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3D 프린팅 기술의 진화 ‘제조업 2.0 시대’ 열린다

세계 1위 업체 스트라타시스의 비즈니스 전략

25년 전 어느 날, 3D 프린터 업체 스트라타시스 Stratasys의 이사회 의장인 스캇 크럼프 Scott Crump는 놀라운 발견 하나를 했다. 풀 총에 폴리에틸렌과 촛농을 섞어 담고 층층이
겹을 쌓으며 분사해 딸을 위한 개구리 장난감 제작에 성공했다. 가정집 부엌에서 우연히 개발된 이 제작 기술은 이후 적층가공 (Additive Manufacturing) 방식, 또는 3D 프린팅이라
불리는 기술의 초석이 되었다. 이제 3D 프린팅은 ‘생산의 민주화’로 대변되는 ‘DIY (Do It Yourself) 제조 시대’를 이끌 핵심 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김의준 기자 eugene@hmgp.co.kr

3D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차세대 산업 혁명이 지금 바로 이 순간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4일 홍콩에서 열린 스트라타시스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행사에서 크럼프 이사회 의장은 자신에 찬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이날 행사는 스트라타시스가 지난해 12월 이스라엘의 오브젯 (Objet)과 합병한 후 진행한 최초의 미디어 투어 행사였다. 3D 프린터 분야를 선도하던 두 기업의 합병으로 스트라타시스는 3억 달러 이상의 연 매출과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11개 해외법인에 1,100명의 임직원과 260개 이상의 공식 리셀러 및 총판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명실상부한 3D 프린터 업계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크럼프는 말한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우리가 제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로 세상이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 보입니다.”

3D 프린팅 업계의 성장세
최근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3D 프린팅을 ‘2013년 주목해야 할 10대 기술’ 중 하나로 꼽으며 ‘제조업 자체를 재탄생시킬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시장조사 기관 Global Industry Analysts(GIA)는 2018년까지 전 세계 3D 프린팅 시장 규모가 3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3D 프린팅 전문 컨설팅 업체 홀러스 어소시에이츠(Wohlers Associates)는 전체 시장 규모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해 2019년까지 65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발전 가능성은 각국의 3D 프린팅 육성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영국, 중국 등 선진국에선 정부 차원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미 6,0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미국 적층가공 혁신 연구소(National Additive Manufacturing Innovation Institute)에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며, 영국 정부도 이 분야에 연간 7백만 파운드(약 120억 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제조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도 이 혁신적인 제조 기법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열린 ‘국제 제조 기술 포럼’에서 수보 (蘇波) 중국 공업신식화부 차관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3D 프린팅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과 상용화에 대한 전략 수립과 세금 혜택을 강구해야 한다”며 이 ‘혁명적인 기술’을 치켜세웠다.

3D 프린팅 기술의 원리
3D 프린터는 종이에 잉크를 뿌려 출력하는 2D 프린터와 본질적으로 방식이 다르다. 오히려 3D 물체를 만드는 제조 장비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잉크 대신 특수 고분자 물질이나 금속가루 등의 재료를 뿜어내 컴퓨터에 저장된 입체 설계도에 맞춰 층층이 쌓아 올려 완제품을 만든다. 기존 산업에선 물체를 만들 때 주로 절삭가공 방식(Subtractive Manufacturing)―원재료를 밖에서 안으로 깎아서 형태를 만드는 것―을 사용했다. 반면 3D 프린터의 적층가공 방식은 재료를 층층이 (layer-by-layer) 쌓아 올리면서 제작하기 때문에 불규칙적인 형태의 제품도 자유롭게 제조할 수 있다. 물론 폐기되는 재료 또한 없다.
3D 프린팅에는 여러 가지 원리가 있지만, 가장 폭 넓게 사용되는 기술은 스트라타시스가 최초로 발명한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기술이다. 1988년 크럼프 이사회 의장이 특허 출원한 FDM 방식은 고체의 플라스틱 필라멘트 재료를 액화한 후, 이를 압출 성형하는 기술이다. 열가소성 플라스틱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강한 내구성과 강도를 갖는 게 특징이다. 스트라타시스의 경우 업계 최다인 130여 종의 3D 프린팅 재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대 14가지 재료를 단일 모델에 단 한 번의 프린팅 작업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25년 전에 처음 발명된 기술이 최근에 와서야 언론과 대중의 집중 조명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트라타시스의 데이빗 라이스 David Reis 대표가 최근 자사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 3D 콘텐츠가 최근 모든 분야에서 빠르게 활성화 되고 있어요. 영화에서 디자인, 그리고 의학분야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데요. 일반 컴퓨터 2D 프린터가 문서나 발표 자료를 출력하는 기기로 여겨지듯, 3D 프린터는 모든 3D 콘텐츠의 출력 기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이득입니다. 3D 프린터는 디자이너와 기술자, 그리고 제조업자들이 더 성능이 좋은 제품을 단시간에 공급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 불황기에는 이로 인한 경제적인 효과가 확연하죠.”

