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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유령 폴터가이스트

The amazing story of Poltergeist

어느 날 혼자 집에서 뒹굴던 당신은 어떤 특별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거실 바닥의 육중한 소파가 허공을 훨훨 날아다닌다거나 부엌의 도마와 식칼이 얼굴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은 황당한 일 말이다.

이런 괴현상을 전문용어로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라 한다. 마치 만화 속에서나 일어날법한 일이지만 생각 외로 세계 곳곳에서 실제 사례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바로 오늘, 아니면 내일 당신도 사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폴터가이스트는 독일어로 ‘야단법석을 피우는 장난꾸러기 유령’이란 뜻을 갖고 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현상, 의자나 침대 같은 물체가 움직이거나 파괴 되는 현상, 괴상한 소음과 악취가 나는 등의 초자연적 현상이 폴터가이스트에 속한다.

폴터가이스트가 정확히 언제 생겨난 개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와 같은 의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대체로 유령 혹은 귀신과 동일시되고 있다. 망자의 혼령, 특히 원한을 지닌 악령의 소행이라는 해석이다.

때문에 폴터가이스트는 공포영화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30여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폴터가이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평범한 가정에서 언제부턴가 물건들 이 저절로 움직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가족들은 공포에 휩싸이지만 누구도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스토리다. 단지 영화 말미에 집터가 한때 공동묘지였다는 사실만 밝혀질 뿐이다.

최근 3편이 개봉한 ‘파라노말 엑티비티’ 역시 폴터가이스트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잠든 주인공이 갑자기 끌려 나가거나 일없이 유리창이 흔들리고 전구가 파열되는 등 영화 속 ‘보이지 않는 유령’의 장난은 오랫동안 이어진다.

이런 식의 스토리는 지난 몇십년간 무수히 많은 공포물에서 반복돼 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별반 신선한 재미를 주지 못한다. 물론 스필버그의 '폴터가이스트'는 내용의 신선도와는 상관 없이 각 시리즈 때마다 배우나 스태프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해 ‘저주 받은 영화’로 악명을 떨치며 오랫동안 영화 팬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영화 속 폴터가이스트는 재탕, 삼탕을 넘어 더 이상 맛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시시한 소재가 됐다. 그러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실제로 당신을 공격한다면? 그때도 그저 콧방귀나 뀌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길 수 있을까.

폴터가이스트는 오늘날 대체로 유령 혹은 귀신과 동일시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
폴터가이스트가 진짜 귀신이나 유령에 의한 현상인지는 알 수 없지 만 지금껏 보고된 사례에 따르면 주로 흉가나 공동묘지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폐가’에 얽힌 사건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귀신 들린 집으로 유명한 폐가에서 벌어진 기묘한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촬영장소로 택한 경기도의 폐가에서 실제 몇 가지 이상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촬영 현장에서는 폴터가이스트로 의심되는 현상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세팅해 놓은 소품 위치가 멋대로 바뀌어 있거나 의도치 않게 카메라가 온·오프되는 등의 일들이 그것이다. 나중에 편집을 통해 오작동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확인해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화면에 잡음만 심하게 잡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촬영 도중 몇몇 배우는 귀신으로 추정되는, 흰 블라우스를 입은 낯선 여인을 목격했으며 스태프들은 귀청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영화 폴터가이스트와 유사하게 감독, 스태프, 배우 할 것 없이 영화에 참여한 이들이 이유 없이 아프거나 다치는 일도 잇따랐다. 이 같은 일련의 악 재가 계속되자 제작진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위령제를 감행해야 했다.

최근 영화배우 최민수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느 폐가에서의 미스터리한 경험을 직접 털어놓기도 했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산 속 낡은 폐가를 고쳐 지냈다는 그는 그곳에서 귀신, 도깨비 등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또 전원을 꺼놓은 라디오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긴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졌으며 전등이 갑자기 켜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영락 없는 폴터가이스트다.

