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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입니다! 과학의 눈으로 본 수면과 건강

SLEEPYHEAD SCIENCE

잠을 시간 낭비쯤으로 생각하나?

그래서 최대한 잠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생산적인 일에 투자하고 싶은가?


하지만 잠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 유지에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수면은 분명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시간 낭비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고 한다. 100세까지 장수를 했다면 33년은 잠에 빠져 보낸다는 얘기다. 이처럼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수면 행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미진한 편이다. 또한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든 잠을 줄이고 그 시간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자 한다. 잠이 많으면 게으름뱅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적게 자면 부지런하다며 치켜세운다. 고3 수험생의 경우 하루 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낙방이라는 '4당5락'을 넘어 '3당4락'의 생활을 자의반 타의반 종용받기도 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 인간의 수면 주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한 이래 현대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선조들 보다 1시간 30분이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에는 인위적으로 잠을 쫓는 약물까지 등장했다. 커피 같은 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것은 고전 중의 고전. 얼마 전 중국에서는 군인들을 위해 '쏙독새'라는 각성제가 개발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인민해 방군 산하 군사과학의학원이 개발한 이 약은 한 알만 먹어도 무려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고 한다.

1분 1초가 아쉬운 시험기간이나 짧은 시간에 완벽한 보고서를 제출해야할 때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수면은 식사, 배변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활동이다. 인위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가 그렇 듯 잠을 억지로 통제하는 것은 자연적이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왜 잠을 잘까?
원초적이지만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인간과 동물들이 왜 잠을 자는지는 과학자들도 아직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몇 가지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태다.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엔젤레스캠퍼스(UCLA)의 수면 연구센터 제롬 시겔 소장은 수면이 인간과 동물의 활동 시간 및 시기를 조절,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면 중에는 적의 공격에 취약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동물이 어떠한 형태로든 수면을 취하는 것은 수면 중에 기상 후 생명유지 활동에 필요한 생리학적 또는 신경학적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에너지 활용성에 있어서도 수면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 모든 유기체는 깨어있을 때보다 잠을 자고 있을 때 에너지 소모가 적다.

만일 수면을 취하지 않는 동물이 있다면 활동을 위해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고 이의 섭취를 위해 바쁘게 돌아다녀야 한다. 무척이나 피곤한 삶이 될 것임은 물론 항상 먹이를 구한다는 보장이 없는 야생에서는 생존성이 떨어질 개연성도 있다.

곰, 뱀, 개구리 등이 겨울잠을 자는 것도 먹이부족 때문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 는 주장이다. 대사작용이 활발해 에너지 소모가 많은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많은 잠을 자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은 신체의 복구다. 수면은 상처 치료와 면역력 향상에 분명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면 부족 상태의 쥐는 환부 치유력이 감소하고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20%다 낮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면은 기억의 처리와 저장에도 도움을 준다. 2007년 샌디에이고주립대 연구 팀이 여성 18명과 남성 22명에게 4일간 하루 26분만 잠을 재우고 기억력을 측정했더니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의 기간이 정상적 수면을 취한 대조군보다 평균 38%나 떨어 진 것.

수면과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잠에 깊이 빠져있어도 필요할 때는 깨어난다는 점이다. 천둥이나 번개에도 아랑곳 않고 잠을 자던 여성이 아이가 새벽에 보채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뇌와 감각기관이 수면 중에도 외부신호를 처리하며 꼭 필요한 경우 깨어나라는 지시를 보낸다는 증거다.

결국 수면은 컴퓨터의 절전모드 기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잠이 들까?
인간의 수면은 상당부분 생체시계라 불리는 '일주기 시계'에 의해 좌우된다. 이 시계는 수면을 포함한 각종 생리현상의 타이밍을 조절하며 우리가 시간의 개념을 알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종의 본능적 시간 개념에 해당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주기는 하루 24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일주기 시계는 아데노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연동되는데 이 물질은 깨어 있을 때 일어나는 인체 내의 작용 중 상당 부분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주간에 아데노신이 계속 생성되면서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졸음이 오게 된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주행성 동물의 경우 졸음이 오면 멜라토닌 호르몬이 분비되면 서 인체의 온도가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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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는 시기는 개인의 수면시간 유형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수면시간유형을 조절해 적절한 시기에 잠을 자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은 일주기 시계의 무브먼트라고 할 수 있는 일주기 리듬이다.

인간은 또 적절한 수면을 취한 지 일정 시간이 지나야 수면 욕구를 느끼는 항상성 수면 경향을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일정 시간'은 수면 시간 중 만족스럽게 잔 시간과 비례한다. 만족스런 수면 시간이 길면 기상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졸음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상 후 오래지 않아 졸음이 온다.

