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스티브 잡스 vs 샘 월튼 두 거인을 심층비교하다

비상한 두 천재 CEO의 머릿속을 들여다 본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 Walter Isaacson, 존 휴이 John Huey와 아주 드문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By Shawn Tully

지난 100년 동안 최고의 사업가를 꼽으라면 스티브 잡스와 샘 월튼이 틀림없이 1위 자리를 다툴 것이다. 잡스는 애플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최전성기보단 하락했지만 애플의 기업가치는 여전히 5,000억 달러를 상회한다)을 설립했고, 월튼은 지난 1년간 4,5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세계 최대 기업 월마트를 창업했다. 하지만 그들의 업적은 눈에 보이는 수치 이상이다. 둘은 소매업과 비즈니스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혁신을 이뤘다. 제품 구매와 쇼핑, 소통 방식은 물론이고 일과 삶의 방식 및 장소를 모두 바꿔 놓았다. 이 두 CEO의 성향은 완전히 달랐다. 잡스는 대표적인 캘리포니아 대항 문화 (counterculture)의 사업계 아이콘이었다. 반면, 월튼은 전형적인 미국 중심부의 보수주의자였다. 하지만 이들에겐 주목할만한 공통점도 있다. 지칠 줄 모르고, 때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주 가혹하게 굴었던 ‘인습 타파주의자’ 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더 큰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두 천재 CEO를 비교·대조하는 데 그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과 존 휴이보다 적합한 인물이 있을까?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아이작슨은 아스펜 인스티튜트 Aspen Institute의 현직 CEO이다. 과거 CNN의 CEO와 타임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아인슈타인 Einstein, 프랭클린 Franklin, 키신저 Kissinger 등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휴이는 샘 월튼과 함께 그의 자서전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America)를 집필했다. 현재 타임의 수석 편집장으로 일하는 그는 전직 포춘 편집장으로 필자의 상사였다.
인터뷰에 대해 영감을 받은 것은 지난해 9월 초 비공개 기업 글로벌 정상회의(Global Summit for the Closely Held)에서였다. 그 회의는 비디티 앤드 컴퍼니BDT & Co.(동족회사(同族會社)들의 머천트 뱅크 *역주: 어음인수 또는 증권발행을 주요 업무로 하는 금융기관 역할을 하며 바이런 트로트 Byron Trott가 이끌고 있다)가 주최했다. 골드만 삭스에서 워런 버핏의 은행 업무를 전담해 유명세를 탄 트로트는 퇴사 후 3년 전에 비디티를 설립했다. 휴이와 아이작슨은 잡스와 월튼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았다(보면 알겠지만 내가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아래는 그들과 나눴던 대화의 주요 내용들이다.