3D 프린팅이 주는 혜택
라이스 대표의 말대로 3D 프린팅은 산업계 전반에 큰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준다. 대부분의 생산업체는 시제품 (프로토타입) 제작을 거쳐 최종 디자인 승인이 나는데,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으로 시제품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들었다. 외주 제작 시 길게는 몇 년까지 걸렸던 시제품 제작 기간이 3D프린팅 기술 덕분에 몇 시간에서 길어야 하루까지로 축소됐다. 이는 제품 테스트와 수정, 그리고 최종 의사 결정이 바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준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제품을 사무실에서 직접 출력해 테스트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의 오류 발생률이나 그로 인한 기업의 손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굳이 시제품을 각 국가별 사무소로 직접 배송할 필요 없이, 3D 디자인 프로그램(3D CAD) 파일을 공유해 각 지역별로 모델을 직접 제작·테스트할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속도가 빨라지고 전체 제작 과정이 간소화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이점 때문에 미국 포춘이 매년 선정하는 500대 기업 가운데 상위 100대 기업 대부분이 이미 3D 프린터를 도입한 상황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 두산인프라코어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800개 이상 기업에 자사 기술을 유통시키는 스트라타시스가 이 같이 확대되고 있는 3D 프린팅 시장에서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라이스 스트라타시스 대표는 “3D 디자인 프로그램(CAD)을 사용하는 기업이라면 이미 3D 프린팅을 활용하고 있거나, 아니면 머지않아 곧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3D CAD를 사용하는 인구가 대략 4백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3D프린터는 거기에 크게 못 미치는 4만 대 정도만 보급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3D프린팅은 자동차, 항공, 우주, 휴대폰, 가전, 신발, 완구, 의료기기, 치의학 등 디자인이 필요한 분야라면 모두 적용이 가능하다.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드는 고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업계 내에서 빠르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예컨대 신제품 출시 속도에 민감한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 분야에선 생산 효율성의 경쟁우위를 제공한다. 의료 분야에선 수술 전 시술 부분을 미리 재현해 수술의 성공률을 높여주기도 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까지 전 세계 제조업체 중 최소 25% 이상이 부품 생산 과정에 3D 프린팅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량 생산에 필요한 공장의 역할은 줄고, 개인이 직접 사무실에서 물건을 소량 제조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보급형 3D 프린팅의 확산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일반 가정용 3D 프린터도 사용이 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3D 프린팅 기술인 FDM의 특허가 2년 전에 만료됨에 따라 산업체에 집중되어 있던 고성능 제품 외에도 기본적인 FDM 기술이 탑재된 저렴한 보급형 제품들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접근성이 용이한 제품들이 늘어나면서 3D 프린팅이라는 낯선 분야의 진입장벽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라이스 대표는 최근 2년 사이에 약 40개가량의 신생 3D 프린터 업체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가정용 장비의 경우 적게는 500달러 정도면 구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하는 메이커봇(MakerBot)은 보급형 3D 프린터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그들이 주장하는 3D 프린팅의 가장 큰 장점은 ‘책상에서 무엇이든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에서는 메이커봇의 ‘레플리케이터 2 (Replicator 2)’ 제품을 ‘2012년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으며 ‘누구의 집이든 미니 공장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메이커봇은 현재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3D CAD 대신 누구나 손쉽게 3D 파일을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 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인 크리스 앤더슨도 3D 프린팅 사업의 비전을 높게 평가하며 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2009년 자신이 설립한 ‘3D 로보틱스’라는 스타트업 회사의 CEO로 최근 부임했다. 