바로 이러한 항상성 수면과 일주기 시계의 수면 지시에 따라 인체는 졸음과 수면 욕구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인체에 기상을 지시하는 것 역시 일주기 리듬의 역할이다. 늘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사람은 설령 하루쯤 늦잠을 자더라도 기상 시간이 크게 늦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정 수면시간은?
일단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3시간 수면법'은 머릿속에서 지우자. 평범한 사람이라면 수면량이 적은 노인들조차 그 정도 시간으로는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과학적 연구에 따른 연령별 적정 수면시간은 신생아의 경우 대략 18시간, 생후 1~12개월은 14~1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만 1~3세는 12~15시간, 3~5세는 11~13시간, 5~12세는 9~10시간, 청소년은 9~10시간이다. 그리고 노인을 포함한 성인들은 7~8시간은 수면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수면시간에 더해 수면의 타이밍도 수면 품질과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잠을 자야할 때 자야만 제대로 수면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적정 수면 시점은 다름 아닌 일주기 리듬상 장(臟)의 움직임이 억제되는 시기부터 체온이 최저로 내려갈 때까지 6시간이다.

만일 이때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과 워릭대학 공동연구팀의 연구 결과, 수면 부족은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두 배나 높이는 것으로 나타난 것. 또한 수면이 부족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체중 증가,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등의 질병 발생율과 이들 질병에 의한 사망률도 높았다. 결국 적정 수면시간보다 적게 잔다면 건강에 악영향이 초래될 개연성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잠을 많이 잘수록 잠이 늘어난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적어도 정상적인 일주기 리듬을 가진 사람이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왜냐면 일주기 시계는 인간을 잠들게 할 뿐 아니라 충분한 수면을 취한 인간을 각성시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잠이 느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경우는 정말로 충분하고 품질 높은 수면을 취하고 있는지를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현대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전근대인보다 1시간 30분이나 단축됐으며 그 원인은 현대문명이 주는 각종 자극 때문이다. 전구, TV 화면 등 인공광선을 비롯해 카페인과 같은 각성제, 주변 소음, 야근, 야학 등이 그것이다.

즉 이 같은 자극이 사라지면 인체는 기능 유지에 필요한 수면시간 회복을 위해 더 오래 잠을 자도록 할 수 있다. 덧붙여 각종 자극에 의해 일주기 시계가 망가지면 잠을 제대로 잤더라도 각성 능력이 떨어져 잠꾸러기로 전락할 수 있다.



카페인과 같은 각성물질의 남용은 수면을 일으키는 일주기 시계를 교란시킬 뿐 아니라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각성제는 건강에 좋을까?
중국의 쏙독새 외에도 지금껏 군용 목적으로 개발된 각성제들은 다수 존재한다. 일본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메타암페타민 계열의 마약인 필로폰을 각성제로 사용한 바 있으며 현재는 모다피닐(modafinil)계 각성제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이들 각성제는 대뇌피질과 중추신경계를 자극·흥분시키고 졸음과 피로감을 무력화시키며 행복감을 증대시키는 작용을 한다. 하지만 각성제는 군용이나 의료용, 그것도 특수한 경우에만 처방될 뿐 일반 약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다. 바로 여기서 각성제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

각성제는 장기 복용하면 득보다 실이 많은 약품이라는 사실이다.

장기간의 수면 부족에 따른 몸의 이상은 차치하고라도 단기적으로도 인체는 수면 부족 시 어떻게든 그것을 보충하려 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3일 밤을 새웠다면 시험 후 하루 종일 잠에 빠지는 것처럼 각성제의 효과가 사라지면 과수면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또 각성제는 부작용도 있다. 다른 대다수 약과 다를 바 없이 장기간 투여했을 때는 표준 투여량으로는 효과를 얻지 못해 과다복용의 소지가 있다. 이 경우 정신이상, 흉통, 고혈압 등의 부작용이 초래된다. 만성 투약자가 복용을 중단했을 때도 불안, 우울, 흥분, 피로, 과수면, 식용 증대, 인내심 저하, 자살충동, 정신장애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잘 정돈되어 수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침실 분위기를 만들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제대로 잠을 자려면?
결과적으로 말해 잠을 줄이는 것보다는, 그리고 잠을 무조건 많이 자는 것보다는 제대로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이를 위해 일단은 깨어있는 시간 동안 제대로 생활해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를 함으로써 인체의 일주기 시계를 정확하게 조절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30분 정도의 유산소 운동을 주 3회 이상 하면 좋으며 식사는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고 지방 섭취는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덧붙여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일주기 리듬 설정에 도움이 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몸을 이완시키는 활동이어야 한다. 샤워, 근육 이완 운동, 횡격막 호흡, 명상, 이미지 트레이닝과 같은 활동 말이다. 반대로 청소나 컴퓨터 게임 등 뇌를 자극하거나 집중력 및 각성을 요하는 활동은 금물이다.

침실 정돈과 자신에게 맞는 침구 마련 등의 주변환경도 수면 품질 제고에 중요한 요인이다. 인간은 주행성 동물인 탓에 빛과 소리에 의해 각성을 일으키기 때문에 침실은 너무 밝거나 시끄러워서는 안 된다. 너무 덥거나 환기가 안 되는 곳도 별로 좋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시계 역시 각성작용을 유도하므로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편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침대 위에서는 수면 외에 다른 것을 해서는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침대 위에 일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일을 하다가 잠을 자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각성을 유도,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잘 자기 위해서는 숙면을 방해하는 식품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술이나 담배는 당연하고 과식을 하거나 지방질, 향료가 다량 함유된 음식도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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