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여파로 군 수뇌부 16명이 직을 잃거나 수사 대상이 됐다.
국방부는 12일 계엄사령관으로 활동한 박안수(육군 대장) 육군참모총장에 대해 직무를 정지시켰다. 이에 군 장성을 상징하는 별 17개의 빛이 바랬다. 이들은 대북 대비태세 핵심 지휘관들이다.
국방부는 계엄령 관련된 군 장성들을 줄줄이 직무 배제 조치하고 있다. 앞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등 육군 중장 3명의 직무가 정지됐다. 정성우(육군 준장 진급 예정자) 방첩사 1처장과 김대우(해군 준장) 방첩사 수사단장, 문상호(육군 소장) 정보사령관도 차례로 직무 정지됐다.
여기에 병력을 출동시킨 것으로 확인된 특전사 예하 이상현 제1공수여단장, 김정근 제3공수여단장, 안무성 제9공수여단장(이상 준장)과 김현태 707특임단장, 김세운 특수작전항공단장, 수방사 예하 김창학 군사경찰단장(이상 대령)은 출국금지 조처돼 정상적 직무 수행 상태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직무정지는 아니지만, 계엄부사령부관을 맡았던 정진팔(육군 중장) 합참차장은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수방사 예하 박진우(육군 중령) 35특임대대장은 수사 대상이다.
이들을 통솔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 임무 종사 등 혐의로 구속됐다. 김 전 장관 후임으로 예비역 육군 대장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위한 절차 진행이 요원해 후속 인사가 언제 이뤄질지는 가늠조차 어렵다. 현재 국방부 장관직은 지난 5일부터 김선호 차관이 대리하고 있다.
‘별 17개’ 軍수뇌부 줄줄이 직무정지
비상계엄에 동원됐던 군의 주요 직위자들이 줄줄이 직무에서 배제되고 수사선상에 오르는 상황에서 본연의 임무인 대북 대비 태세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게다가 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적 국정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군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려를 더욱 키운다.
국군통수권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해 직무가 정지되면 총리가 권한대행으로 이런 대통령 고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폐기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지 않았고 대통령 고유 권한도 여전히 윤 대통령이 갖고 있다. 정치적으로 무력화된 윤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군 통수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김선호 차관은 지난 9일 “군 통수권자라도 이번처럼 국민 앞에 무력을 쓰도록 하는 지시는 제가 수용하지 않겠다”며 2차 계엄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동시에 “적에 의한 안보상 심대한 위협이 발생한다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도 밝혔다.
군 안팎에서는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북한의 도발 등 안보 위협에 우리 군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육군참모차장 출신인 여운태 원광대 석좌교수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은 불안정하고 장관 없이 차관이 대리 근무는 상황이 걱정스럽다”며 “유사시 지휘 계통에 따라 군령이 제대로 발휘될지 의심스럽다”라고 했다.
합참 지하시설 등 군사기밀 모두 노출
문제의 심각성은 군 기밀 시설과 정보 자산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계엄에 연루된 장성들이 자기 변호를 위해 군 기밀을 마구잡이로 노출하는 행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가 비상계엄과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군사기밀과 보안사항이 공개되는 촌극이 일어났다. 특히 국회의원과 군 장성 간 질의·응답에서 합동참모본부 내부 기밀시설의 구조와 첩보기관 요원의 실명(實名) 등이 거론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 됐다는 점이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의원은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 선포를 전후해 합동참모본부 결심지원실(결심실)과 지휘통제실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다.
박 의원은 ‘결심실에서 계엄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느냐’는 취지로 물었고, 박 육군참모총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뒤인 오전 1시 30~40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결심실을 찾았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간단한 현안 보고가 있은 뒤 결심실 내에 장시간 침묵이 이어졌다고 답했다.
그러자 박 의원이 “그 전에 계엄사령관과 장관은 어디에 있었나”라고 물었고, 박 육군참모총장은 손짓과 함께 “장관은 전투통제실에 계셨다”라면서 합참 내부 구조에 대해 얘기했다. 박 박 육군참모총장은 이후 ‘추가 설명’을 하겠다면서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발언 기회를 달라고 했다. 박 박 육군참모총장은 “지휘 통제하는 곳의 위치에 대한 개념을 설명드리고 싶다”며 지휘통제실과 전투통제실의 구체적 위치를 재차 언급했다.
그러자 성일종 위원장은 “층수 등을 이야기 해도 되는 것이냐. 보안사항에 걸리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김 차관이 "총장이 중요한 전투시설 개념을 얘기하고 있다. 끊어 달라"고 제지를 요청하는 일이 있었다.
그나마 합참 주요 지휘관 계엄 관련성 없어
야당 의원들이 계속해 질타를 하며 계엄군 투입 의혹이 있는 정보사령부 요원들의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이진우 수방사령관이 발언 기회를 자청해 “정보요원들은 중요한 자산인데 이름을 대면 큰일 난다. 시설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라고 자제를 요청했다.
심지어 특전사 김현태 707특임단장 등 신원과 얼굴이 기밀 사항인 군인들이 생방송 카메라 앞에 선 것 역시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야기한 대비 태세 약화의 대표적 사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계엄 사태에서 실제 군사 작전을 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가 비켜나 있다는 것이다.
합참은 김명수 의장이 김 전 장관에 의해 계엄에서 이른바 ‘패싱’ 당한 주요 관계관들이 계엄과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 차관은 지난 6일 “병력 이동은 합참의장 승인 시에만 가능하다”는 점을 지시해 12·3일 계엄 사태와 같이 합참에 보고되지 않은 병력 이동이 없도록 조치했다.
軍지휘부 마비로 한미 연합 태세 흔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군 자체 훈련은 물론 한미 연합 훈련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3월 정례 한미 연합 훈련인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나 한·미·일 3국 연합 훈련인 ‘프리덤 에지’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은 계엄 선포 직후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 연습을 개최 하루 전날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우리 군 자체적으로는 여단급 이상 대규모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계엄 선포 이후 병력 이동으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훈련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계엄으로 외교적 불신이 유사시 안보 불안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는 최근 국민의힘 고위 인사를 만나 유사시 한국군 통수권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버그 대사는 계엄 당일인 3일 밤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조 장관이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조 장관은 “잘못된 정세 판단과 상황 판단으로 미국을 미스리드(mislead·잘못 이끎)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동맹국인 미국조차 의심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의 안보 협력은 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