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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천재의 호기심 천국

20세에 MIT 교수가 된 에릭 드메인. 그가 알려주는 놀이처럼 즐기는 창의적 혁신

STORY BY DANIEL ENGBER
PHOTOGRAPHS BY JJ SULIN


아직 투표권조차 없었던 나이에 그 어렵다는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을 시작한 천재 과학자 에릭 드메인. 당시 그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오리가미 USA' 대회를 찾았다. 종이접기에 숨겨진 수학적 원리가 논문 주제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전시회장에는 곤충, 동물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종이공작물들이 주류를 이뤘지만 놀라우리만치 정교한 것들도 많았다. 일례로 한 참가자는 '상자꼴 겹주름(box pleat)'이라는 방식을 사용, 단 한 장의 종이만 써서 기관차와 객차 2량으로 이뤄진 일명 '무서의 열차(Mooser's Train)'를 만들었다. 1960년대 중반 스위스의 물리학자 에마뉘엘 무서 박사가 창안한 상자꼴 겹주름 기법은 격자무늬 모양의 수직·수평 주름과 사선 주름을 이용해 종이를 접는 방식이다. 그가 직접 이 기법으로 무서의 열차를 접으면서 대중들에게 폭넓게 전파됐다.

당시 드메인은 무서의 열차를 보며 상자꼴 겹주름 기법으로 제트기, 우주선, 혹은 실물 크기의 원자력잠수함 같은 더 크고 복잡한 설계가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이후 2001년 드메인은 20세의 나이로 MIT 컴퓨터 공학과 교수가 됐다. MIT 역사상 최연소 교수였다. 그리고 몇 년 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상자꼴 겹주름이 다시 그의 머릿속을 차지했다.

이윽고 그는 MIT의 로봇공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인 다니엘라 러스 교수와 함께 ‘프로그램 가능한 물체(programmable matter)’의 설계에 돌입했다. 이는 전기부품들이 올려져있는 종이처럼 생긴 시트다. 두 사람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트가 스스로 접혀서 소파, 컴퓨터 등 어떤 물체로도 변신하는 시스템을 표방했다.

"이를 구현하려면 다양한 형상으로 변할 수 있는 심플한 구조의 종이접기 템플릿이 필요했어요. 상자꼴 겹주름이야 말로 최적의 구조였죠."

드메인과 러스 교수는 두 명의 학생, 그리고 MIT 기술강사였던 아버지 에릭 마티를 추가 영입해 상자꼴 겹주름의 수학적 한계를 검증했고 사실상 한계가 없음을 확인했다. 시트의 크기만 충분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복잡한 구조의 물건도 접을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드메인 교수팀은 하버드대학 연구팀과 손을 잡았고, 유리섬유와 폴리머 수지로 제작한 얇은 패널에 상자꼴 겹주름 패턴을 적용하여 배 모양에서 비행기 모양으로 변하는 로봇을 개발해냈다.

"이 기술의 대형화에 성공할 경우 휴대폰이나 e북 리더로 변신하는 2013패널 제작이 가능합니다.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은 디자인을 그대로 형상화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다수 과학자들에게 이러한 프로그램 가능 물체는 오랜 기간 모든 열정을 쏟아야할 연구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드메인 교수는 다르다. 그가 현재 수행 중인 다양한 연구의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그는 종이접기 기술을 적용해 안전성을 대폭 향상시킨 차량용 에어백 개발을 도왔고, DNA와 리보핵산(RNA) 조각을 활용하여 스타트렉: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등장하는 만능복제장치와 유사한 기기를 스케치했다. 또한 고고학자들과 협력해 잉카족의 언어를 해독하기도 했다.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유리 불기 공예'. 온갖 환경에서 유리의 변화를 모델링함으로써 유리 불기 직공들의 테크닉을 개선, 새로운 디자인의 유리공예품 제작을 돕는 게 목표다.

올해로 31세가 된 드메인 교수는 지금껏 3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파퓰러사이언스의 10대 과학자상를 포함해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런 성과는 그의 천재성 덕분일까. 그렇게 말하면 간단히 설명이 되겠지만 이는 그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을 좌시한 결론이다.

"저는 연구주제의 선정이나 효용성 분석에 골머리를 썩지 않아요. 철저히 개인적 호기심에 따라 프로젝트를 고르죠. 연구가 가져다줄 결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답니다. 다른 연구자들이 답을 찾는다면 저는 문제를 찾는다고나 할까요. 저는 문제들 속에 답이 있다고 믿어요."