폴터가이스트는 단지 몇몇 특별한 사람이 겪는 경험은 아니다. 비슷한 일에 대한 경험담은 인터넷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폴터가이스트를 직접 촬영했다는 일반 네티즌들의 동영상도 꽤 많이 떠돌아다닌다.

7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리얼 폴터가이스트’라는 동영상은 집안의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모습이 촬영돼 있다. 마치 투명한 유령이 주방의 식기나 거실 가구들을 부수며 집안 곳곳을 헤집는 듯한 영상이다. 촬영자는 자신이 없는 시간을 틈타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의심해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원을 꺼놓은 라디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긴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졌으며 전등이 갑자기 켜지기도 했다.



폴터가이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 ‘파라노말 엑티비티’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령의 장난이 계속된다.

유령 아닌 사람이 범인?
많은 이들이 경험한 폴터가이스트가 실재하는 현상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착각이나 장난에 의해 조작된 해프닝 인지는 단정키 어렵다. 또 실재하는 현상이라 해도 귀신과 유령 같은 영적 존재에 의한 것인지는 더욱 불분명하다.

과학 혁명기인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각에서는 폴터가이스트가 살아있는 인간에 의해 유발된 현상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범인은 바로 사람의 염력(念力)이라는 것이다.

초심리학의 노른자위로 불리는 염력은 어떤 물질적 매개 없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특정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사념을 집중하면 물질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부연하는 가장 흔한 근거가 일명 '주사위 통계'다. 주사위를 던지기 전 목표 숫자를 정해놓으면 그 숫자가 나올 확률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보다 통계학적으로 높다는 것.


이처럼 폴터가이스트의 근원이 염력이라는 데 동의하는 대다수 초심리학자들은 특정 인물이 나타나면 이상현상이 일어났다가 그 사람이 사라지면 사건도 끝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문제의 인물이 옮긴 새로운 장소에서는 다시 폴터가이스트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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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심령현상에 몰두한 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 낸더 포더는 1930년대 심리 기능장애 이론 (psychological dysfunction theory)으로 폴터가이스트를 설명했다. 포더에 따르면 폴터가이스트는 인간 내면의 극심한 분노나 적개심에 의해 일어난다.

이후 포더의 이론을 지지한 미국의 심령연구가 윌리엄 롤은 심리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재현 자발 염력(recurrent spontaneous psychokinesis)이 폴터가이스트의 주범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10대 청소년들, 특히 여성 청소년이 반항심, 적개심을 표현할 때 염력이 발휘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것이 100여건이 넘는 각국의 폴터가이스트 사례를 일일이 연구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염력을 그저 초자연적 현상, 다시 말해 현실 불가능한 일로 여기자 과학계의 일부 소장파 학자들은 염력을 생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생물학자인 메인 코라가 대표적 인물. 그는 사람이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면 ‘생체전기 (bio-electricity)’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염력의 근원이 생체전기라고 주장 했다.



영화 ‘화이트 노이즈’ 속 주인공은 전자 음성 현상(EVP)을 경험한 후 유령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체내의 생체전기
생체전기는 사람을 비롯한 전 생물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전현상으로 매우 고전적인 개념이다. 생물의 여러 조직과 기관에서 나타나지만 가장 밀접한 곳은 신경세포와 근육세포다.

신경이나 근육의 정지 전위(resting potential) 및 활동 전위(action potential)는 생체의 활동 지표로 이용되기도 하는데 대표적 예로 대뇌피질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인 뇌파는 뇌의 기능적 변화를 감지, 특정 질병을 찾아내는 데 쓰인다.