그는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 덕분에 “누구나 쉽게 자기가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개인이 집에서 “인쇄”가 아닌 “제작” 버튼을 누르는 시대가 올 것이며, 또 그 같은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최근 출간된 저서 ‘제조자들: 새로운 산업 혁명 (Makers: The New Industrial Revolution)’에선 제조대행 공장들이 개인고객의 온라인 주문을 받아 맞춤형 상품을 만들어주고 있는 현재 상황을 근거로 들어, 앞으로는 개인 제조자가 대량생산까지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개인 제조업자들은 3D 도면 설계 후 인터넷을 통해 파일을 제조 공장에 전달하고, 대량 생산된 제품들은 목적지로 배달된다. 결국 개인 컴퓨터와 웹 기술이 제조 기술과 접목되면서 이른바 ‘DIY (Do It Yourself) 생산 문화’가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3D 프린팅이 “인터넷보다 더 큰 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전망했다.
하지만 정작 FDM기술을 개발한 스트라타시스의 라이스 대표는 아직 3D 프린팅이 가정용으로 보급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보급화가) 불가능하다곤 말하지 않겠지만, 내일 당장 일어날 정도로 순식간에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3D 프린터가 일반 가정용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설명했다. 첫째, 3D 프린팅의 인지도를 높이고 일반인도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제작해야 한다. 둘째, 높은 품질의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팔아야 하고, 악취나 소음 등의 문제점도 보완해야 한다. 그는 덧붙인다. “모든 디자이너 또는 학생이 신뢰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2D 프린터가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는 데 20년이 걸렸다는 점을 상기해야 하죠.” 실제 가트너는 최근 ‘2012 새로운 기술 성숙도 주기(2012 Hype Cycle for Emerging Technologies)’라는 보고서를 통해 3D 프린팅 기술이 ‘거품기의 최고조(Peak of Inflated Expectations)’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5년에서 10년쯤은 지나야 현재의 틈새 시장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의 3D 프린팅 시장은 일반 사용자들보단 디자이너와 취미 애호가들에 집중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3D 프린팅의 미래 전망
머지않아 3D 프린터가 일반 가정용 시장으로 깊이 파고들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예컨대 문 손잡이가 부러졌을 때 집에서 3D프린터를 이용해 바로 제조할 수 있게 된다. 깨진 컵도 불과 몇 시간 안에 똑같은 제품으로 재가공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정 보급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전까진 산업계에서 더욱 폭넓게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스트라타시스도 현재 전체 제품의 70~90%를 산업계에 집중시키고 있다. 크럼프 이사회 의장도 “시제품 개발에서 서서히 소량 맞춤형 부품 생산 쪽으로 확장해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비행기에 투입되는 티타늄 부품, 수술에 사용되는 인공 뼈, 생체 적합 재료 등 소량생산에 더 적합한 완제품 분야부터 우선 확장한다는 얘기다. 라이스 대표는 말한다. “가정용 3D 프린터가 많은 기대감과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많은 산업체들이 3D 프린팅으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혜택에 대해 여전히 무지한 것도 현실이죠. 3D 프린팅 업계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에요.” 그의 말대로 3D 프린팅은 현재보다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분야다. 생산의 ‘1인 제조업 시대’를 열게 되는 3D 프린팅이 ‘제조 2.0 시대’ 또는 ‘제3차 산업 혁명’으로 이어지는 대변혁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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