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LG 전자가 부활하려면...] "스마트폰 1차 대전 패배 소프트웨어 강화로 만회해야"

카이스트 김진형 교수가 말하는 LG전자의 미래전략

LG전자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기업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안승권 기술담당책임자(CTO)가 실질적인 지휘권을 잡았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실력자로 통하는 카이스트 김진형 교수(62)는 LG전자의 새로운 미래전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LG전자는 다시 한번 삼성전자를 뒤쫓아야 했다. 지난 10월 말 LG전자 구본준 부회장은 소프트웨어 명장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연말까지 명장 70명을 배출한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이른바 LG전자가 구상한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육성 전략이다. LG전자의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는 생산제품의 소프트웨어 구조를 모두 이해하고 설계를 주도할 수 있는 최고실력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소프트웨어 강화를 시도한 건 삼성전자가 한발 빨랐다. 지난 7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소프트 기술과 1등 S급 인재, 특허를 3대 미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소프트웨어의 파워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주문이었다.

애플과 구글의 선전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애플과 특허권을 놓고 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게다가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합병한 사건이 전자통신 업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었다.모두 소프트웨어의 경쟁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젠 확연하게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드웨어 기업을 앞서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3대 미래 비전이나 LG전자의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제도는 추격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LG전자는 추격자 가운데서도 가장 뒤처져 있었다.

LG전자에겐 실력과 경험을 갖춘 조력자가 필요했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는 LG전자의 자문 전문가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부터 소프트웨어의중요성을 국내에 전파해 왔다. 일부에선 그를 '소프트웨어 업계의 대부'라고 부를 정도다. 현재 김진형 교수는 LG전자가 지난 10월에 구축한 '1등 소프트웨어 위원회'에서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안승권 CTO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1등 소프트웨어 위원회는 LG전자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제고하는 새로운 싱크 탱크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소프트웨어대학원에서 만난 김진형 교수는 말했다.

"최근에 만나 본 LG전자 경영진의 마인드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소프트웨어와 R&D에 진정으로 주력하려는 모습이 느껴졌어요. 확실히 LG전자가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임 CEO였던 남용 부회장은 마케팅과 세일즈를 중심으로 LG전자를 이끌어왔다. 바로 이러한 전략이 스마트폰 글로벌 경쟁에서 LG전자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진형 교수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말한다. "남용 부회장이 이끌던 LG전자에선 CTO가 백우현 사장이었습니다. 백 사장하고 저는 고등학교 동기생으로 친분이 있었죠. LG전자의 소프트웨어 정책이 어떻게 변할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백 사장은 소프트웨어 육성에 대한 마인드가 좀 부족해 보였어요. 기업경영에서 소프트웨어나 R&D의 중요성이 강조하려면 무엇보다 CTO의 목소리가 중요한데도 말이죠."

백우현 사장은 디지털TV 분야에서 세계 최고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이다. 지난 1990년 디지털 HD TV의 완전 규격을 제시해 디지털TV 탄생의 길을 열기도 했다. 미국 최대 일간지 USA투데이가 그를 '디지털TV의 아버지'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백 사장이 순수하게 기술을 중시했던 시기에 이루었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LG전자의 CTO가 된 이후에는 조금씩 영업과 마케팅에 신경을 써왔다. 김 교수는 말한다.

"경쟁력 있는 제품과 원가절감 등이 강조되면서 CTO들이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직접 현장지휘에까지 나서게 됐습니다. LG전자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실제로 백우현 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단 기술을 개발하면 100만 개 이상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기술자도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진형 교수는 지금의 안승권 CTO에 대해선 강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안승권 CTO를 두고 "대기업 CTO 중에서 소프트웨어에 관한 이야기가 통하는 몇 안 되는 경영인"이라고 표현했다. 안승권 CTO는 2007년 12월부터 MC사업본부 사장을 맡아 오다 구본준 부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10월 CTO로 중용됐다. 무엇보다 그에겐 온탕과 냉탕을 오갔던 LG전자 휴대폰 사업의 중심에 서 봤던 경험이 있다. 그는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벌어지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진영 간의 숨 가쁜 싸움에서 LG전자의 미래 기술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LG전자의 5년 뒤 모습이 안승권 CTO에게 달렸다는 의미다.

