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은 이의 개선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ERL의 롭 파사로 박사도 그중 한 사람. 그는 ERL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다시 말해 자동차업계의 IT 기술 활용도가 오디오시스템에 MP3 파일 재생능력을 부여한 것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실리콘밸리를 지켰다.



웹의 운전석 침투
올해 벤츠가 공개한 A-클래스 컨셉트카의 운전석에는 애플리케이션 실행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아이패드 크기의 콘솔이 채용돼 있다.

“머지 않아 운전자들은 온라인 채팅을 하듯 다른 운전자와 통신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스마트카와 스마트 신호등
먼지 한 점 없는 ERL의 한 차고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주 임무가 자동차를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으로 변모시키는 것 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자동차는 현대인들이 구입하는 물건 중 컴퓨터화가 가장 많이 이뤄진 존재다.

“문제는 휴대폰이나 노트북과 달리 자동차의 경우 업그레이드가 거의 불가능한 상품이라는 겁니다. 일단 구입한 뒤로는 처음과 전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차를 타고 다녀야 하죠. 그런데 만일 자동차를 인터넷에 연결한다면 어떨까 요. 발전 가능성이 무한해질 겁니다.” 파사로 박사는 ‘BMW 앱스’의 성능 시연을 위해 5 시리즈 세단의 중앙 콘솔에 위치한 받침대 속으로 아이폰을 밀어 넣었다. BMW 앱스는 올 3월 이후 출고되는 모든 BMW 차량에 탑재된 시스템으로 운전자가 BMW 전용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자동차와 인터넷 웹사이트를 연결해준다.

지금은 판도라, 페이스북 등의 회사들이 개발한 유명한 앱들을 차량에서의 이용을 위해 일부 수정해 제공하는 수준이지만 BMW 앱스의 진정한 가치는 앱의 종류에 있지 않다. 앱이 실행되는 위치에 있다. 이들 앱은 BMW가 개발한 특수 최적화 소프트웨어에 의해 아이폰이 아닌 대시보드의 디스플레이에서 시현된다.

자동차 회사들은 앱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아이폰이 그러했듯 미래의 누군가에 의해 분명히 자동차의 핵심 기능 전반, 심지어 연료분사 시스템이나 차선 탐지 시스템까지 건드릴 수 있는 차량용 앱이 개발될 것이다.

당연히 자율주행자동차는 인터넷하고만 소통해서 되는 게 아니다. 주변 환경 정보도 수집해야 한다.

파사로 박사는 시연을 끝내고 또 다른 엔지니어인 대런 리카르도 박사를 소개시켜 줬다. 그는 필자를 광활한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거의 텅 비어 있는 주차장에는 한 대의 5 시리즈 모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량의 트렁크 속을 보자 컴퓨터 하드웨어가 들어있었다. 리카르도 박사는 하드웨어를 가리키며 자율주행 기기들에게 인기 높은 오픈소스 운영체제 ‘로보틱스운영체제(ROS)’가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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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는 현재 청소로봇, 자율비행 헬리콥터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지만 ERL의 이 차량에서는 신호등의 신호에 맞춰 차량을 제어하는 역할에 활용된다.

필자와 함께 차에 탑승한 리카르도 박사는 운전석 아래에서 키보드를 꺼내 몇 가지 명령을 입력했다. 그러자 대시 보드의 스크린에 주차장 뒤편에 있는 신호등의 영상이 나타났다.

“이제 스마트 자동차가 스마트 신호등을 만나는 장면을 보시게 될 겁니다.” 차량을 출발시킨 리카르도 박사가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에 나타난 신호등은 적색등을 밝히고 있었고 스크린 한쪽에는 1초 단위로 시간이 카운트다운 되고 있었다.

“이 신호등은 무선 인터넷을 통해 차량과 연결돼 있어요.
타이머가 0이 되면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죠.” 적색등을 보고도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이 0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호등에 다다를 무렵 적색은 녹색이 됐고 우리는 일체의 속도 저하 없이 유유히 건널목을 통과했다.



무리 이동
세그웨이를 개량한 GM의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EN-V는 주변의 다른 EN-V들과 소통하며 무리를 지어 이동할 수 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먀오(Miao), 쟈오(Jiao), 샤오(Xiao).

