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열차 탈선 방지시스템

열차 사고는 빈도는 적지만 일단 발생하면 인적·물적 피해규모가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탈선 사고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무인항공기로 전쟁을 하고,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마당에 왜 열차의 탈선 하나 막지 못하는 걸까.

STORY BY DAN BAUM



2005년 1월 5일 오후 6시 10분. 미국 철도기업 노퍽 서던의 12량짜리 화물열차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래닛빌을 지나고 있었다. 경력 18년의 베테랑 기관사 짐 손튼은 기관차를 세우고 철로 근처의 스위치를 눌러서 레일을 측선으로 연결시켰다. 법률에서 정한 근무종료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열차를 측선으로 이동시킨 그는 시동을 끄고 보조기관사, 제동사와 함께 인근의 모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이때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본선과 연결시킨 측선을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았던 것.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그는 오늘도 별 문제 없이 일과를 마쳤음에 안도하며 택시에 올랐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노퍽 서던의 또 다른 화물열차가 시속 80㎞의 속도로 그래닛빌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두 량의 기관차와 화물을 가득 실은 25량의 화차, 화물을 싣지 않은 17량의 화차로 이뤄진 열차였다. 이 열차의 기관사는 당연히 그래닛빌을 스쳐 지나갈 것으로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측선 연결 스위치가 열려 있던 탓에 열차는 측선으로 이동했고, 눈앞에 이미 정차돼 있었던 손튼의 열차가 나타났다. 급히 제동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튼의 열차 뒷부분과 강하게 충돌, 두 대의 기관차와 16량의 화차가 탈선되고 기관사가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특히 탈선된 화차 중 3량은 염소가 가득 담겨 있었는데 한 량이 부서지면서 대량의 염소가 유출됐다. 그리고 짙은 흰색의 유독성 염소가스가 피어나와 그래닛빌을 뒤덮었다. 오전 2시 40분경 경찰들이 곤하게 자고 있던 5,400여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긴급대피작전을 펼쳤지만 8명이 숨지고, 72명이 염소 중독 증세로 병원에 후송됐다. 사고가 일어난 지 무려 7년이 흘렀음에도 그래닛빌 주민들은 아직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철도는 21세기 국가 경제의 혈관같은 존재지만 그 근간 기술은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열차는 미국의 화물 운송량의 40%를 책임지고 있다. 또한 연간 6억5,000만명의 승객들을 실어 나른다.

전반적인 기록으로 보자면 열차는 지극히 안전한 교통수단임에 틀림없다. 안전성도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간 2,000여건의 열차 사고가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피해 규모가 지극히 경미한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노퍽 서던의 사고에서 알 수 있듯 열차 간의 충돌이나 탈선사고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실제로 작년 6월에도 미국의 철도운송기업 유니온 퍼시픽의 열차 두 대가 오클라호마주의 철로 위에서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두 열차의 기관실은 아예 사라져버렸고, 승무원 3명이 사망했다.

또 3주 뒤에는 98량짜리 노퍽 서던의 열차 중 17량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탈선, 공업용 알코올이 누출되며 화재가 발생해 1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8월에도 CSX의 석탄운반열차가 메릴랜드주 엘리코트 시티에서 탈선해 21량 중 6량이 인근의 주차장을 덮치면서 젊은 여성 2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에도 11월에 유니온 퍼시픽의 열차가 텍사스주 미들랜드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던 차량을 덮쳐 4명이 숨졌고, 같은 달 하순에는 CSX의 열차가 필라델피아국제공항 인근 다리에서 탈선하는 바람에 폭발성 기체인 염화비닐 94만5,000ℓ를 싣고 있던 저장탱크가 깨지며 71명이 병원 신세를 졌다.