앤디 서워: 사업가나 학생들에게 이 책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필독도서다. 샘 월튼과 스티브 잡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비즈니스 리더다. 우선 전기작가인 당신들에게 묻겠다. 책의 주인공인 월튼과 잡스를 어떻게 알게 됐나?
월터 아이작슨: 내가 잡스를 처음 알게 된 때는 1984년 1월이었다. 잡스는 당시 타임의 초년생 기자였던 나에게 오리지널 매킨토시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때 잡스의 양면적인 모습을 목격했다. 그 는 보석상에서 쓰는 확대경을 사용해 기자들이 자신이 만든 멋진 아이콘들을 보도록 했다. 그러다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짓더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비아냥거렸다. 괴팍한 성격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에게 끌렸다.
내가 타임과 CNN의 편집장에 오르면서신제품이 출시되는 해마다 잡스와 이틀 정도 친밀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관계는 형성됐다. 아스펜 인스티튜트로 직장을 옮긴 2004년에 나는 잡스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내게 산책을 하자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답했다. 그땐 산책을 하는 게 그만의회의방식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앞서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한 책을 썼다. 당시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막 마무리 짓던 때였다. 잡스는 “다음 작품으로 내 전기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물론이다! 좋다.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그리고 당신…”이라고 얼버무렸다. 반쯤은 장난이지만 잡스가 스스로를 그들에 버금가는 인물로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나는 “당신이 은퇴하는 20년 후쯤에 써주겠다”고 말했다. 이후 잡스의 아내가 내게 “스티브의 전기를 쓸 거라면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땐 이미 잡스의 투병 사실이 알려졌을 때였다. 그녀는 “그 이는 사람들에게 (병에 관해)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암 수술 바로 직전에 당신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서워: 존, 당신과 샘 월튼과의 관계는 어땠나? 어떻게 서로 알게 됐나?
존 휴이: 나는 1988년 11월 포춘에 입사했다. 상부에서 그때 월마트를 가장 존경받는 기업(The Most Admired Company)으로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전화를 걸어 “당신 회사를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해 커버 스토리를 쓰려고 한다”고 말하면 최대한 협조를 해준다. 하지만 월마트는 “관심 없다. 그것과 관련된 무엇도 원치 않는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래도 편집장은 내게 “그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샘 월튼은 언론을 피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된 그의 사진 한장도 갖고 있지 못했다. 편집장은 “자네는 남부 출신이니, 월마트 본사가 있는 아칸소 로 가서 그를 설득하게”라고 지시했다. 나는 바로 아칸소로 향했다. 당시는 크리스마스 2주 전쯤이었는데 날씨가 최악이었다. 나는 월마트 본사로 가서 말 그대로 월마트의 문을 두드렸다. 베키라는 이름의 비서가 그때 “회장님이 사냥하러 가셔서 만나 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며칠간 반복되었다. 비가 멈출 줄 모르고 내렸다. 월튼이 오래된 픽업트럭을 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트럭을 찾아 차를 타고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았다. 10일째 접어들었을 때 함께 있던 사진 기자에게 “회사로 복귀해야 할 것 같다. 그 트럭을 찾을 수 없다면, 여기를 떠날 수밖에” 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가는데, 월튼의 트럭을 발견했다. 샘 월튼은 본사 건물 안에 있었다. 우리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 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베키와 통화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샘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샘 월튼씨 되십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나는 “저는 포춘의 존 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당신을 만나려고 10일 동안 근처를 맴돌았습니다. 집사람이 제 곁을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당신 사진을 찍지 못하면 직장에서 해고 될 것이고, 그러면 정말 끔찍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 겁니다. 딱 10분만 내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 알다시피 기자들에게 자존심 따위는 중요치 않다.
마침내 샘 월튼이 나왔고, 그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내내 “쓸데없이 플래시와 필름을 낭비하고 있다”며 투덜거렸다. 그러곤 “지금 찍은 사진을 1면에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협상을 거쳐 간신히 1면 사진을 건질 수있었다. 나는 월마트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후 3년여 동안, 그와 함께 비행기와 자동차를 타거나 심지어 히치 하이킹을 하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간 이식 수술 후 입원해 있을 때 병원에서 (잡스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그는 계속해서 마스크를 벗고 ‘디자인이 형편없다’고 불평했다.