교통사고 없는 세상
우리는 이런 광경을 얼마 안 있어 실제 생활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다만 ERL에서처럼 신호등 통과가 안전하게 이뤄지려면 차량은 신호등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차량들과도 상호 소통해야만 한다. 신호등을 지키지 않고 위험한 주행을 감행하는 일부 인간 운전자들 탓이다. 때문에 일부 엔지니어들은 주행을 제외한 차량의 출발과 정지를 컴퓨터에 전적으로 일임하는 시스템 도입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언제든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의 인간이라는 존재를 자동차의 주행에서 완전히 배재하고 도로 위의 모든 차량들이 완벽한 조율 하에 주행하는 세상. 인간성이 상실된 차가운 도시처럼 조금은 무섭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스템을 완벽히 믿고 핸들에서 손을 뗀다면 그 대가는 결코 적지 않다.

차량 간격은 불과 수 ㎝로 줄어들고, 신호등을 밀리초 (㎳) 단위로 지켜가며 신속 정확한 주행이 이뤄질 것이다. 그 만큼 교통 체증은 줄고 연비는 대폭 향상된다. 과속, 음주 운전, 졸음운전, 신호등 무시 등에 의한 교통사고들은 아예 자취를 감출 것이 자명하다.



누구 계세요?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운전석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예 사라져 버릴 것이다.

미 교통부(DOT)는 다양한 차량 간, 차량-인프라 간 상호소통시스템이 가져다 줄 잠재적 메리트를 연구 중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 차량이 다른 차량을 인식할 수 있다면 매년 벌어지는 미국 내 교통사고 580만건 과 3만7,000명의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또 교통 혼잡에 의해 낭비되는 42억 시간과 연간 106억 ℓ의 연료를 더욱 보람찬 일에 쓰게 되지 않을까.

명확한 답을 찾기 위해 DOT의 엔지니어들은 실리콘밸리 소재 자동차연구소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지능형교통시스템(ITS)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ITS는 1991년부터 주목받아 온 개념이지만 2009년 자동차의 인터넷 접속성 확보를 필수과제로 삼았다.

현재까지 그 결과는 불확실하다. 특히 DOT의 레이 라후드 장관은 자동차의 완전한 자율주행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다. 이 시기의 운전자들이 노출될 방대한 데이터들은 자율주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안전상의 이점은 거의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작년 라후드 장관은 주의태만 운전에 따른 교통사고 사망자수 증가를 ‘치명적 전염병’이라 칭한 바 있다.

실제로 2009년에만 주의태만 운전에 의한 교통사고 때문에 5,500여명이 숨졌다. 그런데 한 대학연구팀의 연구결과, 차량의 핸즈프리 시스템이 혈중 알코올 농도 0.08%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과 맞먹는 주의태만 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을 편하게 해주는 전자 기술도 예기치 않게 안전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인지 미국 내 34개 주정부와 컬럼비아 특별구의 의회는 현 재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2010 상하이 엑스포에 등장한 GM의 EN-V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배터리 완충 후 40㎞의 주행이 가능하며 최대 시속은 40㎞다.

운전자의 생각을 읽는다
자동차들이 운전자의 주의태만 유발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고 자율주행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열쇠는 실리콘밸리의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들이 쥐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우리가 완벽한 자율주행자동차의 좌석에 앉아 있게 된다면 주의태만을 일으켰던 데이터들은 오히려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여흥거리가 된다.

유럽에서는 이미 휴대폰 네트워크를 이용, 대시보드의 브라우저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벤츠 모델이 존재한 다. 주행 중 구글 맵스에 접속해 주변의 주유소나 편의점을 찾을 수 있으며 정차 중일 때는 페이스북 사용도 가능하다.

“웹(web)의 운전석 침투는 벌써 시작됐습니다. 오래지 않아 운전자들은 소셜 네트워킹 앱으로 마치 온라인 채팅을 하듯 다른 운전자와 통신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실리콘밸리 소재 벤츠 연구소 요한 융비르스 소장의 말 이다. 그는 이 다음 단계는 증강현실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헤드업디스플레이(HUD)처럼 차량 앞 유리에 각종 정보들이 시현될 것이며 이는 도로를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장으로 변모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제권이다. 차량의 핸들을 누가 잡을지의 문제 말이다. 실리콘밸리의 GM 진보기술 연구소(ATO) 바이런 쇼 소장은 이에 대해 “날이 갈수록 자동차들은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더 많이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ATO에서 자동차가 운전자의 의사를 인지하는 방법, 그리고 운전자가 자신의 의사를 적절히 표출하고 있는지를 차량이 인지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리고 말했다.

“염력으로 늪지에서 전투기를 끌어냈던 영화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를 기억하시죠? 앞으로는 누구나 생각만으로 자동차를 움직이는 날이 올 거예요.” 뜬금없는 염력 얘기에 당황한 필자는 그 말이 진심인지 되물었다.