현재 미국에서만 매년 유독성 기체를 실은 화물열차 7만5,000량이 시속 80㎞의 속도로 미 전역을 돌아다닌다. 이들 대부분은 염소와 무수 암모니아로서 둘 모두 사람이 흡입하면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닛빌 사고를 제외하더라도 2000년대에 두 기체와 관련된 사고가 두 건이나 더 있다. 2002년 노스다코타주 미놋에서 무수 암모니아, 2004년 텍사스주 맥도나에서는 염소를 실은 열차가 탈선해 각각 1명, 3명이 사망했다. 미놋에서의 사고는 철도 점검 미비에 더해 저장탱크 자체의 결함이 큰 원인을 제공했지만 맥도나 사고의 경우 그래닛빌 사고만큼 어이없었다. 기관사가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를 무시하고 고속으로 달렸기 때문이었던 것.

이런 지독한 사고들은 지난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테러 이후 2001년 9.11 테러가 터진 것처럼 최근의 열차사고도 더 심각한 사고의 전조증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서 대통령 취임식 같은 행사가 개최돼 많은 군중이 모여 있을 때 그곳으로부터 8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CSX의 철로에서 염소를 잔뜩 실은 열차가 탈선하는 그런 사고 말이다.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면 염소 가스로 인한 사망자가 1만명을 거뜬히 넘게 된다. 더욱이 미국 내 전체 열차사고 중 무려 3분의 1 이상이 인재(人災)임을 감안할 때 이는 알카에다의 테러가 아니라 기관사의 졸음운전에 의해서 일어날 개연성이 더 높다.



값비싼 교훈
2008년 9월 12일 LA 인근 채츠워스를 출발한 통근 열차가 화물열차와 정면충돌하며 사망 24명, 부상 10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미 정부는 철도회사에게 충돌사고를 예방할 '능동형 열차 제어(PTC)' 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했다.

철도는 분명 21세기 국가 경제를 돌아가게 해주는 혈관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 근간 기술은 여전히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철도회사들은 누구보다 이를 직시하고 있다. 특히 기술적 개선을 통해 인재로 인한 사고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막대한 돈과 시간의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수십 년 동안이나 기술 개선에 소극적 자세를 견지해왔다.

40년 전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심장마비, 졸음, 주의력 부족 등 인적 요인에 인해 기관사가 상황인식능력을 잃었을 경우 열차가 자동 정지하도록 할 방안을 내놓으라고 철도회사에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 도입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추가 기술개발 없이도 이를 구현할 방법이 있었다. 이미 1920년대부터 열차가 적색신호를 무시하고 통과할 때 자동적으로 정차가 이뤄지는 시스템이 캔자스주 킨즐리와 다지 시티를 잇는 벌링튼 노던 산타페의 철도에서 운용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기업들은 사실상 요지부동이었다. 1980년대 중반 철도기업 벌링튼 노던 산타페는 기관사가 실수를 하면 열차가 자동 정지되는 GPS 기반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지만 10년도 안 돼 폐기했다. 비용절감을 위해서였다.

철도업계에선 이처럼 기관사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을 때 열차가 자동적으로 감속 또는 정지하는 시스템을 '능동형 열차 제어(PTC)'라 부른다. 현대적 관점에서 PTC는 무선 송수신 장치, GPS, 이동통신망 등을 이용해 열차 스스로 현재 위치, 속도 등 자신의 상황과 이동경로 전방의 상황을 통합 인식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기관사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적색신호를 지나치거나 닫혀 있어야할 측선 연결 스위치가 열려있음에도 기관사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위험상황이 닥치면 PTC시스템이 자동적으로 통제권을 넘겨받아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아무튼 별다른 개선이 없자 1990년 NTSB는 재차 PTC를 가장 시급히 도입해야할 안전기술로 정하고 철도기업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NTSB는 규제권한이 없다. 때문에 벌링튼 노던 산타페, CSX, 유니온 퍼시픽, 노퍽 서던, 캔자스시티 서던 등 매년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던 미국의 대형 화물 철도 운송기업들은 하나 같이 NTSB의 권고를 무시했다.

NTSB의 말을 따른 회사는 미국철도여객공사(Amtrak) 하나뿐이었다.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북동부 지역을 운행하는 열차에, 1년 뒤에는 중서부 지역의 열차에 PTC를 채용했다.

