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박철진 IT칼럼니스트 chuljin.park.1973@gmail.com
곡면형 OLED TV 깜짝 스타 등극
삼성전자와 LG전자는 CES 2013이 개막한 1월8일(현지시간)부터 신경전을 시작했다. 예정에도 없었던 '곡면형 유기 발광다이오드(OLED) TV'를 1시간 간격으로 선보인 것. 당초 올해 CES에서는 대화면과 초고화질(UHD) TV가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었지만 두 기업은 자존심을 건 연이은 깜짝쇼를 펼치며 전 세계인의 시선을 '곡면 OLED TV'로 모았다.
먼저 선수를 친 쪽은 삼성전자다. 취재진을 대상으로 한 부스소개 행사에서 화면이 오목하게 휘어진 곡면 OLED TV를 기습적으로 선보였다. 이에 질세라 1시간 뒤 LG전자 역시 곧바로 곡면 OLED TV를 전시하며 맞불을 놨다. 양사가 출시한 곡면 OLED TV는 크기가 140㎝(55인치)로 동일하며 일반 2D 영상 외에 3D 영상의 출력도 가능하다.
그런데 왜 곡면을 택했을까. 어떤 이득이 있는 걸까. 정답은 바로 입체감이다.
화면이 휘어져 있으면 평면에 비해 탁월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시야가 가득 차는 파노라마 효과로 인해 평면 TV보다 화면 몰입감도 한차원 깊어진다. 이런 이유로 2D 영상을 보더라도 마치 3D를 보는 듯한 영상효과를 맛볼 수 있다는 게 두 회사의 설명이다. 이날 삼성전자의 관계자는 "화상이 사람의 망막에 맺히는 원리를 응용해 제품을 개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TV 업계에 따르면 휘어진 화면을 구현하고, 이를 고정하는 기술은 TV 관련 기술 중 난이도가 가장 높다. 한 마디로 회사의 기술경쟁력을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는 얘기다. USA 투데이의 제임스 왕 기자는 "생각보다 빨리 곡면형 TV가 세상에 나왔다"며 "이를 개발한 두 한국기업의 기술력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은 "지금까지 화면을 휘어지게 하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더 큰 화면의 곡면형 OLED TV를 내놓겠다"고 전했다. 장문익 LG전자 OLED TV 사업담당자도 "곡면 OLED TV는 미래의 TV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하나"라며 "다양한 크기의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현지 전자제품 유통업계 담당자들은 이처럼 곡면 TV가 기술적 프리미엄은 물론 기업의 제품 라인업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아이콘이 되는 만큼 가격 역시 일반 OLED TV보다는 고가로 책정될 것으로 보고있다. 화면 140㎝의 OLED TV가 1만~1만2,000달러 수준임을 고려할 때 최대 2만 달러는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본격적인 상용화 시기는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 LG전자는 올해 중으로 잡혀있다.
참고로 곡면 OLED TV를 개막 당일 공개하기까지 삼성과 LG는 치열한 두뇌싸움과 정보수집, 눈치작전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서로 제품을 가지고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 공개할 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전시장을 세팅하는 과정에서 급하게 공개시점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권희원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 부문장(사장)도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쟁사가) 곡면 OLED TV를 공개하기 30분 전 관련 내용을 입수, 우리도 (공개)해야겠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계 1등을 향해
곡면 OLED TV에 이목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올해 CES의 최대 전시품목 중 하나는 UHD TV였다. 삼성, LG를 비롯해 소니, 파나소닉, 샤프, 하이얼 등 해외기업들 모두가 눈독을 들이는 시장인 까닭이다.
삼성전자는 216㎝(85인치)와 278㎝(110인치) 등 초대형 모델로 경쟁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윤부근 삼성전자 홈엔터테인먼트 부문장(사장)은 "278㎝의 글로벌 수요파악이 구체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부자들을 겨냥했다"며 "덩치가 커서 무게가 무거운 만큼 물류비용의 효율화를 위해 중국 업체와 협력해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응한 LG의 무기는 일반 소비자들을 공략할 수 있는 중대형 모델. 그리고 140㎝, 165㎝(65인치), 213.4㎝(84인치) 등 풀라인업을 공개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권 부문장은 "UHD TV를 통해 작년대비 15~20% 정도의 TV 판매량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수 아래의 전력으로 평가받고는 있지만 일본업체들도 샤프가 152㎝(60인치)와 178㎝(70인치) 모델을, 소니와 도시바는 213㎝(84인치) 모델로 경쟁구도에 발을 담갔다. 특히 소니는 세계 최초로 UHD 해상도를 구현한 142㎝(56인치) OLED TV를 기습 발표하기도 했는데 시연을 시작하자마자 장애가 발생, 현장에 있던 전 세계 언론들과 관람객들에게 망신을 톡톡히 당해야 했다.