서워: 스티브 잡스와 샘 월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둘은 어떤 점에서 닮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
아이작슨: 나는 잡스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마음을 터놓게 된 이유는 이해할 수 없었다. 딱 1년 전 지금과 같은 주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팔로 알토에 있는 애플 본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잡스에게 “왜 그랬나? 전기를 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놀라운 인생을 살았다. 아주 재미있는 삶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 인생에 관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휴이: 샘은 여러 가지로 스티브와 많이 달랐지만, 닮은 점도 꽤나 있다. 그들은 모두 쇼맨십이 뛰어났다. 둘 다 무대에 올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일을 좋아했다. 그들은 모두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고, 집착적으로 경쟁에서 승리하려 했다샘은 사색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샘의 전기를 쓰는 것은 어려웠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기억조차 못했다. 나는 기억을 상기시키기는 일까지 도와야 했다.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는 언제나 앞만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스티브는 자신을 철학자이자 지성인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샘은 다소 고루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앤디 하디 Andy Hardy *역주: 1937년과 1947년 사이 제작된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나 허레이쇼 앨저 Horatio Alger *역주: 1980년대 말 활동했던 미국의 아동 문학가 시대에서 온 것 같았다. 샘은 신규 매장을 열기 위해 당나귀를 앞에 세워두었고, 주차장에는 회전식 관람차를 설치했다.
아이작슨: 스티브도 매장 오픈에 일가견이 있었고, 쇼맨십이 뛰어났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차이가 있었다. 스티브는 수익보다는 제품 자체에 집중했다. 그는 “계속 수익에만 치중하면 제품에 소홀해 질 수 있다. 반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면, 수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가격으로 경쟁하거나 평범한 상품을 만드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휴이: 스티브는 자신이 가진 사업적 재능과 기술을 이해하는 엘리트 그룹에 초점을 맞췄다. 동시에 뛰어난 제품 생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상품의 질이 대단히 높은 만큼 마진도 아주 높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샘은 이와 정반대였다. 그는 5일에 한 곳씩 새로운 매장을 여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마진이 최저 수준을 밑돌 때나 화를 낼 정도였다. 샘이 내세운 전략의 핵심은 ‘양 (volume)’이기 때문에 최대한 낮은 마진을 유지하려 했다. 그는 깨끗한 매장을 원했지만 디자인에는 한 푼도 투자하려 하지 않았다. 몇 년간이나 월마트의 광고는 클립 아트 *역주: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에 기본적으로 저장돼있는 그림로 꾸며진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스티브는 광고에 사용할 새로운 폰트도 디자인했다.
아이작슨: 잡스는 매장 계단에도 디자인 특허를 신청했고, 특허에 자신의 이름을 담았다. 대부분의 애플 스토어에는 이 계단이 있다. 잡스는 “이 계단 덕분에 고객들은 자신이 신비로운 장소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휴이: 샘은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매장들에 임원들을 데려가 이렇게 말했다. “이 매장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매장을 둘러보고 나올 때, 여러분 모두가 이 매장이 우리보다 나은 점을 하나씩 생각해 보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중에 우리가 본받을 만한 점도 있을 것이다.”
아이작슨: 반면 스티브는 직원들을 티파니 박물관에 데려 갔다. 그들도 루이스 캄포트 티파니 Louis Comfort Tiffany *역주: 보석이나 장신구를 포함한 장식예술의 거장처럼 아름다운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소비자들을 위해 그런 제품을 제작하기를 원했다.
휴이: 샘은 ‘10센트 숍’을 운영하던 사업 초기에도 훌라후프를 판 적이 없었다. 훌라후프는 왬-오 Wham-O가 개발해 상표등록을 했기 때문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다. 샘은 훌라후프를 보고 “이건 그냥 동그란 플라스틱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도 동그란 플라스틱 고리를 만들고 다른 이름 붙여 반값에 팔자!”고 말했다.
아이작슨: 그게 바로 삼성이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 취했던 전략이다. 결국 삼성은 애플에 고소당했다.
휴이: 둘은 완전히 반대되는 점들도 많고, 그만큼 닮은 점도 많다. 샘은 다발성 골수종(Multiple Myeloma)을 앓고 있었다. 스티브처럼 그도 모든 종류의 이국적인 치료법을 시도했다. 심지어 독일에서 사람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아이작슨: 둘 다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에 대한 불신을 가졌다.
휴이: 모든 것에 그랬다.
아이작슨: 정말 모든 것에 그랬다. 이런 방식은 스티브뿐만 아니라 월튼에게도 90%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휴이: 샘이 규칙을 어겼던 일 중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들려주겠다. 첫 번째 이야기는 비행 중에 겪은 일이다. 관제탑에서 무전을 통해 “당신은 승인되지 않은 상공에서 비행 중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관제탑은 비행기 번호를 포함한 우리 비행기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샘은 라디오를 꺼버리고 비행을 계속했다. 샘은 테이프를 이용해 스프레드시트를 다리에 붙이고 있었다. 우리는 최악의 매출을 올리는 매장을 찾아 그 근처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계기판에 나타난 비행속도 신호는 초록색에서 노란색,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 했다. 나는 “샘, 왜 빨간색이 표시될 정도로 빠르게 비행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가는 게 제일 빠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내가 “마치 토네이도에 날려가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다시 “이렇게 가는 게 제일 빠르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그가 리틀 록 Little Rock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가족들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가고 나만 죽어가고 있는 그의 곁에 혼자 남아 있었다. 그는 “존, 난 여기서 나가고 싶네”라고 말하고 팔에 있던 주사기를 뺐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렸다. 그러자 그는 “나는 나갈 걸세. 나랑 함께 갈 건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소유한 벤토빌 Bentoville 공항에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비행기를 한 대 보내 달라. 여기서 공항까지 45분 정도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할 수 없이 샘을 부축해 침대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그가 탄 휠체어를 밀고 로비로 나갔다. 그는 덩치가 작아진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로비에서 “우리 어떻게 공항으로 가지?”라고 물었다. 나는 “거기까진 생각 안 하신 건가요?”라고 반문했다.
아이작슨: 스티브가 간 이식수술 후 멤피스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원에선 그에게 산소 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스티브는 계속해서 마스크를 벗고 “디자인이 형편없다”고 불평했다. 그는 다른 디자인 5개를 가져오면 그중 좋아하는 디자인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정확히 애플 디자인 부서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휴이: 이 둘은 하여간…
아이작슨: 그들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옳았다. 스티브가 아이폰 제작을 계획할 때였다. 그는 겉을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신 아름답고 부드러운 유리 소재를 원했다. 스티브는 자신의 성격처럼, 곧바로 수화기를 들고 코닝 글래스 Corning Glass에 전화를 걸어 “CEO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교환원이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겨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는 “망할 놈의 동부 헛소리(Typical East Coast bullshit)”라고 역정을 내며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코닝의 CEO 웬델 윅스Wendell Weeks는 호탕한 사람이었다. 이 일을 듣고는 직접 애플 본사 교환대에 전화를 걸어 “CEO와 통화할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교환원은 “통화 요청 글을 팩스로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일을 알게 된 스티브는 “마음에 드는 친구군”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그 후 미팅을 가졌다. 스티브는 “내가 원하는 유리는 이런 종류다”라고 말했고, 윅스는 “이온 교환처리를 이용한 고릴라 글래스 Gorilla Glass *역주: 현 아이폰 시리즈에 사용되는 유리소재 공정을 시도해봤다. (성공했다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소재였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스티브는 그 공정을 살펴보고는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9월까지 이 만큼을 생산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웬델은 “방금 말했듯이 과거 성공한 경험이 없다.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스티브는 눈도 깜빡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걱정할 필요 없다.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들은 성공을 거뒀다. 스티브는 소위 말하는 ‘현실 왜곡장’ (reality distortion field) *역주: 물건을 실제 모습과 다르게 보이게 하는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휴이: 맞다, 그 유리가 아이패드에 쓰이고있다.