“이미 뇌파로 조종하는 로봇이나 게임 컨트롤러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어요. 뇌파 조종 자동차가 개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을까요.” 아닌 게 아니라 올해 초 베를린자유대학 인공지능그룹의 학생들로 구성된 팀베를린(Team Berlin) 연구팀이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폭스바겐 파사트 왜건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모티브라는 기업이 개발한 ‘뇌 활동 맵핑’ 장치로 이를 구현했다.

이러한 두뇌 제어식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생각으로 차량을 제어하는 것, 그리고 차량이 운전자의 생각을 읽어 특정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그것이다.

“직장상사에게 질책을 받은 일이 떠올라 운전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해보죠. 자동차는 운전자의 상황을 파악해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조치들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BMW와 벤츠에서도 이와 유사한 발상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래의 자동차는 운전석 시트 속에 삽입된 생체측정센서로 운전자의 생체징후를 실시간 파악한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심장발작 등 비상상황이 일어나면 자동차는 스스로 도로를 빠져나와 119 등의 응급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갈수록 자동차들은 인간 운전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더 많이 제시할 것입니다.”

현명한 선택
바이런 소장은 작은 차고로 필자를 데리고 가더니 한 켠에 놓인 항공화물 운송용 대형 목재 상자들을 가리켰다.

“저 상자 속에 EN-V가 들어있습니다.” EN-V는 GM이 작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첫 선을 보인 계란 모양의 2인승 자율주행 전기자동차다. 2008년 GM의 연구개발 담당 부사장이었던 래리 번즈는 2018년경 자율주행 자동차가 자동차 업계의 주류가 될 것으로 예견한 바 있는데 EN-V는 바로 그 예언을 현실화하려는 시도의 결실이다.

이 차량은 자율주행에 더해 자동 주차, 충돌방지 기능이 있으며 다른 EN-V들과 실시간 소통하고 무리를 지어 이동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외형이 자동차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상해 보일수도 있지만 현 교통운송 시장의 트렌드를 감안할 경우 꽤 설득력 있는 설계이기도 하다.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이끄는 요인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차량의 전자화,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화석연료 고갈, 과학기술 발전, 세계화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죠. 개발도상국의 경우 평생 자동차를 소유해본 적도 없고, 소유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점에서 바이런 소장은 자동차의 소유방식이 휴대폰과 유사하게 바뀔지 모른다고 말했다. 차량 자체는 무료 혹은 아주 저가에 제공되고 사용자는 연료비, 유지관리비 등이 포함된 ‘요금제’에 가입해 월사용료를 내는 방식 말이다.

실리콘밸리는 한 세대 전, 컴퓨터 업계를 위해 했던 일을 자동차 업계에서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다. 제대로 다루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기계를,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평범한 사람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단순한 소비품으로 바꿔 놓는 일이 그것이다.

과거 IBM의 컴퓨터는 전화번호부를 보는 듯한 두터운 매뉴얼과 함께 판매됐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폰은 이렇다 할 사용설명서조차 없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운전자들은 보닛 아래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에 대해서는 서서히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그보다는 자동차로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어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지, 스스로 주차를 할 수 있는지를 구매결정의 중요한 자료로 삼는다.

혹여 자율주행 자동차와 관련해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혹시 우리가 자동차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는 것은 아닐까. 이토록 철저히 그들을 신뢰하고 핸들을 넘겨주는 것이 정말 현명한 일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실리콘밸리 마운틴뷰 지역의 101번 고속도로 출구에서 가장 확실히 찾을 수 있다. 바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구글의 사옥이 여기 위치한다. 구글에 의하면 이 회사의 자율주행 자동차 사업부가 개발한 7대의 로봇자동차(프리우스 6대, 아우디 TT 1대)는 지금껏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총연장 16만㎞에 달하는 완전한 수준의 자율 주행에 성공했다. 또한 지난 6월에는 네바다주 차량등록국이 자율주행 자동차의 운행을 허용하는 규정을 만들게 해 달라고 주의회를 설득하기도 했다.

자율주행 자동차 사업부의 책임자인 세바스찬 쓰런 박사의 말이다.

“로봇은 사람보다 뛰어난 운전자예요. 로봇자동차라면 전 세계에서 매년 120만건이나 발생하는 치명적인 교통사고들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인간이 자동차의 제어권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자율주행을 하면서 일어난 사고는 단 1건밖에 없어요. 그것도 우리 차량의 잘못은 전혀 없었죠. 신호등 앞에 서있던 프리우스 로봇자동차를 사람이 운전하던 차량이 추돌했거든요.”



구글의 자율주행자동차 연구팀. 작년 9월경 공동연구를 진행했던 카네기멜론대학 로봇공학 연구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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