중국기업들의 경우 하이얼, 하이센스, 창홍이 127㎝(50인치)~165㎝급 중형 UHD TV로 체면치레를 했지만 디자인, 두께, 화질, 편의성, 기능성 등 주요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보다 뒤쳐진다는 게 현지의 평가였다. 현지에서 만난 IT 분야 파워블로거 폴 제이콥은 "현재 글로벌 TV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와 경쟁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며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한국기업의 독주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냉장고와 세탁기,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등 주요 가전제품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주는 홈네트워킹 서비스를 중심으로 근거리 무선통신(NFC), 음성인식, 자동동작 등의 최첨단 스마트 가전 기술도 대거 선보였다.
LG전자는 NFC, 음성인식 등의 기능에 바탕한 스마트 가전을 올해 가전시장의 주요 전략을 하나로 설정했으며 도시바, 샤프, 하이얼 등은 스마트폰을 통해 주요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원격기술로 소비자를 사로잡겠다는 복안을 내비쳤다.
삼성전자 윤 부문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함께 높여 플랫폼, 에코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라며 "올해는 최초로 세계 냉장고 시장 1등을 달성하고, 2015년에는 10년 연속 글로벌 TV 시장 1위를 유지하는 등 생활가전 분야의 세계 최고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조성진 LG전자 홈 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사장)도 "세탁기, 냉장고하면 바로 LG가 떠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2015년 전 세계 가전시장 1등을 차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갤럭시 S4에 옥타코어 AP 장착?
1월 9일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호텔에서 열린 CES 2013 기조연설에서 우남성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장(사장)은 "새로운 모바일 세계의 핵심동력은 부품"이라 강조하며 코어를 8개 집적한 옥타코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5 옥타'를 전격 선보였다.
이 AP에는 고성능(코어텍스-15)과 저전력(코어텍스-7) 코어가 각각 4개씩 탑재돼 있으며 3D 게임 등 고사양 작업에는 고성능 코어가, 웹서핑이나 메모 같은 저사양 작업에는 저전력 코어가 구동된다. 코어텍스-7 코어는 다른 코어보다 크기가 5분의 1에 불과하며 에너지 소비효율은 5배나 높다.
그래서 반도체 업계는 벌써부터 엑시노스5 옥타에 쓰인 기술에 ‘빅 앤 리틀’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고성능(빅)과 저전력(리틀)를 겸비했다는 의미다. 우남성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장(사장)은 "엑시노스5 옥타는 지금까지 나온 AP 중 가장 빠른 처리속도를 제공한다"며 "3D 처리능력의 경우 2배 이상, 배터리 소비효율은 직전 모델대비 70% 향상됐다"고 소개했다.
이는 이 AP를 스마트폰에 장착하면 처리능력과 배터리 소비효율의 대폭적인 증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관련업계는 삼성전자가 엑시노스5 옥타를 1분기 중 출시한 갤럭시S4의 두뇌로 채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AP를 개발해놓고 구형 AP를 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이유다.
반도체 설계분야의 한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전략과 기술력을 감안할 때 갤럭시S4의 출시 일정에 맞춰 양산도 가능할 것"이라며 "애플이 삼성을 견제하고자 대만 TSMC에 차세대 AP의 양산을 주문하고 있지만 올해 AP 시장도 삼성전자 중심으로 꾸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엑시노스5 옥타와 함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윰(YOUM)'도 모습을 드러냈다. LCD의 기판 소재로 유리 대신 플라스틱을 적용, 유연성과 내구성을 모두 만족시킨 차세대 디스플레이다. 구부리거나 휘어도 화면이 깨지지 않는다. 향후 스마트폰에 적용한다면 굴곡진 모서리나 베젤 부분에도 영상이 나올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응용설계가 가능하다. 존 헤이어 IT전문블로거는 "2010년 공개된 플렉시블 아몰레드(AMOLED)보다 디자인이 세련됐고 기능면에서도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