나머지 회사들을 강제로라도 움직일 수 있는 규제기관은 미 연방철도청(FRA)인데 NTSB의 기대와는 반대로 PTC 도입 비용이 너무 비싸다며 철도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2007년 의회가 개입, PTC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 법안이 폐기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9월 12일. LA 인근 채츠워스에서 미국 최악의 열차사고로 기록된 일명 '채츠워스 사고'가 일어났다.

충돌 22초 전까지 문자메시지 전송에 열중했던 사고열차의 기관사는 끝까지 브레이크를 잡지 않았고, 두 열차는 정면충돌했다.

LA 시민들이 이용하는 통근열차의 기관사인 로버트 산체스는 걸어 다니는 철도사고의 시한폭탄과 같은 인물이었다. 고도 비만에 혈압이 높았고 판막 비대증, 당뇨병, 심지어는 에이즈 환자이기도 했다. 채츠워스 사고 이후의 조사에 의하면 수면 무호흡증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 무호흡증 환자들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게다가 산체스의 회사였던 메트로링크는 마치 기관사의 체력적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무리한 근무 스케줄을 짜기 일쑤였다. 산체스도 오전 6시부터 9시30분까지 열차를 운전한 다음,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까지 근무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합하면 하루 근무시간이 무려 15시간이었다.

하지만 채츠워스 사고는 그의 건강이나 체력적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승객들이 가득한 3량의 객차를 매달고 채츠워스를 출발한 그는 10대 일반인 철도 마니아와 초전도 자기부상열차에 관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산체스가 운전 중 그 10대와 문자메시지로 대화를 나눈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으며 사고 이틀 전에는 그 청소년에게 승객들이 타고 있던 열차를 불법적으로 운전하게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산체스는 스마트폰 문자메시지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화물 열차에게 할당됐던 레인에 진입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적색신호를 놓쳐버렸다. 이윽고 오후 4시 22분. 유니온 퍼시픽의 화물열차 기관사의 눈앞에 시속 130㎞로 정면에서 달려오는 산체스의 열차가 나타났다. 이 기관사는 즉시 브레이크를 작동시켰지만 충돌 22초 전까지도 문자메시지 전송에 열중했던 산체스는 끝까지 브레이크를 잡지 않았다.

두 열차는 정면충돌했고, 산체스는 물론 기관차 바로 뒤 칸에 타고 있던 승객 22명 전원이 사망했다. 다른 칸에서도 2명이 더 숨졌고, 부상자는 101명에 달했다.

만일 채츠워스에 PTC가 운용되고 있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 자명하다. 산체스가 아무리 정신을 놓고 있었더라도 화물 열차 노선에 진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PTC가 적색신호를 통과한 직후 열차를 멈춰 세웠을 테니 말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미 의회는 2007년의 법안을 부활, 2008년 철도안전증진법에 추가해 34일만에 통과시켰고 부시 대통령은 조용히 서명을 했다.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 법안에 따라 오는 2015년까지 승객과 유독성 기체를 수송하는 미국 내 11만2,650㎞의 철도 구간에 PTC 채용이 의무화됐다.

사고의 사회적 여파가 워낙 컸기에 철도회사를 포함해 누구도 반대의견을 표명할 수 없었다. 아니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메트로링크는 과거 쇠를 잘 다루는 사람들에 의해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IT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철도의 미래
미국의 철도기업 메트로링크는 2015년 이전에 PTC를 설치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른 회사들도 그 뒤를 따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이폰을 분실했다면 애플의 '내 아이폰 찾기' 기능을 통해 휴대폰이 전 세계 어디에 있건 간에 그 위치를 수m의 오차범위 내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열차는 다르다. 어이없는 사실이지만 화물열차나 여객열차 모두 철도망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관제실에서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저 몇 톤의 화물을 실은 어떤 열차가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다는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에 국한하면 전체 철도망의 약 50%가 통제실과 신호 송수신이 불가능한 이른바 '암흑 지대'다. 그곳에서 열차 승무원들은 지금도 1850년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전을 한다. 종이문서에 적힌 그날의 지침과 자신의 시계에 의존해 특정 시간에 열차를 정지시키고 간선 레일로 들어가 일정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운행에 나서는 형태다.