"저는 연구주제 선정에 골머리를 썩지 않아요. 철저히 개인적 호기심에 따라 프로젝트를 고르죠. 연구가 가져다줄 결과에는 신경 쓰지 않는 답니다."

드메인 교수 연구실은 MIT의 제32호 건물인 컴퓨터공학 인공지능연구소 6층에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 드메인 교수는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수인사를 건넸다. 교수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할 수 없는 차림이었다. 그와 15분 정도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들어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드메인 교수의 부친인 마티였다.

두 사람은 부자 사이를 넘어 평생토록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해왔다. 드메인 교수가 7세 때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의 양육권을 맡은 마티는 캐나다 동부 노바스코샤주의 집을 떠나 4년간 북미 대륙횡단 여행을 하면서 홈스쿨로 아들을 직접 가르쳤다. 드메인이 12세 때는 캐나다 댈하우지대학이 학칙을 개정하면서까지 그를 입학시키자 마티도 그 대학에 정식 입학해 동문수학했다. 이후에도 마티는 드메인이 박사 과정을 밟았던 워털루대학과 현재 재직 중인 MIT에도 모두 함께 입학했다.

둘은 거의 매일 붙어있다시피 한다. 학교에서는 학교에서대로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날은 학술모임에 나가 공동 강연이나 시연을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티는 드메인 교수의 연구에 가장 쉽게 전염된다. 드메인 교수가 흥미를 가진 부분에 누구보다 활발한 피드백을 보낸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종종 자신들이 '레크리에이션 알고리즘'을 수행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재미있을 것 같은 많은 일들 중에서 어떤 일을 할지, 다시 말해 이번에 진행할 연구 주제를 선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얼마 전 부자는 루빅 큐브, 창의성 향상을 위한 두뇌 교란형(brain teaser) 주사위 게임, 액자 매다는 법에 대한 논문을 탈고했다. 단백질 접힘의 역학성 모델링, 컴퓨터 효율 향상 알고리즘 등 이보다 고차원적으로 보이는 연구도 있었지만 이들 모두는 한 가지 충동에서 시작됐다. 앞서 언급한 ‘재미’가 그것이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오락적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해요. 저는 재미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겁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체험이야말로 과학적 창의성 계발의 근간이라는 모든 창의성 전문가들의 조언을 몸소 보여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인지 드메인 교수의 방에 있는 책장은 전공서적이나 논문이 아닌 장난감과 장식품, 종이접기 공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TV에는 닌텐도 위도 연결돼 있다.

"틈이 날 때마다 모든 종류의 게임을 플레이해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 다른 장르에 대한 감각을 얻을 수 있어요."

사실 근래에 두 사람이 뛰어든 프로젝트 중 일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닌텐도 게임을 즐기는 것보다도 황당하다. 공원에 동그랗게 빵부스러기를 늘어놓고 새들의 반응을 살폈고, 파스타의 기하학적 구조 연구를 시작했다. 앞으로는 빵으로 만든 상자에 비둘기를 가둬서 빵을 쪼아 먹으면서 탈출하는 과정을 관찰할 계획이다.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는 지금 당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장난스러운 연구가 향후 어떤 창의적 결실을 맺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변신로봇
드메인 교수가 상자꼴 겹주름 기법을 적용해 개발한 '프로그램 가능한 물체' 비행기나 배 모양으로 스스로 접힌다.



인류의 과학 역사에서 드메인 교수와 같은 장난기 넘치는 창의적 천재들의 존재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도 그중 하나다. 전자기학에서 장(場, field)의 개념을 집대성한 그는 14세 때 첫 과학 논문을 썼다. 주제는 실과 핀을 이용해 곡선을 추적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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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대 초반 영국 트리니티대학에 다닐 때는 뜬금없이 팽이에 관심을 가졌다. 팽이에 색종이를 붙이고 돌려서 서로 다른 색들이 섞여 새로운 색이 되는 모습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그는 적색, 녹색, 청색만 있으면 어떤 색깔도 만들 수 있음을 알아냈고 이는 컬러 사진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의 생리학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박사는 이 같은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존의 한계를 깨는 혁신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현상을 놓고 계속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루트번스타인 박사는 아내이자 미시간주립대의 사학자인 미셸 박사와 함께 창의성과 과학천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를 토대로 과학적 창의성이 발현되는 과정을 담은 ‘생각의 탄생(Spark of Genius)’이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놀이를 즐기지 않으면 경험의 폭이 빈약해집니다. 그러면 창의적 사고를 하거나 창의적 결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것에 도전할 가능성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물론 맥스웰 박사는 놀이가 과학적 혁신으로 이어진 수많은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세계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 역시 세균배양접시에 밝은 색의 미생물들을 칠하며 노는 과정에서 우연한 사고가 겹치며 일어났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양자역학이론가 리처드 파인만 박사의 경우 미국 코넬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구내식당에서 지인들에게 접시를 던져서 나눠주던 중 공중을 날아가는 접시가 떨리는 모습을 보고 전자 궤도(electron orbit)의 세차운동 연구를 시작했다.