하지만 김진형 교수는 LG전자가 모바일 부문에 기업의 모든 체력을 쏟아붓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김진형 교수는 단언했다. "스마트폰 1차 대전에서 LG전자는 완패했습니다. 다시 패권을 잡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패배였죠.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휴대폰 시장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파전으로 갈 겁니다. LG전자가 이제서야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을육성하고 자금을 몰아주고 있지만 효과가 별로 없는 처방입니다."

김 교수는 아이폰4를 예로 들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근본적인 경쟁 원리를 설명했다. "아이폰4의 하드웨어 가격은 개당 178달러입니다. 그런데 완제품 판매가격은 560달러죠. 나머지 400달러에 가까운 돈이 결국 소프트웨어 가격이란 얘기죠. LG전자나 삼성전자가 아무리 하드웨어를 잘 만든다고 해도 스마트폰 한 대 팔아 거둬들이는 수익은 얼마 되지가 않아요."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고 있는 LG전자에게 희망은 없는 걸까? 그는 조언한다. "장기적으론 모바일 기기산업에서 큰 수익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업 경쟁력인 소프트웨어개발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휴대폰이 아닌 다른 제품군에서 글로벌 경쟁의 우위를 선점하려면 소프트웨어라는 강력한 무기를 탑재하고 있어야 하죠. 제조 전문기업에서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속품'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드웨어를 기준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경쟁에서 매번 소프트웨어 진영에 뒤질 수밖에요."

최근 들어 안승권 CTO를 비롯한 LG전자의 핵심 기술진들은 김진형 교수와 긴밀한 미팅을 가졌다. 김 교수는 내년에 혁신적인 LG전자 스마트TV가 나올 것이라고 살짝 귀띔해줬다. "제가 직접 LG전자의 기술전략 로드맵에 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술이 뛰어난 외부 팀이 LG전자 기술자와 협업해 10여 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알고 있어요. 사실 모바일이나 TV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같은 소프트웨어는 기술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사용처는 무궁무진하죠." LG전자가 진짜 1등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려면 강화된 소프트웨어의 기술력을 다양한 제품들과 연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진형 교수는 삼성전자와 비교하며, LG전자가 외부 개발자와의 협업을 솔선수범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챗온이라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자체 개발했죠. 챗온은 중소 업체가 만든 카카오톡 메신저를 겨냥한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승자 독식을 하겠다는 전형적인 대기업 경영전략입니다. 최근 LG전자가 다양한 외부 개발자와 손잡고 있는 것을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김진형 교수는 CEO들의 경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프트웨어의 본질과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 CEO가 국내에는 거의 없다는 게 그의 평가다. "바로 옆 개발팀에서만든 소프트웨어 기술을 다른 팀의 동료가 보려고 하면 마치 기업 스파이 취급을 하는 게 현실입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LG전자도 무관한 일이 아닐 겁니다. 개발팀의 연구 성과에 따라 팀별로 성과급이 지급되기 때문이겠죠. 이런 무차별적인 경쟁은 전혀 생산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팀끼리 경쟁하지 말고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공유하고 전파해야 안정적인 제품이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소프트웨어의 가장 큰 특징은 공유할 수 있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CEO가 개발팀 사이의 칸막이를 걷어내 줘야 기업의 자산인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더욱 커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LG전자가 품고 있는 소프트웨어 1등 기업이라는 목표에 대해 김진형 교수는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LG전자에는 소프트웨어를 중시하던 DNA가 남아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잠깐이나마 LG그룹에 소프트웨어 전담 자회사가 있을 정도였죠. LG전자만큼 꾸준히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패러다임에 주목하는 제조업체도 드물 겁니다."

그는 오래전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겪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1985년 무렵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거의 동시에 컴퓨터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교육이었죠. 삼성전자는 몇 개월 진행하다가 흐지부지 교육을 없애더군요. 반면 LG전자는 10년 가까이 컴퓨터 교육을 계속했습니다. LG전자에겐 한 번 정한 정책이 옳다고 믿으면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성향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 LG전자에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뚝심있는 정책입니다." 그는 덧붙인다. "하드웨어 기술이 뛰어난 LG전자가 지금의 시장 환경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조금만 발걸음을 옮겨도 그 경쟁력은 엄청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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