설령 암흑지대를 벗어나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통제실에서는 특정 지점, 일례로 열차를 감지해 신호를 보내주는 장치가 설치된 지점을 통과할 때까지 열차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그나마도 열차가 언제 체크포인트를 지나갔는지는 알 수 있어도 이동속도는 모른다. 또한 무전기로 기관사와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적색신호를 그냥 통과했을 때는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무전기에 대고 열차를 세우라고 소리치는 것 정도다.

오늘날 PTC의 궁극적 목적은 통제실의 대체가 아닌 통제실의 기능 보강이다. 이와 관련해 채츠워스 사고의 교훈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철도기업은 당연히 사고의 주체였던 메트로링크다.

얼마 전 필자는 이 회사의 PTC 시스템 구축 책임자인 대럴 맥시를 만났다. 그는 LA의 한 호텔에 묵고 있던 필자를 오전 6시에 픽업해서는 도넛 가게로 데려갔다. 커피와 도넛을 주문한 그는 자신의 업무가 숨이 막힐 만큼 어렵고 복잡하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저는 철도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시스템 엔지니어에요. PTC를 설치하면서 IT분야에도 전문가가 다 됐죠. 하지만 PTC 시스템은 제가 경험한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입니다. 한 번에 처리해야할 문서가 200~300페이지라니 말 다했죠."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메트로링크의 정비창으로 향했다. 넓은 콘크리트 마당에 도착하자 맥시는 안전모와 야광 조끼를 건네며 시험용 열차로 안내했다. 열차 내부의 좌석과 바닥에 모래주머니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승객이 가득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맥시의 설명이었다. 앞으로 걸어가 기관차의 기관실에 도착하자 그는 필자를 기관사석에 앉혔다.

맥시에 의하면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철도를 21세기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가장 먼저 기관차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그날그날 업무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에 맞춰 정확히 반응해야 한다.

일일 기관사로 임명된 필자의 첫 임무도 바로 이런 정보가 담긴 주행계획 프로그램을 열차의 내장컴퓨터에 다운로드받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날의 열차 중량과 길이, 최고 및 최저 제한 속도, 이동경로에 있는 철로의 경사도와 커브, 신호등, 간선 연결 스위치, 정거장 등이 모두 들어있다.

"만일 다른 철도회사의 철로를 이용해야 할 경우에는 그때마다 별도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야 합니다. 모든 철도회사는 자신만의 고유 신호·통신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주행계획을 다운로드한 뒤에는 철로 보수공사계획 등 그날그날의 특별한 상황 정보를 담고 있는 데이터도 추가 다운로드 해야 해요."

이렇게 모든 프로그램의 다운로드가 끝나자 그 내용이 기관실 대시보드의 LCD 스크린에 나타난다.

"지금부터는 더 이상 스크린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희 회사는 열차가 출반한 뒤에는 기관사가 스크린을 보지 않기를 원하죠. 한 순간도 전방에서 눈의 떼지 말라는 겁니다."

시동을 걸고 레버를 올리자 열차가 철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열차의 내장컴퓨터는 다운로드 받은 내용과 실제 열차의 이동상황을 끊임없이 비교했다. 열차가 지나갈 구간에 위치한 모든 신호등 및 간선 연결 스위치와 무선으로 실시간 교신하는 것이다.

"속도를 늦춰야 할 지점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거나 적색신호가 켜졌음에도 열차가 멈출 기미가 없다고 컴퓨터가 판단하면 즉각 경보가 송출됩니다. 그런데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열차를 멈춰 세우죠."