신경이나 근육 이외에 피부 점막, 안구 망막 등 상피조직에서도 전위는 나타난다. 상피조직 세포는 내·외부 막의 성질이 서로 다르지만 세포막에서 영양을 선택적으로 흡수·배출하는 능동 수송(active transport)이 이뤄진다. 여기서 바로 전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신경·근육 등의 흥분성 세포가 전혀 동작하지 않을 때의 정지 전위는 음(-) 전위 60~90밀리볼트(㎷, 1V=1000 ㎷), 흥분할 때의 활동전위는 양(+) 전위 30〜40㎷가 생성된다. 겨울철 카펫 위를 걸을 때 발생하는 정전기가 1,000V~3만5,000V 정도라는 점에서 생체 전기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가 체내의 생체 전기를 전혀 감지하 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혹여 생체 전기가 인체자연발화(SHC)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했다면 괜한 기우다. 여러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생체 전기의 방전 형태로는 체내에서 불꽃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한다. 단지 10만명 중 1명꼴로 피부가 유난히 건조한 사람들의 경우 체내에서 무려 3만V의 전기를 생성한다는 가설도 있지만 실례는 아직 찾을 수 없다.

물론 별도의 발전기관을 지녀 강력한 전기를 발생시키는 어류, 즉 발전어 (electric fishes)의 전위는 수백~수천 V에 달하기도 한다. 감전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수준이며 지구상에는 전기 가오리, 전기 메기, 전기 뱀장어 등 50여종의 발전어가 살고 있다. 덧붙여 전위는 동물 뿐 아니라 신경초로 잘 알려진 미모사 같은 식물에서도 관찰된다.

그렇다면 생체전기는 어떻게 염력, 즉 사물을 움직이는 물리적 힘으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는 물체의 고유주파수(natural frequency)와 유관한 듯 하다.

각 물체는 형태, 탄성, 밀도 등에 의해 각기 다른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는 데 외부에서 동일한 주파수가 가해지면 형태 등이 변한다. 고음으로 노래할 때 유리잔이 흔들리거나 깨지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유리의 고유주파수와 목소리의 주파수가 일치, 공명(공진)을 일으킨 결과다.

혹자는 정신을 고도로 집중할 때 발생하는 생체전기가 폴터가이스트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테슬라와 에디슨
다시 코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생체전기로 염력이 일어난다고 믿었던 그는 갖가지 실험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체내 생체전기를 이용해 공중에 매달아 둔 상자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동 거리가 최대 2.5m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코라는 수행자가 앉은 자세로 공중으로 떠오르는 공중부양도 생체전기 덕분이라 기록했다. 공중부양은 인체를 양 전위로, 지면을 음 전위로 대전시켜 상호 반발력에 의해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분석이다.

코라 뿐만 아니라 ‘전기의 마술사’로 불리는 비운의 천재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 역시 생체전기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인체가 램프에 불을 켤 수 있을 정도의 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믿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테슬라는 ‘정신 증폭기’라는 아주 특별한 기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는 정신을 고도로 집중시켜 염력을 일으키는 기기였다. 까다롭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테슬라가 어느 날 뉴욕 시내의 맘에 안 드는 식당 앞에서 그 기기를 작동시켜 식당의 유리창을 모조리 부숴버렸다는 확인키 어려운 일화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신증폭기는 25개국에서 272개의 특허를 획득한 테슬라에게도 무리였던 모양이다.

사용자의 의도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정확성이 떨어져 자체 폐기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테슬라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정황상 폴터가이스트 혹은 염력을 유령의 행각으로 믿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는 1920년대 ‘유령 탐지기’를 개발, 미국의 대중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여기에 소개된 유령 탐지기는 보통의 청각으로 들을 수 없는 음성을 전자장치로 녹음하는 전자 음성 현상(Electronic Voice Phenomenon, EVP)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 ‘화이트 노이즈’에서처럼 유령의 소리를 음향장치에 녹음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이 기기 역시 결국에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폴터가이스트의 실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연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다. 유령의 소행인지, 사람의 염력에 의한 현상인지 지금 당장은 뭐하나 딱 부러지는 결과가 도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다른 초자연적 현상들과 함께 실체가 밝혀질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테슬라의 정신 증폭기나 에디슨의 유령 탐지기가 상용화돼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세기의 잇 아이템으로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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