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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독 고대 문자 롱고롱고의 수수께끼

Decipherment of Rongorongo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학자들의 큰 관심거리이자 골칫거리다. 지구상의 가장 고립된 문명권으로 알려진 이스터섬에 남겨진 미해독 문자 '롱고롱고'는 그중에서도 단연 특별한 존재로 꼽힌다. 이 미지의 문자를 해독하게 되는 날, 우리는 초고대문명의 실체를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수옥 과학칼럼니스트 sooook49@naver.com



태평양 남동부의 이스터섬. 우리나라 안면도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면적 117㎢의 작은 화산섬에는 늘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곳'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본토인 칠레에서 3,700㎞,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피트케른섬과도 2,250㎞ 떨어진 절해의 고도인 탓이다. 오늘날 이스터섬이 우리에게 기이하고 신비로운 장소로 각인된 이유도 이런 폐쇄성에 기인한다.

이스터섬이라는 명칭은 지난 1722년 네덜란드의 탐험가 자콥 로게벤이 부활절(Easter day)에 발견했다는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원주민 언어로는 라파누이(Rapa Nui)섬, 에스파냐어로는 파스쿠아(Pascua)섬이라 불린다.

이스터섬으로의 이주는 10세기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학상 최초의 주민은 서방에서 이주해 온 폴리네시아계 인종이라고 한다. 물론 구전(口傳) 역사에 의하면 1722년 이전 이스터섬에는 최대 4,000명에 가까운 귀가 길고 피부가 검은 원주민이 살고 있었지만 폴리네시안들에 의해 정복당했다.

1888년 칠레령으로 복속된 이스터섬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이 섬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아이(Moai)라 불리는 거대한 석상은 알고 있지만 이스터섬에는 고고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유물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목판에 새겨져 있는 상형문자 풍의 기호 '롱고롱고(Rongorongo)'다.

롱고롱고는 폴리네시아 문화권에 속한 다른 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 산물이다. 다른 섬들은 입에서 입으로 역사를 전해왔지만 오직 이스터섬에서만 롱고롱고라는 독자적 문자 기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문자에 대해 밝혀진 바는 거의 없다. 오늘날까지도 해독되지 않은 지구상의 몇 안 되는 고대 문자의 하나다. 19세기에 채록된 이스터섬의 전설에 따르면 호투 마투아라는 이름의 이스터섬 최초의 이주민은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의 롱고롱고는 사라졌다. 우리가 가져온 신선한 목판들과 우리의 새 땅에서 만들게 될 목판들은 파괴될 것이다. 다른 종족 사람들이 우리가 남긴 보잘 것 없는 약간의 물건들을 지킬 것이며, 그들은 목판들을 연구하겠지만 효과도 없고 읽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의 롱고롱고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아, 슬프다!"



25개의 목판

롱고롱고는 폴라네이시아계 원주민의 언어인 라파누이어로 '노래' 혹은 '암송' 이라는 뜻을 지닌다. 성스러운 노래를 암송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왕이나 제사장 같은 지위 높은 계급에서 주로 향유됐던 언어로 알려져 있다.

모든 고대문자가 그렇듯 롱고롱고 역시 1860년대 세상에 처음 공개된 이래 사람들의 지속적인 호기심을 자아냈다. 갖가지 앙증맞은 그림 기호들로 이뤄진 이 문자는 주로 목판에 나란히 새겨진 형태로 발견된다. 학자들은 상어의 이빨이나 새의 뼈, 돌칼 등으로 새겼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남겨진 롱고롱고 목판은 총 25개. 현재 미국 호놀룰루와 스페인 산티아고, 그리고 유럽의 주요 박물관에 두루 분산돼 있는데 약 1만4,000개에 이르는 롱고롱고 문자가 새겨져 있다. 목판의 크기는 대체로 작은 편이지만 산티아고의 막대 목판은 가로 126㎝, 세로 6.5㎝의 제법 큰 크기에 2,300여개의 문자가 적혀있다.

현대 고고학으로도 풀지 못한 롱고롱고에 대한 의문은 통상 이렇게 정리된다. 이것이 정말 문자일까. 문자가 맞다면 언제, 누가, 어떻게 발명한 것일까. 하지만 현존하는 목판의 그 어디에도 연대는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에 고고학계에서는 롱고롱고의 기원을 놓고 크게 세 가지 학설이 경쟁을 펼치고 있다. 10세기 이전 폴리네시아에서 도입된 문자라는 설, 18세기 이스터섬에 도착한 유럽인과 원주민이 접촉하면서 생겨났다는 설, 원주민들이 어느 날 스스로 창안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유명한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브라이언 M. 페이건은 저서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에서 이처럼 밝혔다.