서워: 그건 엄청난 비즈니스다.
휴이: 월마트는 제품을 자사에 유통시켜달라고 공급업체에 압력을 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때문에 샘 월튼은 세계적인 유통 사업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는 계속해서 수치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가정용품 제조업체 프록터 앤드 갬블 Procter & Gamble의 CEO에게 벤톤빌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 CEO는 “그게 좀…”이라며 머뭇거렸다. 샘은 “벤톤빌로 와줘야겠다. 당신과 논의해야 할 정말 중요한 비즈니스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 CEO는 그렇게 처음으로 벤톤빌을 방문하게 됐다. 샘은 “당신과 사업을 지속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CEO는 “그게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샘은 “월마트가 당신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일본 시장보다 더 크다. 그럼에도 당신 회사는 벤톤빌에 본사를 두기는 커녕, 이곳을 방문할 담당자조차 없다. 이제 모든 게 바뀔 것이다. 당신 회사는 여기에 사무실을 열고, 우리를 일본처럼 대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샘은 나머지 파트너들에게도 똑같은 요구를 했다. 그 결과 제조업체로부터 가격결정 파워를 가져올 수 있었다. 샘 월튼과 스티브 잡스 모두 세계에서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상대였다고 생각한다.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싫다’라는 말을 아예 듣지 않기 때문이다.

서워: 샘의 사망 후에도 월마트는 계속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1년 전 팀 쿡이 CEO에 오른 애플의 경우도 현재 시가총액이 (스티브 잡스 시기보다) 2,700억 달러나 증가했다. 모든 사람들은 “애플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고 궁금해 한다. 꽤나 좋은 본보기이지 않나?
아이작슨: 애플의 미래 비전은 1년 전 스티브 잡스가 집착했던 것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년 8월 말에 이사회에 참석해 CEO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이사진은 이 소식에 슬퍼했지만, 이후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노력했다. 휴렛팩커드는 그날 태블릿 사업을 접는다고 발표했다. 이사진은 휴렛 팩커드의 결정 과정과 실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스티브는 “잠시만 주목해 달라. 빌 휴렛 Bill Hewlett은 내게 처음으로 일자리를 준 사람이다. 나는 13살 때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뒤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그와 데이비드는 자신들이 설립한 회사가 그들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고, 한세대 동안 계속 발전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 멍청이들이 그들의 꿈을 망쳤다. 애플은 절대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했다.스티브는 “애플의 DNA가 무엇인가? 우리는 과학과 예술의 교차점에 서 있다. 기술과 창의력의 교차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기업의 DNA다. 그것이 바로 수많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월트 디즈니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휴이: 내가 샘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거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쇠약하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그는 “존, 어떡할지 모르겠네. 우리는 엄청난 기업을 세웠어.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아. 내가 한 달 동안이나 출근을 못해 회사 상황은 아주 엉망일 거야”라고 걱정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10일 동안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근처를 맴돌았습니다. 제 아내가 제 곁을 떠날 상황입니다. 당신 사진을 못찍으면 직장에서 짤릴 겁니다.

서워:
샘 월튼과 스티브 잡스 중에 누가 더 뛰어난 천재인가?
휴이: 천재? 당연히 스티브 잡스다.
아이작슨: 안타깝게도 ‘천재’라는 단어가 너무 막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단어를 굳이 사용해야 한다면, 가장 적합한 인물은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사실 그는 디지털 혁명에 있어 가장 영리한 사람은 아니었다. 빌 게이츠는 정보와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있어 잡스보다 전통적인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났다. 하지만 잡스에겐 직관적인 천재성이 있었다. 이러한 천재성은 단순한 영리함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남다른 사고를 통한 새로운 시도에서 비롯된다.
휴이: 스티브는 에디슨 같은 인물이다. 에디슨은 천재였다. 그의 IQ가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높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심지어 스티브가 산수를 제대로 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샘은 헨리 포드 Henry Ford에 더 가까웠다. 그는 거대하고 구조적인 무언가를 바꾸는데 집중했다. 포드는 천재였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위대한 사업가였다. 샘 월튼 또한 위대한 사업가였다. 월터는 벤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에 대해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농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들은 모두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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