가장 합리적인 조치를 위해 컴퓨터는 철로의 경사도, 열차의 중량과 속도를 정확히 분석한다. 예를 들어 내리막이거나 중량이 무거운 열차는 경보도 빨리 받는다. 오르막이나 가벼운 열차에 비해 제동거리가 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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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험으로 볼 때 3량의 객차를 연결한 기관차가 완전히 정차하려면 약 1.6㎞의 안전거리와 90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실험용 열차의 PTC 시스템 작동에 필요한 전자장비들은 기관차 앞부분의 소형 격실 안에 들어 있었다. 원래는 기관사를 위한 화장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격실을 열어보니 다수의 플라스틱 박스와 알루미늄 박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선들이 보였다.

"통제실이나 신호등과 통신할 수 있는 최신 무선장치와 내장컴퓨터가 들어있어요. 충돌사고가 났을 때 관계당국이 회수해갈 블랙박스도 여기 있죠."

아직도 많은 미국 철도기업이 서부시대의 구식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점에서 메트로링크의 PTC는 거의 혁명처럼 느껴졌다.

시험주행을 끝낸 필자는 맥시와 함께 기관차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지붕에 달린 장비를 손으로 가리켰다. 보통의 기관차에서는 조명등과 안테나 하나 정도가 있던 위치지만 이 기관차에는 안테나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데이터 전송용 220㎒ 안테나 2개, 이동통신 안테나 2개, GPS안테나, 출발 전 지침 다운로드에 쓰이는 와이파이 안테나 등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 모든 장비는 기관차가 과속을 하거나 적색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무척 간단한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맥시는 PTC 시스템에 맞춰 개조하고 있는 신호등으로 필자를 이끌었다. 기존의 철도용 신호등은 도로용 신호등을 크게 키워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색깔을 바꿔가며 점등되는 것뿐이었다. 기술적 관점에서는 '바보'와 다름없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맥시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신호등 뒤에 있던 작은 콘크리트 초소의 철문을 열었다.

"각 신호등의 초소들마다 별도의 IP주소를 갖고 있어요. 이 초소들은 열차가 지나칠 때마다 신호등과 무선접속을 시도합니다. 이때 응답을 받지 못하면 열차를 세우는 거예요. 적색신호가 켜진 신호등과는 접속이 안 되거든요."

초소의 내부는 기관실과 마찬가지로 전자기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진동과 먼지, 빗물로부터 전자기기를 지켜 내야 해요. 에어컨 가동도 필수죠. 초소가 설치된 지역에 따라 내부온도가 76℃까지 오르기도 하니까요."

현재 메트로링크는 이런 신호등을 217개 가지고 있다. 개조에 드는 비용은 개당 5만 달러 수준이다.

"상위 5개 철도회사들이 보유 중인 신호등은 총 3만8,000개나 됩니다. 왜 그들이 PTC 도입이나 시스템 개선에 열의가 없는지 짐작되시죠?"

메트로링크는 과거 쇠를 잘 다루는 사람들에 의해 성장했다. 하지만 PTC의 도입으로 이제는 많은 IT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이들이 일하고 있는 건물은 필자가 태어나서 직접 본 건물 중에 가장 컸다. 맥시는 사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력을 말하도록 했는데 전기공학자, 시스템공학자, IT 전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총 망라돼 있었다.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보셨죠? 이들이 바로 철도의 미래입니다."



모두의 문제
열차의 탈선과 충돌사고는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작년 2월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통근 열차가 탈선, 기차역 플랫폼을 들이받아 50여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맥시와 그의 동료들은 PTC를 통해 그래닛빌이나 채츠워스에서 일어난, 기관사의 실수에 의한 사고를 완벽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대규모 화물 철도 회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마치 설거지를 해놓으라는 말을 들은 중학생 소년 같은 반응이랄까. 물론 이들도 채츠워스 사고의 이후 PTC 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을 때 반대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국민감정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불평을 늘어놓는 건 자충수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년 후 4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2015년으로 예정된 PTC 설치 기한을 연기하자는 법안을 제안하자 정치적 로비에 적극 뛰어들었다. 그 4명을 제외한 모든 상원의원에게 총 36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

물론 금풍공세에도 불구하고 설치기한 연기 법안은 표결도 하지 못한 채 소멸돼 버렸지만 전문가들은 철도회사들이 이 정도로 물러서지 않았다. PTC 시스템은 과도한 비용투자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철도회사와 고객 모두에게 상당한 금전적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이를 완성하려면 2015년은 너무 촉박하다는 주장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 회사들에게 PTC 시스템의 기술적 문제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긴 대답이 돌아왔다.