"세 가지 모두 타당성이 있다. 혹여 원주민에 의해 독자 발명된 것이 진실이라면 롱고롱고는 인류가 쓰고 있는 문자의 기원이 하나가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이스터섬의 구전 전설만 감안하면 답은 간단하다. 첫 번째 가설이 정답이다. 롱고롱고를 읽고, 쓸 줄 알았던 호투 마투아가 폴리네시아의 고향에서 롱고롱고가 새겨진 67개의 목판을 가지고 섬으로 이주해 왔다는 것.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이를 신빙성 있는 자료로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전설에서는 이스터섬의 고유 수종(樹種) 대다수를 호투 마투아가 들여왔다는 등 그의 능력이 다소 과장돼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초기에 이스터섬을 찾은 유럽인 중 단 한 사람도 목판이나 문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지리학자 존 플렌리 박사와 폴 반 박사의 저서 '이스터섬의 수수께끼'에는 그 사실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책의 내용을 보면 롱고롱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64년 이스터섬을 찾았던 외젠느 에로라는 선교사가 수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 등장한다.

"섬사람들의 집마다 나무와 막대기로 만든 서판이 보입니다. 거기에는 매우 다양한 그림 문자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섬사람들이 어찌나 서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섬사람들에게 서판은 기호들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보존해야 할 풍습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원주민들은 이 기호를 어떻게 읽고 쓰는지 조차 전혀 모릅니다."

에로와 같은 시기 활동한 다른 선교사들의 증언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발견된다. 원주민들은 롱고롱고 목판을 불쏘시개로 쓰곤 했으며, 심지어 족장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쌓아둔 장작더미 속에서도 롱고롱고 목판이 발견됐다고 한다.

아무튼 에로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거의 모든 집에서 서판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그보다 앞서 이스터섬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서판이나 롱고롱고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로 미뤄볼 때 롱고롱고는 1722년과 1864년 사이 탄생한 문자는 아닐까.



문자 혹은 돌그림

롱고롱고의 실체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록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1722년에 이어 스페인 탐험가 돈 펠리페 곤살레스의 함대가 1770년 이스터섬에 두 번째로 상륙했는데 이들은 군사력을 앞세워 이스터섬이 에스파냐 왕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조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바로 이 문서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서명의 정확한 뜻은 파악할 길이 없지만 학계는 서명에서 고대 돌그림 문자와 생김새가 유사한 상징을 발견했다. '새'와 '여성의 생식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림문자에서 새가 상징하는 바는 대체로 명확하다. 원하는 곳은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는 존재, 즉 무한한 능력을 지닌 신이나 조상의 영혼과 유관하다. 특히 '이스터섬의 수수께끼'에 나온 설명을 보면 새와 사람의 요소를 결합시킨 '새 사람'의 상징은 폴리네시아 문화권의 섬들을 포함한 오세아니아 전역의 상징물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요소다.

주지하듯 여성의 생식기는 다산(多産)의 의미가 짙다. 이는 이스터섬의 여러 암각화에서 가장 흔하게 표현된 모티브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원주민들의 이 서명이 롱고롱고와는 엄연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롱고롱고와 닮은 돌그림 문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롱고롱고는 1770년 이후 발명됐을 개연성이 여전히 크다. 롱고롱고가 에스파냐 문명과의 접촉에 의해 생겨났다는 주장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 곤살레스의 방문이 직접적 자극이 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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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학자들은 이스터섬 곳곳에서 발견되는 암각화와 롱고롱고를 관련짓는다. 이들은 목판 속 글자 중 다수가 암각화에 새겨진 돌그림 문자와 닮았다는 점을 근거로 롱고롱고가 이미 고대에 만들어졌다고 본다. 하지만 이 역시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도, 닮은 것을 넘어 롱고롱고와 일치하는 문자가 암각화에서 발견된 적도 없는 추측의 산물일 뿐이다.

존 플렌리 박사도 롱고롱고와 암각화 문자의 유사성은 수수께끼를 푸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고대에 이미 롱고롱고라는 글자가 존재했다면 원주민들이 목판 이외의 훨씬 더 다양한 곳에 활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현재로서는 앞서 언급했듯 곤살레스 일행이 제시한 서류를 보고 고무된 원주민들이 글자라는 새로운 개념의 의사전달 매개체를 창안했으며, 이때 원주민들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문자를 창안했다기보다 자신들에게 이미 익숙했던 모티브를 문자 형태로 차용했다는 설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롱고롱고는 왜 미지의 문자로 남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1862년 페루의 노예사냥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페루 노예상들이 이스터섬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잡아가는 바람에 롱고롱고를 이해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 노예사냥을 피한 원주민들도 일부 있었지만 노예로 잡혀갔다가 섬으로 되돌아온 이들이 옮긴 천연두에 감염돼 변을 당했다는 설명이다.



미스터리 아일랜드
이스터 섬은 롱고롱고 문자, 모아이 등 미스터리로 그득하다.

창조의 노래?

당연한 얘기지만 롱고롱고를 해독하려는 시도는 현대에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19세기의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문자의 기호와 발음,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의 노력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몇몇 흥미로운 결과들이 도출되기도 했다.