루트번스타인 박사는 이것이 놀이와 창의적 과학기술 혁신의 상관관계를 여실히 증명한다고 강조한다. 놀이를 통해 게임의 모든 규칙을 배우게 되면 언제 예기치 않았거나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템플대학의 심리학자 캐시 허쉬 파섹 박사가 아이들의 놀이와 창의성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실험에서 파섹 박사는 4~6세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분리해 청소용품, 종이 클립, 알루미늄 포일을 나눠줬다. 그리고 A그룹에게는 마음대로 놀라고 하고, B그룹에게는 각 물건의 원래 용도를 생각하면서 놀라고 했으며, C그룹에게는 이 물건을 이용해 다리나 사다리 같은 구조물을 만들도록 했다. 이후 각 그룹에게 곰이 강을 건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더니 파섹 박사가 놀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B그룹이 가장 창의적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녀는 이 결과가 과학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한다. 기존에 잘 알고 있던 난제들을 가지고 자유롭게 장난칠 때 최고의 혁신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 박사도 유아와 과학자 사이에는 명백한 유사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제 연구에 의하면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상을 가지고 놀면서 자신만의 실험을 수행하고 있어요. 저는 늘 말합니다. 아이들이 작은 과학자인 게 아니라 과학자들이 큰 아이라고 말이죠. 과학자들은 아이들처럼 재미있게 놀면서 세상을 탐사하고, 원리를 밝혀내는 특권을 가진 성인이라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작은 과학자인 게 아니라 과학자들이 큰 아이입니다."

작년 12월의 한 목요일 오후. 대학원생들이 드메인 교수의 강의실로 모여들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기하학적 접기 분야의 난제를 푸는 것이었다. 드메인 교수는 칠판에 여러 개의 문제를 적었다. 그중에는 그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작은 명함 박스에 관한 것도 있었다. 박스를 서로 맞물려 8면체를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 또 직사각형 종이로 얼마나 큰 정사면체를 만들 수 있는지도 학생들에게 던져진 문제의 하나였다.

드메인 교수가 문제를 적은지 오래되지 않아 학생들이 일어나서 칠판에 나름의 해법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러 팀으로 나뉘어져 각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노트북에 적었다. 드메인 교수는 그런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하고, 농담을 던졌으며, 태블릿 PC에 스타일러스 펜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도출된 아이디어가 논문 발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문제들이 큰 의미가 없어보일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정사면체 문제의 경우 제조업체들에게 한 장의 철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평소처럼 드메인 교수의 부친인 마티도 그 방에 앉아 있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종이에 그려서는 학생들에게 보여줬고, 학생들은 그의 생각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이날 마티는 학생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정사면체의 삼각형을 접는 설계를 고안했다.

수업을 마치고 마티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이날 선보인 설계로 실제 모델을 제작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드메인 교수도 아버지의 뒤를 쫓았다. 그 결과에 의해 자신의 설계모델을 개량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껏 여러 가지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지만 놀이가 과학의 근본이라는 것이야 말로 두 사람의 성과 중 가장 심오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저는 서로를 너무 잘 알죠. 그래서 정말 죽이 잘 맞는 콤비랍니다. 아버지는 제가 수행하는 진지한 연구에 항상 오락성을 가미하려해요. 덕분에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성과들을 일궈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필자는 두 시간 정도의 즐겁고, 놀이 같은 수업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던 드메인 교수에게 왜 이런 방식으로 강의를 하는지 물었다.

"과학연구를 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많은 연구자들이, 아니 모든 연구자들이 이런 식으로 연구를 했으면 해요. 그렇게 될 때까지 이 방식을 하루하루 전파할 겁니다."

오리가미(origami) '종이접기'를 뜻하는 일본어. 일본어 발음이 그대로 영어로 굳어졌다.



루빅 큐브(Rubik's Cube) 6가지 색상의 직사각형 27개로 이뤄진 정육면체 장난감. 직사각형 가로나 세로로 회전시켜 각 면을 동일한 색상으로 맞추면 된다.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단백질 분자를 구성하는 펩티드사슬이 접혀서 2차 또는 3차 구조를 형성하는 것.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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