'미 연방철도청에 따르면 PTC 시스템의 완성에 100억 달러가 필요하다. 이는 철도 업계가 2010년 1년간 건물과 장비의 구입·보수에 사용한 금액과 맞먹는다. 상위 철도기업들이 지난해 17~45%의 수익을 냈다고는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한 PTC시스템은 설치 후 유지를 위해 연간 8억5,000만 달러가 계속 투입돼야 한다.

만의 하나 이만한 돈을 지불하고 PTC 시스템을 구축해 제2의 채츠워스, 그래닛빌 참사를 막았다고 해도 나머지 98%의 철도 사고는 어쩔 것인가. 이 98%로 인한 인명 피해가 더 큰데도 말이다.

특히 PTC 시스템의 한축을 담당하는 GPS는 터널이나 빌딩 숲 사이에서는 동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2%의 대형 사고조차 완벽히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을 지는 몰라도 이와 같은 주장들은 1997년 포드자동차가 잦은 폭발사고를 일으켰던 '핀토(Pinto)' 차량에 대해 취한 태도와 비슷하다. 당시 포드는 내부 논의를 통해 리콜을 해서 문제를 시정하기 보다는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편이 비용적으로 유리하다고 결론짓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가 그 사실이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었다.

PCT 시스템의 경우에도 이런 경제논리가 개입됐을 공산이 크다. 미 교통부(DOT)는 지난 2008년 PTC로 예방할 수 있는 인명사고의 경제적 가치가 최고 580만 달러라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연방철도청은 PTC가 연간 7명의 사망자와 22명의 부상자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었다.

이 수치에 사고에 따른 재산 피해액을 대입하면 철도회사들이 PTC를 운용해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막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경제적 가치는 연간 9,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PTC의 설치비용은 차치하고, 연간 유지비용과 비교해도 10%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무엇을 선택하려 할지는 뻔한 일이다.

필자가 접촉한 모든 철도 화물운송 기업과 이들이 세운 이익단체인 미국철도협회(AAR)는 2015년까지 PTC 설치를 완료하라는 정부의 입장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어떤 기업은 이메일 답변에서 PTC가 오히려 철도의 안전을 저해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PTC가 막아줄 사고가 전체 사고의 2%뿐일 지라도 그 2%가 가장 비극적인 사고라면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주장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PTC가 막아줄 사고가 전체 사고의 단 2%뿐일 지라도 그 2%가 가장 비극적인 사고일 수 있는 탓이다. 특히 사고의 피해자가 내 자신이나 가족이라면 누구도 경제논리에 치우쳐 철도회사들을 옹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철 도 기업들이 PTC 시스템을 폄하는 주장에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진정 시민과 고객들의 안전을 고려했다면 PTC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열차의 탈선과 충돌사고를 막을 방법, 즉 기관사들에게 더 많은 휴식시간을 주는 것을 벌써부터 실행했어야 했다.

연방철도청에 의해 연속 근무시간이 제한받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기관사의 근무시간 제한과 실질적인 휴식에는 큰 괴리가 있다. 기관사들은 언제 자신이 일을 하러 나갈지조차 명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아 회사에서 언제 호출을 할지 모르는 만큼 집에 있어도 마음 편히 쉴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난 한 현직 화물열차 기관사는 회사 상사와 나눴던 당혹스런 대화를 알려줬다.

"언제 출근하면 되죠?"

"나도 몰라. 내가 부를 때 출근해."

"그럼 지금 자도 될까요? 아니면 TV라도 보면서 기다릴까요?"

"그건 알아서 하라구. 호출하면 즉시 나오기만 하면 돼."