먼저 롱고롱고 목판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독일의 민속학자 토마스 바르텔 박사는 1956년 120개의 기본 문자를 해독했다며 목판에 새겨진 내용은 주로 신에 대한 기도와 섬의 신화에 관한 스토리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롱고롱고는 특정 사물이나 생물의 외형을 문자화한 것이다. 이를 기본으로 각 요소들을 결합함으로써 1,500~2,000가지의 합성기호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롱고롱고 표기법에서 이런 상형문자는 사물 뿐 아니라 관념을 표현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문자를 통해 특정 단어나 생각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품사(品詞)나 문장과 같은 체계가 없기 때문에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원주민들은 한 가지 문자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바르텔 박사 이후 롱고롱고에 대해 구체적 해석을 내놓은 사람은 1995년 뉴질랜드 폴리네시아언어문학연구소(IPLL)의 스티븐 로저 피셔 소장이다. 그는 원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산티아고에 보관 중인 목판의 내용을 우주와 세상 만물의 탄생, 즉 교미의 전 과정을 담은 '창조의 노래'라고 주장했다.

이 목판에는 문자와 더불어 중간 중간에 불규칙한 간격으로 100개가 넘는 수직선이 그러져 있다. 피셔 소장은 이 수직선이 문자를 카테고리별로 구분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그 단서로 각 카테고리의 서두에 남근 형태의 '접미사'가 쓰여 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모든 새들이 물고기와 교미했네. 그리고 그곳에서 해가 태어났네.'와 같은 시적인 문장들이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났으며 25점의 롱고롱고 목판 중 상당수가 이와 유사한 내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피셔 소장의 해독은 세간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여타 롱고롱고 연구자들에게는 그리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바르텔 박사가 무한한 지지와 독려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였다.

이외에도 롱고롱고에 대한 연구는 많다. 어떤 학자들은 이 문자를 파나마 인디언의 회화문자와 관련짓고, 호주 원주민의 벽화나 이집트의 상형문자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롱고롱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할 경우 어쩌면 롱고롱고의 정확한 해독은 아예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끝내 베일을 벗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롱고롱고에서 좀처럼 눈을 떼기가 어렵다. 행여 이것이 문자가 아닌 장식용 그림일지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성패여부와는 상관없이 롱고롱고를 해석하려는 학계의 노력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롱고롱고는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한 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임은 부인할 수 없는 까닭이다. 플렌리 박사는 '이스터섬의 수수께끼'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직 롱고롱고 문자를 완벽히 읽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적혀 있는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이스터섬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고유의 글자를 개발했건, 외부의 영향을 받았건 상관없이 이 섬의 문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수준 높은 발전을 이룩한 독특한 신석기 문화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폴리네시안의 항해

10세기 전후 폴리네시아인들은 전략적으로 태평양 동부으로 이주했다. 그들이 '라파누이'를 발견한 시기는 이르면 300년, 늦으면 8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형 뗏목과 이중 선체 카누 제조에 탁월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 폴리네시안의 뗏목과 카누는 선체가 유연하고 단단해 항해에 적합했다고 한다.

최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폴리네시안들은 남아메리카 해안 인근까지 진출해 교역을 통해 고구마 등의 작물을 얻기도 했다.

이후 고구마는 폴리네시아 문화권 구석 구석으로 보급되는데, 덕분에 이스터섬 주민들 역시 고구마를 재배해 식량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아이 미스터리

이스터섬의 또 다른 미스터리는 '모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석상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석상은 넓적한 이마와 긴 코를 가진 얼굴이 특징적이다. 인근 화산의 응회암(凝灰岩)으로 제작됐으며 크기는 7~20m까지 다양하다. 섬 전체에서 약 900개가 발견됐다.

제작 방법은 물론이고 이토록 많은 수의 모아이를 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신이나 조상을 숭배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종교적 상징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노르웨이의 고고학자 토르 헤이에르달 박사는 저서 '아쿠아쿠'에서 모아이 문화를 이룩한 이들은 원주민이 아니며 페루에서 온 인종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폴리네시아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석의 변형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 학자들은 롱고롱고 목판에 모아이 석상에 대한 정보와 이스터섬의 역사가 기록돼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고로, 당시 섬 주민들이 모아이의 제작에 집착한 나머지 석상을 옮기기 위한 침목을 구하느라 섬의 숲이 황폐화됐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나무가 사라져 배를 만들지 못하게 되면서 식량난에 허덕이게 됐고, 식인 풍습까지 생겼다는 것.

실제로 이스터섬의 식인 풍습은 1722년 처음 유럽인이 이곳을 방문한 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폴리네시아 (Polynesia) 오세아니아 동쪽 해역에 분포하는 수천 개 섬들의 총칭. 육지의 총 면적은 약 2만6,000㎢에 불과하지만 섬들이 분포하는 해역은 태평양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라파누이(Rapa nui)어 이스터섬의 원주민인 라파누이인들이 사용했던 동 폴리네시아어계 언어. 롱고롱고도 옛 라파누이어의 문자로 볼 수 있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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