기관사의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언제 휴무를 받을 수 있을지 절대 알 수 없어요. 점심시간도 별도로 없어서 기관차 안에서 운전을 하며 해결해야 하죠. 소변조차 열차가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 뒷문을 열고 달리는 열차 위에 서서 봐야 해요. 이런 식으로 근무하면 자기 능력의 20% 밖에는 사용할 수 없어요. 사실 운전 중에 깜빡 잠이든 적도 있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각 철도회사와 미국철도협회, 연방철도청은 PTC 시스템의 설치 기한을 2015년으로 정한 결정을 매도하고 있지만 이들 중 누구도 기관사들의 근무조건을 개선해 안전을 향상시키려는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한 번 호의를 베풀면 앞으로도 끝없이 양보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결과다. 유니온 퍼시픽의 한 관계자도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관사들의 근무시스템은 철저히 노사 교섭 상의 문제이지 PTC 관련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고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미국철도협회의 서면 응답에는 기관사들의 수면 스케줄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제대로 답변되지 않았다. 대신 PTC는 기관사들이 근무 중 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건 분명 이상한 얘기다. PTC는 그러라고 만든 것이니까 말이다.

연방철도청은 영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철도 회사에 근로자들을 정시 근무시키도록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한다. 그런 권한을 가진 것은 의회뿐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철도 업계는 미 의회가 정한 2015년의 시한을 연기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지금은 마지못해 그 결정을 수용하려는 눈치다. 하지만 2008년부터 최근까지 논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한 탓에 지금부터 준비해서 시한을 맞출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2015년 이후에라도 도입은 되는 걸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으므로 너무 큰 기대는 안하고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기억하자. 쉬지 않고 철로를 돌아다니는 화학물질의 유독성과 이를 운반하는 기관사들의 피로도를 감안한다면 PTC의 도입을 미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능동형 열차 제어(PTC) Positive Train Control.

[위험 지점] 미국 철도사고 마(魔)의 삼각지대



1 볼티모어
도시에서 멀지 않은 하워드 스트리트 터널이 만성적 위험지대다. 2001년 7월 CSX의 열차가 탈선, 싣고 있던 화학물질이 인화되면서 수일간 화재가 계속된 바 있으며 9년 뒤 또 다른 화물열차가 동일지점에서 탈선 사고를 냈다.

2 시카고
시카고는 미국 철도 교통량의 40%가 오가는 요충지다. 도시를 통과하는데 최대 4일이나 걸릴 정도로 열차들이 몰린다. 그만큼 사고도 적지 않다. 연평균 13건의 화물열차 탈선이 일어난다.

3 멕시코만 염소 공장 지대
미국 내 주요 염소공장이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에 걸친 멕시코만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전체 염소 생산량의 85%가 만들어져 철도를 따라 미 전역의 정수처리장으로 공급된다.

4 워싱턴 DC: CSX 철도 레일
미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서 800m 떨어진 곳에 화물열차용 레일이 깔려 있다. 한 전문가는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차가 탈선, 염소가 누출되면 1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5 라스베이거스 도심
보류되기는 했지만 라스베이거스 인근의 유카산에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이 추진됐었다. 그곳까지 핵폐기물을 운반할 예정이었던 철도가 라스베이거스를 관통한다. 철도 반경 800m 내에 사는 주민만 9만5,000명에 달한다.

[최선의 해법] PTC 작동 메커니즘



PTC 시스템은 크게 GPS 위성, 철로 주변의 수신기, 그리고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필요할 경우 열차를 감속 혹은 정지시키는 통제센터로 구성된다. 철도 건널목의 차단기가 고장 나서 자동차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오가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PTC가 가동되고 있을 때는 차단기가 자신의 상황을 열차의 기관사와 통제본부에 무선으로 알려준다. 통제본부의 요원들은 GPS를 통해 모든 열차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만큼 건널목 이전에 위치한 신호등에 적색신호를 켜서 열차의 진입을 막는다. 혹여 기관사가 정지신호를 보지 못했더라도 통제본부에서 원격 정차가 가능하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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